새우타령
세 발로 걷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쓰지만
다리가 부들부들.
제 발부리에 넘어질새라
주춤주춤 걷지만
발자국 뗄 때마다
다리가 휘청휘청.
내 몸도 가누지 못하는데
젖먹이 애커녕
인형인들 업어줄 수 있으랴.
물이 넘쳐 깊이 잠겼는데
징검다리를 건널 수 있으랴.
급물살이 소용돌이치는데
외나무다리를 건널 수 있으랴.
돌개바람이 미친 듯 부는데
출렁다리를 건널 수 있으랴.
다리가 낡고 깎이어 기울였는데,
누군들 이 다리를 건너려 하랴.
이제 물길마저 바뀌어 쓸모없는데,
장님이나 더듬거리며 건너려 할까?
(2021.11.1.)
BMW 승용차를 새로 뽑았다고 우쭐대는 친구에게, 난 옛날부터 BMW를 타고 다녔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bus,metro,walk가 내 교통 수단이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는 “네 자가용 111호는 펑크도 안 나냐?”고 신소리로 되받는다. 하기야 발가락, 발목, 무릎 펑크 때문에 카센타 간 일은 몇 번 있었지만, 지금까지 스페어 타이어나 체인도 갖추지 않은 채 많이도 걸었다. 늙을수록 아랫도리는 튼튼해야 한다는 옛 어른들 말씀을 귀담아 들었기에, 미수(米壽)가 된 지금도 하루 1시간 이상 산책하는 것이 일상생활이다.
그런데 오래 걷거나 높은 데 오르내리면 장딴지가 뻐근하고, 발목이 시큰거려 자주 주무르게 된다. 미끄럽고 울퉁불퉁한 길을 오갈 때에는 주춤주춤 걷게 되고, 잠이 부족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걸음걸이가 휘청휘청할 때가 있다. 낙상(落傷) 사고가 노인들에겐 치명상임을 자주 보게 되면서, 작은 돌부리라도 걸리지 않을까, 낙엽에라도 미끄러지지 않을까, 고개 숙여 아래를 보고 천천히 걷게 된다. 나보다 앞서가는 나이가 선생이 되어 가르쳐준 것이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좋아해, 동네 아이들까지 업어주기를 좋아했다. 심지어 교직에 있을 때, 칭찬할 아이를 업어주면 무척 좋아했다. 젊은 시절, 이렇게 걷지 못하거나 걷는 걸 힘들어 하는 사람 업어주는 일을 보람으로 여기며 살아야 하겠노라고 다짐하였다. 그러나 늘그막에 손자들을 업게 되면서부터는, 허리가 뻐근해짐을 느끼면서, ‘한 물 갔구나!’하고 중얼거린다. 이러다간 젖먹이 애커녕 인형조차 업을 수 없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 *
어렸을 적에 냇가의 징검다리, 골짜기의 외나무다리를 가끔 건넜다. 약혼 시절 부산 송도의 출렁거리는 구름다리를 처음 걸었다. 그러나 홍수가 나고 태풍이 불면 모두 쓸모 없다. 이 다리들은 다리(橋脚)가 없는 다리지만, 다리가 있어도 낡고 부식(腐蝕)해지면 성수대교(聖水大橋)와 같은 대형 붕괴사고(’94.10.21)가 날 위험성이 있다. 또한 내가 다리가 되어 사람들을 건네주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며 살겠노라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홍수가 나고 태풍이 불며, 낡은 다리(교각)가 부식이 되면 아무 소용없지 않은가?
그래서 이제는 내가 촐루떼까 다리라는 생각을 한다. 중미(中美) 온두라스 남쪽에 있는 이 다리는, 잦은 허리케인의 피해를 막고자, 일본의 손꼽는 건설업자로 하여금 세워졌다고 한다. 아닌게아니라 강력한 허리케인이 휩쓸자 다른 다리는 모두 유실됐지만 오직 이 다리만은 끄떡없었다. 그런데 이 다리가 이어준 도로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게다가 다리 밑을 흐르던 강물은 딴 데로 물길을 돌렸다니 이런 낭패가 있나? 허위대는 멀쩡한데 아무 쓸모없이 홀로 덩그렇게 서있는 이 다리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세상이 몇 번이나 곤두박질하며 변하였는데, 옛 다리 그대로 버티고 서서 내 등을 밟고 건너가라니 눈먼 사람도 코웃음 칠 일이 아닌가? 나 촐루떼까 다리가 마치 오블리스 노블레즈(obilge nobless 프)인양 착각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