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석류

새우타령

by 최연수

석 류


몇 닢 노랑 돈 달랑거리며

그저 기쁜 빨간 고추 주머니.

세뱃돈 몇 닢 받아 넣고

마냥 즐거운 아이들 복주머니처럼.


참새들 하소연 까치들 외침을

차곡차곡 담으면서,

왜 이리 세상이 시끄럽냐고

귀도 막지 않던 풋내난 주머니.


저리 고개 숙이고 있다가

이내 떨어지려나 했는데,

온갖 시름 분통 깎고 닦아

빛나는 보석 만들 줄이야.


주렁주렁 매달린 주머니 속에서

쏟아져 나온 홍보석들.

제사장의 흉패에 달렸다가

이제 새 예루살렘 성곽의 기초석에 쓰인다니.


복을 담는 복주머니

복을 만드는 홍보석 주머니.

(2020.10.18. 추수감사절에 붙여)




홍보석 주머니(석류)


몇 닢 노랑 돈 넣고도

기쁨에 취해 빨게진 고추.

몇 푼 세뱃돈 담고도

배가 불룩해진 복주머니.

바람만 넣는 풍선도

물만 담은 수병(요강)도

‘주 머니보다도 귀한 것은 없네’라고

노래하는 세상에,

뭘 감춘 주머니이기에

입도 뻥긋 안할까?


참새들 하소연 까치들 울부짖음...

귀청이 터질 듯

세상이 이리 시끄러운데,

귀도 안 막고 고개 숙이고 있다가

풋내만 풍기며 이내 떨어지겠지.


아, 쏟아져 나온 눈부신 보석들.

하늘 우러러 감사하며

온갖 시름 분노 깎고 갈아

홍보석을 만든 주머니.

새 예루살렘 성곽의 초석이 될

홍보석.

(2020. 10.18 추수감사절)




“노랑 돈 들어 있는 빨강 주머니가 뭐게?” “고추!” 어렸을 적 우리들의 수수께끼였다. 몇 닢 밖에 안 되지만, 기쁨에 취해 고추는 얼굴에 빨간 웃음으로 가득 차있다. 몇 푼 안 되는 세뱃돈이지만, 복주머니는 그저 흐뭇해서 배가 불룩했다. 그런데 풍선은 바람만 넣고도, 수병(水甁=요강의 별칭)은 물만 담고도 돈이 가득한 주머니인냥,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를 “ 주 머니(money)보다도 귀한 것은 없네”라고 바꾸어 목청껏 노래부른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가 제일이라는 주머니 속의 작은 종교 곧 물신(物神) 사상, 황금만능주의 세상인데, 석류(石榴)는 뭘 고이 감추고 있기에 입도 뻥긋하지 않을까 몹시 궁금하다.

참새들이 떼지어 가지에 날아들더니 푸념인지 넋두리인지 하소연으로 몹시 시끄럽다. 또 까치들까지 날아오더니 울부짖는 절규인지 통곡인지...이렇게 귀청이 터질 듯 소란한 세상인데, 귀도 막지 않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으니 더욱 궁금해진다. 여름내 풋내만 풍기며 저렇게 매달려 있다가, 가을이면 지레 떨어질 것이다고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아, 그런데 때가 이르매 그 주머니를 터뜨리고 나온 건 낭중지추(囊中之錐)일까? 아니다. 송곳 아닌 보석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닌가? 내 눈에 안개가 끼어 부시나보다고 자꾸 비벼보는데, 틀림없는 귀금속이다. 눈부신 홍보석이다. 그 동안 하늘 우러러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면서(살전 5:16-18), 말없이 자랐나보다. 온갖 시름, 분노 다 부둥켜안고, 이것을 깎고 갈며 보석으로 다듬은 홍보석 주머니! 그 옛날 제사장의 판결 흉패 첫줄에 물렸던(출28:17) 홍보석이, 이제 새 예루살렘 성곽의 여섯째 기초석으로 쓰인다니...(계21:20)

석류는 절세의 미인 양귀비(楊貴妃)와 크레오파트라가 즐겨 먹었다고 한다. 그 향이 매혹적인데다 상큼한 맛이 일품일뿐더러, 여러 가지 영양분이 풍부하여 요즘도 건강 식품으로 귀하게 쓰인다. 한편 문인화를 그리는 사람들은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십군자(十君子) 중 하나인 석류를 즐겨 그린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나도 이 석류 한 폭 그리면서 ‘주렁주렁 홍보석 주머니’라고 써 넣었다. 주머니를 닮은 석류에서 쏟아져 나온 빨간 알갱이들이 마치 보석 같다고 느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