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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타령

by 최연수

달콤한 맛

은은한 향기.

출출하던 입이 호강한다.


늘어뜨리고

풍선을 불어보고

궁금하던 입이 생기 있다.


질근질근 씹으며

쩍쩍 소리내며

뱉을 줄 모른다.


이내 단물이 빠졌는데

동글 동글 빚어

기둥에 붙여놓는다.


입이 허전하면

슬며시 되씹으며

주전부리를 한다.


입 안이 마르니까

입 냄새를 없애려고...

핑계도 많다.


(2021. 10. 2 )




세계대전의 막바지, 우리 아이들에게 송진 껌 씹는 건 좋은 군것질이었다. 일어로 고무(ゴム gum)라고 했다. 맛이 있을 리 없건만 크레온 가루를 섞어 색깔을 내고, 사이좋은 동무들과 나누어 씹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다라시(たらし)가 없다, 곧 단정하지 못하다고 꾸지람을 했다. 이런 나무람에 아랑곳없이 귀질긴 아이들은 출출한 입을 즐겁게 해주는데 차마 뱉지 못한 채, 동글동글 빚어 기둥이나 책상에 붙여 놓았다가, 허전한 입을 달래기 위해 오물오물 되씹곤 했다.

해방과 함께 우리 소읍에도 미군이 진주하였다. 아이들을 길바닥에 뉘어놓고 탱크로 밀어붙일 것이다는 적군을 환영하러 나간다니... 루즈벨트(미 대통령)와 처칠(영 수상) 사진의 눈알을 바늘로 찌르며 좋아했던 우리들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げた(왜 나막신)를 벗어들고 어른들 틈에 숨어 먼발치에서 숨죽이며 그들 행렬을 바라보았다. 아, 흑백의 외계인들! 성큼성큼 걷는 그들은 일인들 말대로 마치 にくい(니꾸이=미운) 짐승 같았다. 게다가 질근질근 씹고 있는 저건 껌이 아닌가? 과연 야만인들이구나. 저게 전투하는 군인들인가, 나사 빠져 헐렁거리는 연장들이지.

그런데 그들의 껌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부러운 과자로 재빠르게 둔갑했다. 송진 고무밖에 모르던 아이들은 그 달콤한 맛과 은은한 향기에 중독이 된 채, 넉살좋게 “Give me chewing-gum.”하고 손을 벌리며, 미군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이렇게 혼을 빼앗긴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이름조차 낯선 카페와 빠에서 미군 상대로 일하는 여인들도, 입술 연지를 새빨갛게 바르고 껌을 쩍쩍 씹으며 유행에 앞장서는 자칭 모던 걸(modern girl)이 되었다.

미군이 뿌린 껌 씨앗은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시판되자 널리 뿌리내려, 독버섯으로 활짝 피기도 했다. 빚어놓았다가 되씹은 유구한 전통은 계속 이어졌으며, 고무줄처럼 길게 늘여뜨리거나 풍선처럼 볼록하게 불어 묘기를 자랑했다. 한편 여인들은 쩍쩍 소리 내는 것을 애교처럼 여기었다. 이까짓 풍경이야 사팔눈으로라도 볼 수 있겠으나, 남이 앉는 의자와 옷과 머리카락에 몰래 붙여놓고 골탕 먹이는 심술쟁이 악동들도 있었다. 한편 보도 불럭 심지어 건물 안 대리석 바닥에 함부로 뱉어, 검버섯 같은 얼룩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며, 청소부들의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다.

우리네 삶도 마치 껌 씹는 것과 엇비슷하지 않을까? 달콤한 맛과 향기도 잠깐. 이내 맛이 가면 미련 없이 뱉어야 하거늘, 빚어 두었다가 입이 허전하여 되씹어본들 옛 사랑이 되돌아오랴.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심술, 껌 종이에나 싸지, 아무 데나 퉤퉤 뱉곤 나 몰라라 시치미 떼는 몰염치, 우스갯소리지만 달리는 티코(TICO) 경차(輕車)에 들어붙어 교통을 방해하는 불법....이런 풍속도는 이젠 어지간히 색이 바랬지만, 그래도 껌의 로맨스 그레이(romance

grey)는 찾아오지 않고, 껌 씹기의 히스 스토리(his story)는 더 기록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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