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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새우타령

by 최연수

새처럼 푸른 하늘을 날고싶다.

나도.


고기처럼 깊은 바다에서 헤엄치고싶다.

나도.


가지처럼 해를 향해 죽죽 벋어가고싶다.

나도.


뿌리처럼 땅속 깊이 죽죽 벋어가고싶다.

나도.


분수처럼 구름까지 솟구치고싶다.

나도.


폭포처럼 힘차게 뛰어내리고싶다.

나도.


말처럼 거침없이 앞으로 달리고싶다.

나도.


뒤로도 쏜살같이 뛰어가고싶다.


(2021.5.27)




“고녀석 당차네”

어린 나이에 앞으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아이의 抱負(포부)가 크다고 대견하게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이후 여러 대통령의 비극적인 말로를 바라보며, 지금은 그런 어리석은 아이들은 없다. 다원화 시대를 맞이해서 뜻과 생각이 다양하고 세분화되어 있을 뿐, 그 나름대로 원대한 이상과 화려한 꿈을 갖지 않은 아이들은 없다. 나도 청소년 시절엔, 태양을 보고 쏘는 화살이 나뭇가지를 보고 쏘는 화살보다 높이 날아간다며, 윌리암 크라크의 ‘Boys, be ambitious!’를 좌우명으로 삼고 靑雲(청운)의 꿈을 꾸었다. 星人(성인)이라는 筆名(필명)을 쓰면서 별처럼 빛나는 꿈을. 물론 立志(입지)를 위해 노력도 하였다.


그러나 낮이 되어 별은 빛을 잃고,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잠16:1)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는 말씀을 만나지 않았으면, 좌절과 실의의 늪에서 허우적거렸을 것이다.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 謀事在人 成事在天(모사재인 성사재천) 이라고, 아쉬움은 있으나 내 능력과 환경에 비추어볼 때 최선을 다했기에 큰 후회는 없다.


‘나도’라는 말 속에는 나의 主體性(주체성)이 없다. 主語(주어)는 남이지, 나는 남에게 從屬(종속)되어 있는 피동체에 불과하다. 남이 가지 않은 處女地(처녀지)를 개척한다거나, 남이 하지 못한 새로운 일을 創業(창업)하거나 새로운 것은 만들어내는 發明(발명)이 아니다. 따라서 입지를 했다 해도 크게 자랑스런 일은 아니다. 그래서 ‘뒤로도 쏜살같이 뛰고싶다는’ 말에는, 마침내 ‘나도’라는 반응을 보이지 못한 채 얼버무리고 만다.

主人公(주인공)이란 원래 佛家(불가)에서 자신의 마음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내가 내 몸의 주인공이 못 되면, 육체의 욕망에 끌려 다니는 허깨비 인생이 되므로, 사람은 마음의 간수를 잘 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리하여 참 나를 엉뚱한 딴 데 가서 찾으려 들지 말고, 틈틈이 주인공을 불러내어 자성(自性)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나도’를 되풀이하면서 남을 뒤쫓다보니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삶을 살지 않았나 생각할 때가 있다. 나의 주인은 곧 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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