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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새우타령

by 최연수

너희는 왜 앉은뱅이냐?

들꽃인데요 뭐.

너희는 이리 가늘고 여리냐?

들꽃이잖아요.

너희는 곱게 꾸밀 줄도 모르냐?

아직도 들꽃인 줄 모르나봐


우람하고 곱고 향기로우면

궁궐 뜰에서 자라고 있지,

강아지가 오줌 똥 갈기고 가는

이 들판에 있겠어요?


세상에서 찌들고 삶에 지친 사람들이

궁궐 안에 들어갈 수 있나요?

터덕터덕 들판을 지나다가

우릴 보고 웃음 짓고,

휘청휘청 들길을 걷다가

우릴 보고 걸음을 멈추는데요..


이름도 모른다며 비쭉거리지만

나도 내 이름을 모르는걸요.

옹기종기 함께 자라고

너나없이 올망졸망 함께 살며,

척 체 하지 않고 오손도손

한 철 이렇게 사는 것만 알아요.


(2021. 5. 20)




우리는 복도식 아파트에서 산다. 어느 집은 이 복도를 장독대나 창고로 쓰는데, 우리 집은 작은 꽃밭처럼 꾸미고 있다. 갖가지 화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잡초 같은 들풀들이 심겨져 있고, 별로 보잘 것 없는 들꽃이 피기도 한다. 한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긴 복도를 지나, 현관문을 열기 전에 이 꽃밭을 먼저 보게 된다. 한 식구들도 심드렁하게 지나치는 이 꽃밭 앞에,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이들을 요리조리 살펴본다. 물론 집 안에 들어서면 베란다에 값지고 이름 있는 화초들도 있건만.


그런데 이 비좁은 곳에, 할 일 없이 웬 들풀 들꽃을 가꾸고 있을까? 글쎄 나도 딱히 그럴듯한 대답은 못한다. 복도는 집 밖이므로 들판과 다름없고, 들판엔 들꽃이 피어야 제 격이라고 얼버무릴 수 밖에. 거창하게 그 어떤 철학을 논하고, 미학을 들이댄들 말장난밖에 아니 되겠나? 콘크리트 아파트 숲 속에서, 아스팔트 길 위를 걸으며 오래 살다보니, 흙과 나무 풀과 꽃이 그리울 때가 있다. 농가는 아니었지만 시골에서 자란 鄕愁(향수)일지도 모른다.


한편, 내 正體性(정체성)이 들풀 들꽃이 아닌가 싶고, 그래서 못났지만 自愛(자애)가 아닐까 해석하기도 한다. 高官大爵(고관대작)이 되었으면 집안에 잡초나 야생화의 그림자라도 있겠는가? 담장도 울타리도 없는 民草(민초)들이야 들판이 곧 마당이고, 잡초 야생화가 우거진 곳이 곧 花壇(화단)이지.


세상 일에 찌들고 삶에 지친 사람들은, 잡초를 밟으며 터덕터덕 들판을 지나야 하고, 들꽃을 보지도 못한 체 휘청휘청 들길을 걸어가는데, 우람하고 곱고 향기로운 꽃들을 만날 수 있으랴. 그런데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피고 지는 들꽃을 눈여겨 보며, 웃음 짓는 別種(별종)의 사람들이 있다면 稀貴(희귀)하니까 天然記念物(천연기념물)이 아닌가? ‘내 마음의 들꽃 산책’이란 책이 있다. 식물에 진심인 식물학자와 평생 들꽃을 기록한 사진 작가의 이야기다.


‘오늘 만난 작은 꽃 한 송이가 행복한 삶의 실머리가 된다면, 제 삶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식물학자 이유미- ‘살아내기 버거울수록, 그래서 삶이란 참으로 쓸쓸한 것이구나 싶을 때, 길가에 피어난 무심한 한 송이 꽃에서 위로를 받는다고 하면 역설이 될까요?’ -평생 들꽃을 기록한 사진 작가 송기엽- 옹기종기 모여서 함께 자라고, 너나 없이 올망졸망 함께 살며, 척 체 하지 않고 오손도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곧 들꽃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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