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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오리바람

새우타령

by 최연수

바람 잘 날이 없다.

가지가 많지도 않은데.

회오리치며 거세게 분다.

이무기들이 용 되어 하늘로 오르나보다.


밤낮 없이 진흙탕 속에서

으르렁거리며 싸우더니,

이제 바람을 일으키며

내달리고 있구나.


몰고 다닌 졸개도 폭우 되어

산들을 깔아뭉개고,

덩달아 파도까지 성내며

섬들을 덮치는데,


바람따라 물결따라 흔들리는 가지들이야

꺾이고 부러진들 어쩔 수 없지만,

깊지 않은 뿌리까지 뽑히면

뭇 새들은 어이하랴.


아무데나 날아가면 되지

날개는 왜 달렸냐고 하지만,

어디다 둥지지어 새끼 치며

어디 모여 앉아 넋두리하나?


(2022. 9. 20)




가지 많은 나무도 아닌데 바람 잘 날이 없더니, 마침내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위력적인 태풍이 불어온다는 기상청 예보가 연달았다.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 같은 태풍은 아닌가 조마조마 했다. 힌남노 (HINNAMNOR). 난마돌(NANMADOR). 이름조차 괴물 같지 않은가? 아닌게아니라 남해안 지방에는 큰 피해를 입혔다. 전국적인 규모가 아닌 채 다행히 동해로 빠져 사라졌으니 망정이지, 큰 재난일뻔 했다.


태풍이라면 나에게 트라우마가 있다. 예닐곱살 무렵 겪었던 그 폭풍의 악몽 때문이다. 한반도 남단 해안가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밤중에 폭풍이 불어 기둥이 흔들린 듯 했고, 양철 지붕이 덜커덩거렸는데, 가끔 지붕 사이로 별이 보였다. 비는 오지 않은 마른 바람이라고 했다. 온 식구가 바들바들 떨며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큰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동트자마자 이 기회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공구(工具)외에 별 세간은 없었는데, 이삿짐을 꾸려 배에 실었다. 어머니는 심한 배멀미로 기진맥진하였지만, 철없는 우리들은 간밤의 악몽을 잊은 채 뱃전에 부딪치는 파도를 보고 낄낄대고, 바닷물에 떠다니는 해초(진질?)를 건져 질근질근 씹었다. 폭풍이 잔잔해진 후였지만 무모한 모험을 했다고들 혀를 찼다.


최근 우리나라 안팎의 정세가 마치 태풍 전야 같다. 특히 정치계가 그렇다. 애써 정치적 무관심으로 소일(消日) 하려는데, 태풍 예고가 심상치 않다. 여야, 심지어 자기네 진영끼리도 죽기 살기로 물고 뜯는 꼴이 마치 이전투구(泥田鬪狗)같다. 열대지방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임에 틀림없다. 아니나다를까, 이 개 무리가 먼지 바람을 일으켜 내달리며 거세게 몰려왔다. 문득 ‘회리바람 표’(飆)자가 눈길을 끈다. 갑골문(甲骨文)의 해석을 알 길이 없으나, 세 마리의 ‘개견(犬)자 옆에 ‘바람풍(風)’자가 붙어있는 회의문자(會意文字)라면, 진흙탕 속에서 싸우던 그 무리가 일으킨 회오리바람이 아닌가?


때를 기다리던 이무기들은 이 회리바람을 타고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바람 부는대로, 물결 치는대로 흔들리는 여린 나뭇가지들이야 꺾이고 부러진들 어쩔 수 없다. 더구나 땅속 깊이 벋지 못한 뿌리가 송두리째 뽑힌다면...나뭇가지에 둥지를 짓고 새끼치며 사는 새들, 나뭇가지에 모여 앉아 넋두리 하며 재잘거리던 새들은 어쩌랴. 다른 데로 훌훌 날아가면 되지, 날개는 왜 달렸느냐고? 아, 서민(庶民)의 한숨은 바람개비도 못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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