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타령
앙상한 가시 틈새에
요렇게 고운 꽃이!
가시밭길 걸어온 무지렁이들에게
꽃길을 마련해주었으니...
꽃 맵시에 홀리고
나비 춤에 눈이 멀어,
꽃길 따라 기고 달리고
꽃방석 위에서 눕고 뒹굴고...
앗 따가와!,
벌에 쏘이고 나서야 번쩍 눈을 떴지.
쓰라린 얼굴엔 붉은 거미줄.
아린 몸뚱이에 퍼런 멍 자국.
고운 꽃 틈새에
이렇게 앙상한 가시가!
향기로운 꽃 틈새에 숨어
벌이 벼르고 있었다니...
(2022.4.30 )
찔레꽃·장미꽃·명자꽃... 이렇게 곱고 향기로운 꽃 틈새에 요렇게 앙상한 가시가 돋아 있었다고 얼굴을 찌푸리기보다, 이렇게 앙상한 가시 틈새에 요렇게 곱고 향기로운 꽃들이 피었다고 밝은 낯으로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하였다. 부정적인 삶이 아니라 긍정적인 삶이 곧 행복이라고 말이다. 가시밭길을 걸어온 우리들 무지렁이들에게, 한 번도 걸어보지 못했던 꽃길을 마련해 주겠다고 했으니 얼마나 고마운 말인가?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에 빈대가 안 남는다’는 속담을 되뇌이면서도, “설마...” 하면서 한 해 두 해 기다려 보았다. 꽃 맵시와 꽃 향기에 취하고, 춤추며 날아오는 나비들에 눈이 멀어, 이 꽃길을 따라 아기마냥 기기도 하고 육상 선수처럼 달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꽃방석 삼아 눕기도 하고 뒹굴기도 하면서 5년. 막판에 눈엣 가시 같다는 검사들의 이를 모조리 빼겠다고 으름장이다. 마침내 꽃길·꽃방석을 마련해주겠다는 말인가? 하기야 살판났다며 활개 치는 사람들이 있겠지.
“앗 따가워!”
난데없이 나타난 벌한테 목덜미를 쏘였다. 꽃 틈새에 숨어 벼르고 있었나보다. 口蜜腹劍(구밀복검) 곧 입 속에는 꿀을 담고 뱃속에는 칼을 지녔다는 말을 이런데 쓰는 말이겠다. 그러니까 이 벌이야말로 중국 唐(당)나라 玄宗(현종 712∼756) 후기의 宰相(재상) 李林甫(이림보)가 아닌가? 뇌물로 환관과 후궁들의 환심을 사는 한편 현종에게 아첨하여 마침내 재상이 된 그는, 楊貴妃(양귀비)에게 빠져 政事(정사)를 멀리하는 현종의 유흥을 부추겨 조정을 左之右之(좌지우지)하였다. 충신이나 자기 권위에 위협적인 신하가 나타나면 가차 없이 제거했다. 정적을 제거할 때는 먼저 상대방을 한껏 추켜 올린 다음 뒤통수를 치는 表裏不同(표리부동)한 수법을 썼기 때문에, 특히 벼슬아치들은 모두 이림보를 두려워하여 구밀복검이라 하였다.
벌에 한 방 쏘이고 나서야 번쩍 정신이 들었다. 얼굴이 쓰라리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웬 붉은 거미줄이 이렇게 어지럽나? 잔 가시에 긁힌 자국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몸뚱이 여기저기 쑤시고 아리다. 이건 퍼런 피멍이 아닌가? 굵은 가시에 찔린 줄도 모르고...꽃길은 가시밭길이요, 꽃방석은 바늘방석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 동안 甘言利說(감언이설)과 巧言令色(교언영색)에 속아 온 것이다. 나만의 후회요 나만의 원망인가 싶어, 나 못난 탓으로만 여기며 내 머리를 치는데, 옆 집 박 서방도, 앞 집 김씨 아줌마도 입술을 깨물면서 건너 마을 푸른 기와집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지 않나? 이렇게 곱고 향기로운 꽃 틈새에 요렇게 앙상한 가시가 돋아 있었다니...얼굴을 찌푸린 채 팔자타령 하며 부정적으로 살아야 하는 우리 무지렁이들.
젖내 나는 동화나 얼토당토아니한 신화 따위나 읽으면서 消日(소일)하려는데, 누구의 말에도 귀를 막고, 무엇을 보여주어도 눈을 감아야 한다니, 그야말로 삶은 달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