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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보루스

새우타령

by 최연수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고개를 떨구고 있을까?

뭘 바라기에

고개를 숙이어 빌고 있을까?


벼 이삭이 알차게 익어

고개 숙이듯이,

열매가 많이 열려

가지가 휘어지듯이.


헬레보루스여,

그만 고개를 들어보세요.

“..........”

높은데다 올려 놓으라고?

고개를 들고 쳐다보란다.

눈을 들어 우러러보란다.

아름다운 참 모습을

눈여겨 보란다.


헬레보루스여,

고개의 각도가 아니라

마음의 각도를 꺾어야지요.

참 마음 민낯을 드러내세요.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나요?


(2022.2.12)




꽃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마는, 나도 어렸을적부터 꽃을 좋아했다.

나를 닮은 듯 딸내미도 꽃을 아주 좋아한다. 한겨울인데 이번에 사온 보라색 꽃이, 크리스마스 로즈라는 별명대로 크리스마스 철이 되면 핀다는 꽃이다. 언듯 보기에 아네모네 같은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처음엔 시든 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원래의 모습이란다. 여늬때 같으면 수채화 한 점 그렸어야 하는데...

‘겸손이 지나치면 교만인데...’

딸내미가 높은 장식장 위에 올려놓았다. 비로소 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높은 데 놓아달라는 게 아닌가? 그리하여 고개를 쳐들고 우러러보라는 뜻이 아닌가?

‘건방지다!’

아무리 꽃이지만 교만하다. 성경은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 하였는데... 하기야 전설에 따르면 양치기 소년이 예수님께 이 꽃을 바쳤는데, 예수님을 바라본 이 꽃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는 것이다. 결코 교만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입후보자마다 고개를 숙인 것이 선거철의 풍속도(風俗圖)가 된지 오래다. 세뱃돈 기다리는 어린이들의 엉큼한 속마음을 알면서도, 얄밉게 보는 사람이 있으랴. 그러나 코가 땅에 닿도록 넓적 엎드린 저 모습에는 닭살이 돋을 때가 있다. 지위가 높고 힘이 있다고, 평소에 목을 곧게 세운 채 눈을 내리깔며 아랫사람들에게 갑질하던 사람들이, 표를 구걸하는 저 모습을 보라. 연단(演壇)에 올라서면 자기보다 나은 사람 없다고 안하무인(眼下無人)인데... 그리하여 당선되면 제왕(帝王)으로 군림(君臨)한 것은 시간 문제 아니었던가?

할미꽃은 싹 날 때부터 허리가 구부러져있어, ‘호호 백발 할미꽃....’이라고 노래(동요) 부르며 얄밉다기보다 오히려 귀엽게 보았다. 그런데 이 꽃은 귀엽다기보다 얄밉다. ‘겸손은 머리의 각도(角度가 아니고, 마음의 각도’인데...

헬레보루스(Helleborus)여, 민낯을 드러내세요.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가? 잘 익은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주렁주렁 열매 많은 가지가 휘어지듯이, 저 꽃도 빼어나게 곱고 아름답기에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으려니 했다가, 높은 데 올려놓고 우러러 쳐다보란 것 같아 뒷맛이 씁쓰레하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는 말도 없이, 그저 잘못을 사과한다. 뭘 어떻게 잘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지 설명도 없이, 자기만 따르라고 한다. 정말 예수님 바라보자마자 고개를 숙였던 그 겸손함을 본받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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