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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대궐을 바라보며

새우타령

by 최연수

돌아 앉아 입술을 깨물면서

따끔거릴뿐 아프지 않다 한다.

내가 앉은 가시방석이

꽃방석이라고 하니...


고개 돌려 눈물 훌쩍이면서

아릴뿐 아프지 않다 한다.

내가 걷는 가시밭길이

꽃길이라고 하니...


요렇게 고운 장미꽃 틈에

웬 가시냐고 찡그리기보다

이렇게 앙상한 가시 틈에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피느냐고

환히 웃으라고 했지.


가시에 찔리면서도 짐짓 웃음짓고

벌에 쏘이면서도 시치미떼며,

꽃방석에서 일어나 꽃길을 걸었으니

이젠 꽃대궐에 이르겠지.


(2022. 11. 10)




피천득(皮千得)길을 걸어가다가 반포천(盤浦川)으로 돌아오는 산책길을 한 시간 남짓 걷는 일이 요즘 일상생활이다. 가는 길목에 ‘지금 당신이 걷고 있는 이 길이 꽃길입니다’는 푯말이 서있다. 아닌게아니라 사철 피고 지는 꽃들, 특히 어렸을 적에 하찮게 여겼던 갖가지 야생화들이, 고향에 온 듯 정겹다. 그래서 그림으로 그린 게 또한 요즘 일상생활이 되었다. 지금 걷는 길이 꽃길이 아닌가?


그런데 일상생활이 퍽 고달프고 힘든 사람들이 이 푯말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자기가 걷고 있는 가시밭길을 알지도 못한 사람들의 사치스러운 말로 여기지 않을까? 그러면서 반평생 동안의 나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나도 그 때 이 푯말을 보았다면 꽃길을 걷는 사람들의 잠꼬대 쯤으로 여겼을 것임에 틀림없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을 반추하면서, 역경과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 환경을 탓하기도 하고, 팔자 타령도 하며, 내 못난 것을 자책하기도 하며...인생 후반기로 U턴 하면서부터, 환경이 바뀌었을뿐더러 생각을 달리 하기로 했다. B.C. 인생관을 A.D. 인생관으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장미꽃 속에 웬 앙상한 가시냐고 얼굴을 찌푸리기보다, 이렇게 앙상한 가시 속에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피다니 하며 환히 웃기로 했다.


내가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이 아니라 꽃 방석이요, 내가 걷는 길이 가시밭길이 아니라 꽃길이라고 여기며 살았더라면, 일찍이 꽃대궐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일찍이 신앙생활을 했으면 모를까, 철부지 시절에 그렇게 어른스럽게 의연(毅然)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르긴 하지만 지금도 철들지 않은 무지렁이들이야 가시방석이 아프다고 짜증내고, 가시밭길이 괴롭다고 신음하지 않을까?


시인 구상(具常)은 ‘꽃자리’에서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 자리니라. 고 읊었다.

‘지금 걷는 이 길이 꽃길이다’ ‘네가 앉은 이 자리가 꽃방석이다’

이 말을 음미(吟味)하면 씹을수록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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