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쉬고 생각하고
소나타(SONATA) 신형 승용차를 새로 뽑았다고 우쭐대는 친구에게, “그건 소나 타는게지...난 BMW(bus․metro․walk)를 타고 다닌다.”고 시치미를 떼었다. 몇 번 카 센타 신세는 졌지만, 폐차는 커녕 ‘나 11호’는 중고차 시장 근처도 얼씬거리는 일 없이, 높은 산 깊은 골짜기 아니 간데가 없다. 스페어 타이어를 지니거나 체인도 갖추지 않은 채 여든 고개까지 올라왔으니, 엔진이 좋은 건지 바퀴가 좋은 건지...라이트급 체중에 잠자리 포수 걸음을 걷고보니, 양말 자주 펑크낸 일도 신발 쉬 닳리는 일도 없이 참 많이 걸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내 발은 온전하지 못하다. 공을 차다가 엄지 발가락을 다친 것을 비롯해서, 갑자기 너머지는 노인을 부축하다가 발목을 다쳤으며, 지리산 등반을 하다가 발을 헛 디딘 바람에 무릎이 튀어나왔다. 마침내 무거운 화분을 옮기다가 허리까지 다쳤다. 공교롭게 모두 오른쪽이고, 모든 게 내 부주의로 일어난 사고였는데도, 짜증을 내거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더 큰 변고 없이, 나를 태워준 그 고마움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足’ 자가 ‘발 족’으로만 알고 있다가, ‘넉넉할 족’임도 알았을 때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滿足․洽足이란 말을 무심코 써오다가, 왜 滿․洽
자에 足자를 덧붙이는지 깨닫게 되고, 어느새 知足不辱(지족불욕)이 내 좌우명처럼 되기도 했다. 서양에서 일상의 불편을 신발 안 돌멩이에 비유하고, ‘역사적으로 해묵은 숙제’를 의미하기도 한다. 발이 편하고 따뜻해야 큰 대(大)자로 누워 만족하게 잠들 수 있지 않은가? 발이 제2의 심장이라는데, 이렇게 귀중한 발을 너무 혹사하지 않나 미안할 때도 더러 있었지만, 그러나 오히려 걷기가 심장의 건강에 좋다니 덜 미안하구나.
하바드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월 6회, 1회 30분 이상 걷는 사람은 사망률 52%가 줄었다고 발표했다. 한편 런던대에서도 많이 걷는 사람의 심혈관 질병 위험도가 31% 줄었고, 사망율도 32% 줄었다고 연구 보고했다. 그러면서 ‘당신의 신발이 유전자보다 당신의 수명을 결정하는 더 강력한 지표다’고 하면서, 걷기 효과는 유전적 체질이 아니라 습관에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니까 꾸준히 걸으라는 메시지인데, 나는 연구 발표 이전에 이미 생활화 되었으니 선견지명이 있었나보다.
걸음 보(步)자를 살펴보면 위의 ‘발’의 뜻인 止 아래 젊을 소(少)자가 덧붙여 있다. 곧 발로 걸으면 젊어진다는 메시지가 들어있는 게 아닐까? 이제 늙은데다 온전한 다리도 아니니, 관절 연골이 쉬 닳지 않도록 지나치게 걷지 말라고 아내는 옐로우 카드를 들어보이지만, 그럼 하와이(하루 종일 와이프 얼굴만 쳐다보는 것)대학이나 방콕(방 안에 콕 박혀있는 것)대학 다니라는 거냐 하면서, 오히려 회춘하지 않느냐고 너스레를 떤다. 방구석에 있으면 고작해야 TV․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루 세끼 밥이나 꼭꼭 챙겨 먹어야 하는 ‘세 끼 새끼’가 되어야 하는데, 아내 해방 시켜주니 애처가 아니냐고 둘러대기도 한다.
그런데 무조건 걷기만 하는 게 아니다. 止가 발의 뜻이기는 하지만, 그칠 혹은 머무를 지(止)자 이기도하다. 그렇다면 걸음을 그치고 머물어 쉬라는 메시지도 담고 있는 것 같다. 다리가 뻐근하고 몸이 나른할 때, 나무 그늘 아래서 발․다리를 주물러주고 숨도 고르면서, 땀을 식히는 일이 얼마나 상쾌한가? 일생에 아무 도움이 되지않은 쓰잘 데 없는 잡념 훌훌 털어버리고 침묵하며 걷다가, 멈추어 쉴 때는 나와 대화하며 자유롭게 사색을 한다는 것... 철학가가 아니면 맛보지 못한 경지에 이른다. 젊었을 시절이야 너머질새라 쉴 새 없이 페달을 밟았지만, 나이 들어 천천히 소걸음 걷다보면, 작아서 눈에 띄지 않아 하찮게 여기며지나쳤던 귀한 보배들을 발견하고 또 얼마나 감동하는가?
히말라야산을 정복하는 등산가나 실크로드를 걷는 여행가는커녕, 백두대간이나 제주 올레길조차 걸어보지 못한 주제에, 그들이 보면 부잣집 안 마당 몇 바퀴 돌거나, 동네 마을 갔다온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쓰다니... 하지만 은퇴(retirement)는 타이어를 다시 갈아 끼우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몸을 리모델링하면 백수까지 살 것이라 하지만, 지금까지 수술하고 입원하는 일 없이, 이 타이어 갈아 끼우지 않고, 가까운 공원 산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한다. ‘1099일의 여행’ 기록을 쓴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인간이란 걷기 위해 태어난 동물임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그래 걷자!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걷고 싶었던 오늘이 아닌가?
2014.1.1 여든 고개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