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쉬고 생각하고
지하철 9호선 여의도역에서 내려 곧바로 여의도공원으로. 여의도는 한강에 토사가 쌓여 이루어진 모래땅으로, 고려시대는 말 사육장으로 조선시대는 목축장이나 척박한 농경지로 사용되었다. 그 후 간이 비행장으로 만들어져,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이 모국 방문 기념으로 이 비행장에 내렸다고. 김포로 비행장이 옮겨간 후 공군기지로 사용되다가, ’71년 여의도 광장으로 되었다. 국군의 날 군대들의 퍼레이드를 비롯해서, ’73년 120여 만 명의 빌리 그레함 전도대회와, ’84년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을 열었던 유명한 곳인데, ’99년 현재의 공원으로 탈바꿈한 것.
한복판에는 50m 높이의 게양대에 커다란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그 옆에 멋있는 공군 창군 60주년 기념탑이 서 있다. 미군으로부터 공군 여의도 기지를 인수하여, 건국기(T-6)의 명명식을 거행한 곳이라고. 공원 주위를 순환하는 2.4Km의 자전거길로 유선형 모습의 자전거들이 신나게 달리고, 어린이들이 인라인스케이트를 맘껏 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갖가지 예쁜 꽃길이 마련되어 있으나 이름표를 달아놓았으면 하는 아쉬움.
문화마당 바깥쪽으로 자전거길을 따라 3.9Km의 산책로가 닦아져 있어, 때마침 점심 시간 직장인들이 밀물처럼 모여들어 붐비기 시작했다. 번화한 도심 속에 이런 자연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 다만 광장에 마련한 공원이 다 그렇듯, 오르막 내리막 언덕이 많지 않았다. 덥기도 하고 시간이 빠듯해서 숲길 산책은 다음으로 미루었다. 아직 넓은 운동장이 텅 비어 있어 쓸쓸했지만, 해가 서쪽으로 비끼면 구릿빛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오리라. 그리하여 뛰고 달리며 웃음과 함성이 운동장을 메우리라.
2011년 11월 11일 11시 11분 빼빼로데이 예정대로 9호선을 타다. 다시 여의도공원으로. 이제 날씨도 선선하여 차분하게 걷기로. 1번 출입구에서 문화의 마당을 끼고 왼쪽 산책길에 들어섰다. 드넓은 문화마당은 지난 여름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운동하거나 놀고 있었는데, 야외무대는 비어있었다.
자연을 감상하고 관찰․학습할 수 있는 생태학습장으로. 자연적인 식생천이(植生遷移)를 유도하고자, 자연상태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생태연못을 중심으로 자연생태의 숲이 마련되어 있었다. 목제데크로 된 관찰로가 요리 꼬불 저리 구불 설치되어, 사면팔방을 편리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연못으로 흘러든 도랑물은 거의 말랐으나, 연못은 물이 괴어 있었으며, 다만 수생 동․식물들이 아직은 다양하게 있지 않아 쓸쓸했다고 할까? 그러나 숲속에는 40여 종류의 많은 나무들이 자라고, 안내판에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U턴하여 북쪽 길을 걷다가 잔디마당 연못으로. 모처럼 높아진 언덕배기엔 소나무가 서 있고 반반한 바위들이 놓여있어, 쉬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타원형으로 아름답게 디자인된 발맛사지 길을 걸었다. 처음엔 간지럽다기보다는 몹시 아리고 아파 가벼운 신음 소리가 나왔으나, 체면 때문에 참고 걸었더니 나중엔 감각이 둔하여져 멍멍해졌다. 인도 사람인 듯한 부부가 지나가면서 씽긋씽긋 웃는구나.
사모정으로 올라갔다. 한국 전통의 숲 안에 위치하여, 발 아래 펼쳐진 지당을 운치있게 볼 수 있는 정자이다. 지당은 연못과 계류, 오솔길이 있는 전통 연못으로 과거․현재․미래를 상징하는 세 개의 작은 인공 섬이 있다. 잉어 새끼들이 까맣고, 4 마리의 오리가 유유히 노닐고 있는데, 물속의 갈퀴 발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쉬리 프뤼돔의 노벨상 수상작 ‘백조’와 다름없다. 마지막으로 8각형 여의정으로. 소나무들로 이뤄진 전통의 숲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통 정자이다. 자유롭게 흐르는 시냇물과 연결되어 있다.
돌아오는 길에서 갑자기 홍수를 만났다. 댐 문을 열고 방류한 2m 파고의 인파에 휩쓸릴 것 같았다. 파도 타기하듯 한 마리 송사리가 되어 역류. 노틀들은 가뭄에 콩 나듯 보일 뿐 젊은 선남선녀들이요, 블루 칼라는 안 보이고온통 화이트 칼라다. 그들의 얼굴 표정과 차림새를 본 것만으로도 참 재미있었다. 점심시간 업무로부터 해방되어 짬을 내어 바람 쏘이러 쏟아져 나온 것이지. 그런데 그들 얼굴 어느 구석에 야누스와 같은 두 얼굴이 있고, 마음 어느 구석에 선악이 공존하고 있단 말인가?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 어느 잣대를 대어도, 타고 난 선인도 악인도 아닌 것 같다. 다만 내가 그리스의 괴인 프로크루스테스가 되어 쇠 침대를 만들어 놓고, ‘남’을 ‘우리’로 끌어안지 못한 채, 길면 잘라서 죽이고 짧으면 늘여서 죽이는 것이지. 곧 차이를 견디지 못한 ‘나’가 항상 문제가 아닌지....
녹의홍상(綠衣紅裳)이라 했듯이, 은행잎과 단풍잎이 상록수와 어울렸으면 좀 아름다울까? 갈색 낙엽이 주조를 이룬 것이 좀 아쉽다. 오히려 마가목․낙산홍․피라칸사 등 빨간 열매가 구슬처럼 다닥다닥 열린 게 귀엽고 깜찍하다. 그런데 삶이 얼마나 각박하면, 이 열매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구나. 아니다. 그들의 EQ가 나만 못하겠나? 지금 이 상황 때문이지. 이렇게 나도 모르게 나 중심의 독단과 편견에 빠져, 또 남을 판단하기 일쑤다.
세종대왕 동상을 보면서, 저리도 인자하고 선량한 위인에게서 어떻게 수양대군과 같은 포악하고 음험한 아들이 나왔을까, 며칠 전 사육신공원에서의 생각이 되살아났다. 성경에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마태복음7:18, 누가복음6:43)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