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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공원

걷고 쉬고 생각하고

by 최연수

앙뉘(ennui)로부터 탈출하고자, 지하철 9호선 고속버스터미널역에서 내려 곧바로 서울성모병원 뒷길로 들어섰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너무 가까워 무심코 지나쳤던 곳인데 잘 왔구나. 좁은 골방에서 창문을 열어젖뜨린 것과 같았다고 할까? 큰 소나무보다는 잡목이 많은 게 좀 아쉬웠으며, 주민들이 기증한 어린 벚나무․단풍나무 등이 이름표를 달고 심겨져 있는 것이 특징. 오르막길이 가파른 편이어서 노약자들에게는 힘들지만, 층계가 잘 되어 있었다.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토길이라고 하는데, 신을 벗어들자니 나에겐 무리 같았다. 참나무 쉼터 등 쉼터와 운동시설이 드문드문 마련되어 누구에게나 편리하다.

병원 뒷산이라 환자복을 입은 채 올라온 몇몇 젊은이와, 지팡이를 짚고 쉬엄쉬엄 올라온 늙은이들이 벤치에서 쉬고 있다. 대화를 엿들으니 모두가 건강과 장수 문제이다. 평균수명이 80을 넘는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백수까지 살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있고, 웰빙에 관한 관심이 대단한 것 같다.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와 불사약이 제주도의 동백 기름이었다는 둥, 고려 황칠나무라는 둥...겉으로는 추레해 보이는 노인이지만, 건강에 관한 한 일가견을 가진 유식한 분들이다. ‘인명은 재천’이 아니라 이제 ‘인명은 재심(在心)’이라면서, 건강을 위해서 이렇게 매일 산책 한다는 것.

그러나 진시황도 50세 정도밖에 살지 못했으니, 건강과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게 아닌가? 나도 희수까지 이 국산품 몸 큰 고장 없이 써온 것 감사한다. 리모델링하면 백수까지 살 거라고들 하지만, 로마 신화의 티토누스처럼 늙어 쪼그라들기만 할뿐 죽지 않거나, 그리스 신화의 시발레처럼 오그라져 병 속에 담긴 채 동굴 천정에 매달려 구경거리가 되면 어찌하겠는가?

폭염 주의보가 내렸으나 숲길은 별로 덥지 않다. 명물이 된 누에다리를 건넜다. 반포대로로 끊겼던 서릿풀공원과 몽마르뜨공원을 잇는 누에 모양의 다리이다. 누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충(天蟲)이라 하지 않은가? 조선시대 국립양잠소인 ‘잠실도회’가 잠원동(蠶院洞)에 있어 잠업이 성행했던 곳이라고. 다리를 건너면 두 마리의 누에가 입을 맞추며 사랑을 나누는 조각 잠몽(蠶夢)이 있다. 한 번에 500 개의 알을 낳고, 1Km의 비단실을 뽑아낸다는 누에는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다. 따라서 이들 입술에 손을 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니, 젊은이들의 손을 타 머지않아 닳아지겠다. 밤엔 2,376 개의 발광다이오드(LED)의 천연색 조명이 호화찬란하다.

갈림길에서 몽마르뜨공원으로. 넓은 잔디밭과 함께 초록 세계다. 에머랄드보석까지 꺼릴 정도로, 원래 프랑스인들은 초록색을 무질서와 위반의 상징이요 불행을 부르는 색으로 여겼다. 그런데 뉴턴의 ‘스팩트럼 발견’으로, ‘위험’의 빨간색의 보색인 초록색이 ‘안전’ 색으로 인식되면서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 근처 서래 마을이 프랑스인들의 집단 주거지가 되어, 파리의 몽마르뜨공원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잔디 손질은 잘 되어 있으나 국화인 아이리스와 마로니에 나무가 심겨져 있어야 파리의 샤넬 향수 냄새가 날 텐데....

눈에 띄는 사람들을/사랑하게 하소서//사랑하지 못해도 /미소로 보게 하소서.

미소가 어렵다면/그냥 보게 하소서//그것도 아니되면/ 미워하지 말게 하소서. 나무에 걸린 민병문의 시 ‘서리골 공원’을 읊조리며 돌아왔다.

깊어가는 가을 다시 서릿풀공원을 찾았다. 이 고장에서 살면서도 상서롭다는 서리풀(瑞草)이 어떤 풀인지 아직 모른다. 드문드문 피어있는 금계화․메리골드․싸리꽃만 길손들에게 눈요기를 시켜줄 뿐, 화초들은 시드럭부드럭 보이지 않는다. 주종인 참나무 꼭대기에만 갈잎들이 달랑달랑 매달려 있을 뿐, 옷을 훌훌 다 벗은 채 겨울을 날 모양이다. 그래도 갈잎들을 흩날려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 놓아, 고맙게도 두터운 카펫 위를 폭신폭신하게 걸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먼 청권사 쪽으로. 검정 귀를 쫑긋거린 흰 토끼 한 마리가 난데없이 깡충 나타났다. 이건 상서로운 토끼니까 서토(瑞兎)이겠지.

가파른 산등성이가 만만치 않은데,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오르락 내리락 가을 풍광을 즐긴다. 낙엽수 길이 상록수 길로 반전되자 피로가 가신 듯. 서리풀 다리를 건너니 또 계단목. 쳐다보니 아찔하다. 먼저 맛사지길을 지나 할아버지 쉼터 정자에서 잠깐 쉬었다.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도 대단한데, 노인들은 젊은이 못지않게 기구로 운동을 하고 있었다. 하기야 요즘 6,70대는 젊은이다. 목욕탕이나 화장실처럼 굳이 갈라놓아야 하는지, 짓궂게 반대편 할머니 쉼터로 갔다. 중년 부인들만 수다를 떨고 있었다. 웬 늙은 고추잠자리가 날아왔느냐는 표정. 쳇, 금남의 구역도 아닌데.....

게시된 김양식의 시 ‘노송을 기리며’를 읽으면서, 종려나무와 레바논의 백향목을 노래한 성경 시편을 떠올렸다.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 빛이 청청하니...’(시편92:14)

돌담을 끼고 가파른 길로 내려가니까 산등성이의 끝자락 방배동에 이르렀다. 고속터미널에서부터 3Km 남짓 능선을 걸어온 셈. 그러면 그렇지, 방배동에서 올라온 노인들이야 동네 쉼터가 아닌가? 드디어 청권사까지 왔다. 뉘엿뉘엿 해가 서산에 걸려 있다. 청권사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 내외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그러니까 세종의 둘째 형님이다. 중국 고사에 나온 ‘신중청 폐권청’(身中淸 廢權淸)의 약어라고. 그의 행적을 상징하는 이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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