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었더니
여든 살 고개 위에서 취미생활의 하나로 그림을 배워보고 싶었다. 마침 가까운 노인 복지관에서 한국화 2반(픙경화)이 있음을 알고 墨香(묵향)이 풍기는 교실 문을 두드렸다. 문득 水墨畵(수묵화)를 처음 그렸던 옛 추억이 떠올랐다. 중2 6.25 전쟁 때 할아버지댁에서 은신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할아버지께서 紙筆墨(지필묵)을 주시면서, 듣건대 그림을 잘 그린다니 한 번 그려보라는 게 아닌가? 가슴이 방망이질했다.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祖父(조부)님이라 불렀던 근엄한 할아버지는 좀처럼 칭찬을 한 분이 아니요, 수묵화는 그려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더구나 불안한 피신 생활에서 어떻게 한가하게 붓을 움직일 수 있으랴. 漢學(한학)을 하신 데다가 達筆(달필)이셨지만, 뒷간에서 X 한 덩이 누고 나면 다 깨우치는 암클(한글)을 배우고자 학교에 다니지 말고, 한문을 배우라는 말씀을 하곤 하였다. 시대에 뒤떨어진 그 말씀이 듣기 싫고, 무섭고 어려워 정들지 않은 어른이셨는데, 무슨 고리타분한 그림을 그리라는 말인가?
엉뚱하게 ‘松下問童子’라는 주제를 주셨다. 당신께서 한약방을 하신 것과 관련되었을 것이라는 것 외에는, 의도를 몰라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웃집 병풍에서 四君子(사군자)나 山水畵(산수화)를 본 것 밖에 없는 나에겐 큰 짐이었지만, 산과 골짜기를 배경으로, 소나무 아래서 선비와 어린이가 대화하는 장면을 상상화로 그렸다. 내가 봐도 서투르고 보잘것없었다. 물론 칭찬을 받지 못했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일이 생생해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언제인가는 한 번 제대로 그려보고 싶었다. 그런데 마침 한국화 반에 들어갔으니 그때 그렸던 그림을 再現(재현)하기로 했다. 역시 초보 실력을 벗어날 수 없다.
젊은 시절엔 그 주제가 중국 어느 故事(고사) 일 것이라 짐짓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나이 든 탓인지 그 그림을 그리면서 새삼스럽게 그 고사를 알고 싶었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우물 안 개구리인 나의 愚直(우직)과 寡聞(과문)을 깨닫게 되었다. 名詩(명시) 요 名畵(명화)인데 말이다.
당나라 시인 賈島(가도 779-843)는 본래 스님이었는데, 宰相(재상) 韓愈(한유 768-824)로부터 글솜씨를 인정받아, 그의 권유로 還俗(환속)하여 명시를 남겼다 한다. 그의 시집 長江集(장강집)에 나온 시.
尋隱者不遇(심은자불우)... 은자를 찾건만 만나지 못했네
松下問童子(송하문동자)... 소나무 아래서 동자에게 물으니
言師採藥去(언사채약 거)... 말하길 스승께선 약초 캐러 가셨어요.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 이 산속에 계시련만
雲深不知處(운심부지처)... 구름에 가려 그곳을 알 수 없네.
할아버지는 이 시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라는 것이었다.
이 시가 敍景詩(서경시)냐 禪詩(선시)냐를 놓고 논쟁도 일었고, 이를 주제로 한 명화가 한국․중국에 많이 남아있음에 놀랐다. 우리나라의 兢齋 金得臣(김득신), 謙薺 鄭敾(정선), 醉翁 金明國(김명국)과 중국의 遠松年(원송년), 溥儒(부유), 錢瘦鐵(전수철), 汪聲遠(왕성원), 潘振鏞(반진용), 藍瑛(람영).... 비록 인터넷을 통한 것이지만, 이 綺羅星(기라성) 같은 화백들이 남긴 各樣各色(각양각색)의 걸작을 보면서, 고개를 크게 끄덕이었다.
이들 명시를 바탕으로, 이 명화를 본받아 그림을 그리라 했던 할아버지는 과연 어떤 분이었을까? 비록 초야에 묻혀 한약방을 했던 村老(촌로)였지만, 문학과 회화에 造詣(조예)가 깊었던 風流客(풍류객)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의 DNA가 혹시 우리들 자손들에게 유전되지 않았나도 생각해 본다.
賈島가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해가 넘어가자 새들은 연못가 나무에 깃을 찾아들고
僧推月下門(승추월하문)... 스님은 달빛 아래 남의 집 대문을 민다.
는 시를 짓고 나서 推(밀 추)를 敲(두드릴 고)로 바꿀까 勞心焦思(노심초사) 끝에, 韓愈의 권유에 推를 敲로 바꾸게 되어, 글을 고치는 것을 推敲(추고)라 한다는 것이다.(퇴고라고도 한다) 이 유래를 얼핏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스레 賈島의 이름이 빛나 보인다. 그는 두 구절을 짓는데 3년 걸리고, 한번 읊으면 두 눈에 눈물이 흐르는 정제된 시를 썼다해서, 조선 문인들 사이에 膾炙(회자)되어 많은 筆墨畵(필묵화)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賈島의 시에서, 話者(화자)인 작가는 求道者(구도자) 요, 스승인 隱者(은자)는 悟道者(오도자)이며, 약초는 스승과 等價物(등가물)이고, 동자는 구도자와 道(도)를 연결 짓는 媒介者(매개자)라고 해석하는 이가 있다. 한편 구름은 無明(무명) 곧 五慾七情(오욕칠정)의 衆生心(중생심)이라 하여, 구름이 걷히면 약초든 隱者(은자)든 드러난다고 해석한다. 한 때는 그가 스님이었기에 이와 같은 불교적 해석이 그럴듯하다.
화자는 무신론자나 불신자요, 스승인 은자는 예수님이며, 약초는 예수님 말씀이고, 구름은 약초를 모르고 은자를 만나지 못한 영적 소경으로서, 전도자에게 길을 묻는다고 기독교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인간은 구름에 가리어진 진리 혹은 참 스승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존재가 아닌가? 이것이 松下問童子로 표현된 것이니, 내가 무심코 그린 이 한 장의 水墨畵(수묵화)야말로 철학적이요 종교적인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을 그리라는 할아버지가 대단한 분이었고, 이것을 그리고 있는 내가 또한 대단하지 않은가? 하하하.
조선 후기 화원화가였던 장득만(1684-1746)의 ‘松下問童子’가 리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해서 가 보았다. 그러나 헛걸음이었다. 철거된 후였다.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