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길 2 26화

쇠똥구리

by 최연수

소나기를 머금은 구름도 증발했나? 햇살이 불화살 되어 등에 꽂혔다. 은행나무 부채도 까딱 않고. 이런 날에는 그늘진 풀섶에서 낮잠이나 한숨 잤으면....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는 가훈을 붙여 놓고, 밤에는 ‘개미와 베짱이’ 책만을 달달 외워야 하는 쇠똥구리네 집에서는 어림없는 일. 개미에게 질소냐고, 한여름 더욱 땀 흘려야 한다. 그래서 ‘근면상’을 독차지하고, ‘모범가정’으로 이름을 떨친 게 아닌가? 늙은 할아버지가 손발이 닳도록 몸소 일을 하니, 다른 식구들이 어찌 게으름을 피울 수 있으랴.

“후유!”

쇠똥구리는 오늘따라 온 팔다리가 저리고 고단했다. 마음은 꽃동산에 가 있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노랑나비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 예쁜 얼굴과 고운 몸맵시, 그리고 아름다운 춤 솜씨.....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쇠똥구리는 노래라기보다는 악을 썼다. 힘들면 늘 하던 버릇이다. 그래야 속이 후련하기 때문이다. 간신히 고개턱에 올라왔다. 매미들의 노랫소리가 쇠똥구리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하였다.

“앗!”

커다란 쇠똥이 언덕길을 굴러내려갔다. 쇠똥을 껴안은 쇠똥구리도 휩쓸려. 하늘이 노랗게 맴돌고 눈에서 불똥이 퉁기었다. 한눈을 팔고 발을 헛디딘 것. 눈 깜짝할 사이었다.

“하하하하”

때마침 언덕길을 날아가던 흰나비들이 마구 웃어대었다.

“저게 뭐라고 꽉 껴안았지? 오죽 못났으면 쇠똥이나 굴릴라고.....”

나비들은 호들갑을 떨면서 팔랑팔랑 날아갔다. 쇠똥구리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흰나비들이 날 골려? 어디 두고 봐!”

쇠똥구리는 당장 주먹다짐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러나 용기가 있나? 아닌 게 아니라 잘났으면 쇠똥 속에서 태어나, 쇠똥이나 먹고, 이렇게 쇠똥이나 굴릴 것인가? 새삼스럽게 쇠똥이 밉살스럽고 제 모습이 서글퍼졌다.

‘그렇다! 나도 쇠똥을 박차고 꽃동산으로 가자.’

쇠똥구리는 껴안은 쇠똥을 그만 놓아버렸다. 데굴데굴 굴러가다 어느 바위에 부딪혔다. 산산조각이 났다. 온몸이 홀가분해져 나비처럼 훨훨 날 것 같았다.

“다시는 안 먹을 테다. 안 굴릴 테다!”

두 주먹을 불끈 쥔 쇠똥구리는 개똥벌레에게 헐레벌떡 뛰어갔다.

“개똥벌레야, 나 지금 꽃동산 간다. 같이 안 갈래?”

“일은 않고, 갑자기 왜?”

“글쎄, 가 안 가? 안 갈 테면 나 혼자라도 간다.”

쇠똥구리는 숨 돌릴 새도 없이 대답을 재촉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가기만 하면 어떻거니?”

일이 힘들고 공부가 싫으면, 함께 꽃동산으로 도망가자 하던 때는 언제고.

“계획 준비 찾다간 영영 못 가. 싫으면 나 혼자 갈래. 잘 있어!”

쇠똥구리는 쫓긴 듯 뒤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개똥벌레는 쇠똥구리의 용기가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경솔한 그가 가엾기도 했다.

쇠똥구리가 집을 나갔다는 소문은 곧 마을에 퍼졌다. 할아버지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손자를 잃은 허전함 보다는, 체면이 구겨지고, 집안 명예에 먹칠했다고 말이다. 아빠 엄마는 할아버지 앞에서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했다. 누이동생 말똥구리도 오빠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할아버지는 말똥구리를 뚫어지라고 바라보았다. 얼굴 어느 구석에 오빠와 같은 앙큼한 생각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헛기침을 하며 말똥구리를 불러 앞에 앉혔다. 옛날이야기를 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여느 때 같으면 손뼉을 쳤을 텐데, 굳어있는 할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마른침을 삼키었다.

“ 3700여 년 전, 저 멀리 이집트라는 왕국이 있었지.”

말똥구리는 벌써 알아차렸다는 듯이 고개만 끄덕끄덕하였다.

“그 백성들은 우리 쇠똥구리를 신성하게 여기었느니라. 웅장한 전당, 좋은 의복, 값진 일용품에는 반드시 쇠똥구리의 그림이 그려졌다는구나!”

오누이의 귀에 못이 박힌 이야기인데, 그러나 할아버지는 마치 새로운 이야기나 들려주는 같이 점잖게 이어나갔다.

“기념비를 세울 때나 보석을 새길 때도요.....”

말똥구리는 할아버지의 비위를 맞추려고 맞장구를 쳤다.

“옳지 옳지! 잘 알구먼. 그게 우리 조상을 숭배한 흔적이야.”

할아버지는 큰기침을 하면서 말똥구리를 추켜세웠다.

“이집트 왕관엔 꿀벌이 새겨졌다는데요?”

“그건 몰라. 모르지만 꿀벌 따위는 우리 쇠똥구리와 비교도 안 돼!”

곁길로 빠진 말똥구리의 말이 껄끄러워, 할아버지는 잠시 말을 쉬었다가 다시 이어나갔다.

“삼복더위에도 쉴 새 없이 쇠똥을 빚고, 굴리고, 쌓고... 굴릴 때도 형제나 부부끼리 밀거니 끌거니 서로 돕고, 도중에 장애물이 있으면 기어이 부수고 말이다. 굴러 떨어져도 쇠똥을 놓는 법이 없지. 에헴!”

말똥구리는 판에 박은 듯한 그 이야기에 소르르 졸음이 왔다.

“ 근면. 협동, 인내... 어때? 그리고 말이야. 우릴 해에 빗대고, 발목 마디 서른 개는 한 달에 빗대고 말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쇠똥을 굴리는 건 그침 없이 움직이는 천체와 같고.... 그러니, 숭배 안 하겠냐? 에헴.”

입에 거품을 물면서 이야기를 했지만, 말똥구리는 하품을 하면서 눈을 비비었다.

“얘기 얘기 하는 녀석이 벌써 졸긴. 우리 조상은 이렇게 훌륭했다. 우리도 조상을 본받아야 하느니라.”

졸음과 싸우던 말똥구리는 이내 쿨쿨 잠이 들어버렸다.

“천하에 못 된 놈!”

할아버지는 내뱉듯이 이렇게 욕을 하면서, 아들 며느리에게로 자리를 옮겨 갔다. 그런 낌새도 눈치채지 못했느냐고 호통을 치겠지.


고운 꽃송이, 향긋한 바람, 새와 풀벌레들의 노래, 나비들의 춤, 맑은 옹달샘..... 쇠똥구리는 꿈나라에 온 듯 넋을 잃었다.

‘개똥벌레 자식! 책벌레가 되어 개똥 속에 파묻혀 죽을 거야.’

개똥벌레가 안쓰러웠다. 계획 준비 한다고 밤낮 책과 씨름하는 샌님! 이런 낙원을 구경도 못하고... 배고픔과 다리 아픔도 잊은 채, 얼마나 쏘다녔는지 기나긴 여름해가 짧았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지난날이 한없이 후회되고, 누이동생을 데려 오지 못한 게 몹시 아쉬웠다. 맨드라미 밑에 앉아서 쉬었다. 금방 어스레해지면서, 별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갑자기 시장기가 들었다. 노랑나비가 머릿속에 얼른 떠올랐다. 그를 찾아가면 저녁 끼니는 거뜬히 해결되겠지. 다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이 날따라 유난히 어둠이 짙었다. 달맞이꽃은 뭘 하며, 초롱꽃은 어디 있을까?

‘개똥벌레와 함께 왔으면 길을 잘 밝혀 주었을 텐데...’

돌부리에 부딪치고 구덩이에 빠지기도 하면서, 밤 깊도록 헤매었으나 허탕이었다. 화끈화끈한 발바닥, 휘청거린 발걸음. 허기져서 배가 등에 달라붙은 것 같았다.

날이 밝았다. 눈이 부옇게 흐렸다. 잠을 설친 탓이리라. 이 넓은 꽃동산에서 어떻게 노랑나비를 찾는다는 말인가? 똥끝이 탄 쇠똥구리는

“노랑나비 찾다간 굶어 죽겠다!”

고, 무릎을 쳤다. 옆에 있는 나리꽃 줄기를 툭툭 쳤다. 알록달록한 호랑나비 영감이 나타났다. 그 부라린 눈매에 주눅이 들어, 입술을 떼어보지도 못한 채 뒤돌아섰다.

“실없는 녀석!”

영감은 눈을 흘기며 들어가 버렸다. 건너편에 피어있는 나팔꽃 줄기를 흔들었으나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골목길을 돌아가니까 백일홍이 눈에 띄었다. 잎을 거머쥐고 힘차게 흔들었더니, 화장을 짙게 하고, 나들이 채비를 한 기생나비가 얼굴을 내밀었다.

“먹을 것 좀 주세요!”

쇠똥구리의 목소리는 가냘프게 떨렸다.

“없어!”

기생나비는 귀찮다는 듯이 꽃잎을 쾅 닫아버렸다. 송곳처럼 날카로운 목소리에 기가 질렸다. 이번에는 으리으리하게 큰 해바라기에게 갔다. 아주 부잣집 같았다. 쇠똥구리는 굵은 줄기를 발로 차보고, 넓은 이파리를 힘차게 흔들어 봤으나 꼼짝달싹 안 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노랫소리와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누군가의 생일잔치리라. 그렇다면 맛있는 먹거리가 많겠지.

“문 좀 열어주세요! 먹을 것 좀 주세요!”

애원이 아닌 고함이다. 실랑이 끝에 꿀벌 어린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얘들아, 쇠똥구리다!”

꽃잎이 활짝 열리며, 많은 난난이의 얼굴들이 나타났다.

“구리구리 쇠똥구리 쇠똥이나 빚어라!

쇠똥에서 나왔으면 쇠똥이나 먹어라.”

아이들은 코를 움켜쥐고, 노래 부르듯이 이렇게 쇠똥구리를 놀렸다. 머리끝이 쭈뼛쭈뼛. 돌멩이를 집어던졌으나 어림없었다. 식식거리며 채송화 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굶어 죽어도 다시는 쇠똥을 안 먹겠노라고 다짐했건만, 자기도 모르게 꿀을 훔쳐 먹고 말았다.

‘아, 요 맛!’

꿀 먹은 벙어리라 했지. 훔쳐 먹은 꿀이 더욱 달고 맛있는지 모른다.

“요 도둑놈!”

어디서 망을 보고 있었는지, 쌍쌍이 벌이 날아와서 한 방 쏘았다.

“앗 따가워!”

쇠똥구리의 머리가 부어오르며, 아리고 쓰라렸다. 피는 안 났으나 너무 아파서 어디에라도 눕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집에서 재워준다는 말인가? 엎친 데 덮친다더니, 호박꽃 옆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또 똥배가 불룩한 말벌에게 어깨를 물리었다. 이러다가 재수 없게 땅벌이나 만나면 어찌하랴. 찬이슬을 맞으며 아무 데서나 잘 수는 없지. 잠자리를 찾느라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쳇!”

애기똥풀, 노루오줌, 쥐똥나무, 개똥참외..... 기분 나쁘게 왜 이런 나무만 눈에 띄는지.... 가까스로 토끼풀을 깔고, 굴러다니는 떡갈나무 잎을 두 겹 덮으며 새우잠을 잘 수밖에.

이렇게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간신히 일자리 한 곳을 구했다. 물론 똥 일이었다. 심지어 개똥 돼지 똥까지도 빚고 굴리고, 꽃나무에 거름을 주고... 이제 꿀도 먹고, 꽃 속에서 잠도 잘 수는 있었다. 벼르고 벼르다 도망쳐 왔는데, 힘들고 궂은일을 닥치는 대로 할 수밖에. 고향을 등질 때의 다짐은 어디 가고, 꽃동산에 와서 예전 일을 되풀이하고 있으니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인가?

오늘도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는데,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진 노랑나비가 문득 눈에 띄었다. 쇠똥구리는 제 눈을 의심했다. 목마르게 그립던 노랑나비! 애타게 찾았던 노랑나비!

“노랑나비 아냐?”

쇠똥구리의 가슴은 콩당거리고, 목소리는 가냘프게 떨렸다.

“얘가 누군데? 난 널 몰라”

“나, 쇠똥구리야.”

시치미를 뗀 노랑나비는 동무들과 함께 그만 달아나버렸다. 어처구니없었다. 가장 친했던 단짝이었는데.....

‘시, 아는 체하면 낯이 깎이나 이름이 더럽히나....’

생각할수록 괘씸하고 분했다.

“똥요강 같은 계집애!”

침을 퇴 뱉은 쇠똥구리는 그 얼굴을 지우려고 다시 일을 했다. 그러나 힘이 쑥 빠지고 흥이 나지 않았다. 쏘이고 물린 몸뚱이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꿀이라도 약이라면 쓰다’고 했는데, 벌 나비들이 주는 꿀이라면, 아픈 몸에 좋은 약이 된다 해도 뿌리치겠다고 다짐했다.

‘벌 나비 종노릇이나 하면서 꽃동산에서 살아야 하나?’

쇠똥구리는 입을 악물고 부르르 떨었다. 사랑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꽃동산! 사랑 없는 꽃향기는 은행 알 냄새보다 더 구리고, 사랑 없는 꿀이란 소태껍질 맛보다 더 쓰지 않겠는가?

‘꽃씨만 뿌리면 내 고향 벌판도 꽃동산 될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번개같이 떠오르자, 쇠똥구리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그렇다! 꽃동산이 따로 있나? 만들면 꽃동산이지.....”

하고 소리를 쳤다. 머뭇거릴 겨를도 없이, 그 길로 꽃씨를 모으기 시작했다. 온갖 꽃씨를 받아 쇠똥 속에 차곡차곡 넣었다. 익혔던 그 솜씨가 어디 가랴. 될수록 큼직하고 둥글게 빚었다. 참으로 보암직했다.


코스모스가 하늘거렸다. 고향 들녘에는 황금 벼가 물결치리라. 소슬바람이 불어오자 불현듯 고향 생각이 났다. 할아버지의 그늘에 가려 말조차 얼버무리던 아빠와 엄마, 함께 말똥을 굴리며 할아버지의 흉을 보던 누이동생, 꽃동산이 부러워 언젠가 함께 가자고 했던 개똥벌레, 심지어 얄밉던 할아버지도 새삼스럽게 보고 싶었다. 그리고 젖통을 치받으며 옹골차게 젖을 빨던 송아지까지 생각났다. 밤이 이슥하자 고향 생각에 견딜 수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회향병을 앓고 있었을까?

“내 고향 가고 싶다 그리운 고향....”

까맣게 잊은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콧날이 시큰거렸다.

“날이 새면 고향에 간다. 난 집으로 간다!”

그리움이 풍선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잘 있거라 꽃동산아. 벌 나비도 잘 있거라!”

밤이 깊었는데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이 올 리가 없었다. 고향 벌판에 새로이 들어설 아름다운 꽃동산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이윽고 가슴츠레 눈이 감기려는 이때, 난데없이 밖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쇠똥구리는 귀를 기울였다. 예사로운 소리가 아니었다. 벌떡 일어나 꽃잎을 가만히 들추어보았다. 날이 샐락 말락 아직 어두운데, 꽃나무가 크게 흔들리고 나뭇잎 꽃잎이 이리저리 흩날렸다. 폭풍이다. 공중에서 우당탕 소리가 나더니 꽃나무 가지가 꺾였다.

“날 살려요! 날 살려!”

꽃동산은 순식간에 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바람 소리, 나무 부러지는 소리, 아우성 소리, 신음 소리.... 손을 놓칠세라 쇠똥구리도 안간힘을 다 해 꽃나무를 붙들었다. 재빨리 미끄러져 내려와 쇠똥을 찾았다. 어서 빨리 꽃동산을 빠져나가야 한다. 곧바로 쇠똥을 굴리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떨어진 꽃잎이 발에 밟히고, 찢겨진 벌 나비들의 날개도 어지럽게 흩날렸다. 그 아름답던 꽃동산은 쑥대밭 같이 변해버린 것이다.

동이 트면서부터는 빗방울도 뚝뚝 떨어졌다. 등에서는 진땀과 빗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뒷다리가 막대기 같았다.

"위잉 씨잉 딱!"

“아이구!”

쇠똥구리는 쇠똥을 껴안은 채 넘어졌다. 가시가 앙상한 찔레덩굴이 뒷다리를 후려갈긴 것이다. 쇠똥구리는 입을 악물고 일어섰다.

“아, 내 다리. 내 다리 어딨어?”

한쪽 다리가 끊어진 것을 알아차린 쇠똥구리는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면서 울부짖었다. 그러나 끊어진 다리는 벌써 어디론지 바람에 휩쓸려 가버렸다. 아픔이 온몸으로 번졌다.

‘쇠똥을 버릴까?’

원망스럽게 쇠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쇠똥 속에는 꽃씨가 그득 담겨있는 게 아닌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또다시 쇠똥을 굴리었다. 가재내를 건너고, 고개턱에 올라섰다. 더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잡초가 우거진 벌판, 그 안에 널려있는 쇠똥과 말똥. 초라하기 짝이 없는 옛 모습과, 앞으로 들어설 아름다운 꽃동산이 겹쳐 보이면서, 쇠똥구리는 그만 그 자리에 힘없이 고꾸라졌다.

“할아버지, 쇠똥구리 고향에 돌아왔어요. 꽃씨 갖고 왔어요!”

숨이 헐떡거려 속삭이듯 부르짖었다.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쇠똥은 데굴데굴 비탈을 굴러 벌판으로 내리닫았다.

“꽃씨! 꽃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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