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길 2 27화

탈선인가?

by 최연수

’60.1.4(월)맑음

“한국일보에 무슨 글 써냈냐?”

문안에 다녀오신 아버지께서 물으셨다.

“왜요?”

“L씨가 그란디 늬 동시가 당선됐다더라”

“예, 신춘문예에 응모했어요”

‘福生於微’라고 복은 보잘 것 없는 데서 난다 하지 않는가? 복은 이렇게 몰래 오는 것. 내 둘레에 널려있는지도 모르는 것. 기다리는 복은 복이 아닌 것. 아니 오지 않는 것. 고시 합격도 기다리지를 말 걸. 소년 시절에 읽었던 ‘파랑새’ 이야기가 바로 이런 것.

어머니께서 구해온 1월 1일자 한국일보에 동시 ‘집보는 날’이 당선된 것을 확인했다. 953편 응모 중에 28편이 예선에 오르고, 마지막에 내 작품이 당선되었다는 것이다. 아동문학가 이원수.강소천 선생이 심사 위원이었다고.

꽃밭을 거닐거나 꽃병도 만져보지 못하고 자라난 문창 어린이들을 위해서 뿌린 꽃씨가 어느 새 싹트고 자라서, 새해와 함께 꽃이 핀 것이다. 행복아, 이렇게 찾아오는데 이젠 기다리지 않으리.

* *

아무튼 1960년 벽두 신춘문예 당선은 서광이었다. 이 길조는 반드시 행운을 가져올 것이다. 비록 아동문학 분야이지만 이제 나도 문단에 등단한 당당한 문학가요 기성인의 대접을 받을 것이다. 당장 ‘어린이’지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와 동시 ‘물오른 나무’를 실었다. 그리고 ‘소년한국일보’에 계속해서 동화를 발표했다. R교수는 ‘법학과 문학’에서

‘사랑의 원심력은 평화에 미치게 하고, 평화의 구심력은 사랑을 구현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문학에서 다루는 사랑과 법학에서 다루는 평화는 뗄 수 없이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하였다. 당시 내가 어린이들을 위해 쓰고 있는 모든 작품의 주제가 사랑과 평화였으므로 서로 통하고 있었으며, 법관이 되어도 문학을 하며, 문학가가 되어도 법학을 하겠다는 무지개와 같은 화려한 상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잘 했다. 그란디 글 쓰면 배고프다”

그 옛날 어린 시절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아버지의 이 짤막한 말씀에는 칭찬보다는 염려가 짙게 배어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문단에 등단해도 글 써서 먹고 사는 문인들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더구나 아동문학가는 발을 들여 놓을 수 있는 지면은 거의 없었다. 쇠약해진 아버지는 그런 문학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고, 고시의 합격만이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었다. 그런데 요 녀석이 한눈을 팔다니....모음의 단편 ‘연’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연날리기라는 도락에 빠져 가정을 망각하고, 마침내 비극을 자초하는 연! 연은 곧 문학이요, 남편을 어린애라고 쏘아부친 아내의 시선은 바로 아버지이며, 종말의 비극은 고시 낙방이 아닌가? 과연 나에게 있어 문학은 요염(妖艶)한 미녀에 흘린 외도인가? 본궤도에서 벗어난 탈선인가? 판단이 서지 않은 채, 황금 같은 시간을 허송세월하고 천금 같은 정력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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