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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충원

걷고 쉬고 생각하고

by 최연수

“공동묘지엔 뭘 하러 가요?” “입장료는 얼마예요?” 이 정도는 애교가 있다. 현충일이었다. 옛 전우를 못 잊어 참배하고 돌아온 노병들 같았다. 가슴엔 훈장이 달려 있었다. 버르장머리 없는 어떤 젊은이를 나무랐던 모양이다. 약간 취기가 있어보였다. “사람 많이 죽였구먼....”

이들 곁을 비아냥거리며 지나가는 또 다른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 노병들이 들었다면 억장이 무너지면서 격투가 일어나지나 않았을까? 세대간의 날카로운 갈등과 이념간의 날선 격투의 링 안에 내가 서있음을 실감했다.

국립현충원에는 수 십만의 호국 영령들이 잠들어 있고, 애국지사들과 대통령․국가유공자들의 묘소가 있는 성역이 아닌가? 그래서 술․담배와 춤․노래를 삼가해야 하는 경건한 곳이다. 색안경을 끼고 역사를 거꾸로 보지 않는다면, 그런 모욕적인 말을 감히 내뱉을 수 없는 일이다.

이곳은 무려 50여 년 동안 나의 산책길이다. 눈 감고도 거닐 수 있을만큼 이웃집 마당처럼 드나들었다. ’57년 국군묘지로 준공되고 ’65년에 국립묘지, ’96년에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날개를 활짝 펴고 한강을 굽어보는 공작새의 모습이어서, 풍수지리를 몰라도 위치와 산세가 범상하지 않은 명당인 것 같다. 능선을 따라 쌓은 처음 성벽은, 산 아래서 끌어올린 육중한 자연석이었다. 구릿빛 웃통을 드러내놓고 팬티 바람으로 비지땀을 흘리며 일하던 공병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내 또래 젊은이들이었으니까, 지금 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을 것이다.

고귀한 피를 흘리며 산화한 수 십만의 선배 장병, 통한의 눈물을 뿌린 그 유가족을 생각하면서, 지금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자신들 노역의 땀방울이야 그에 비할 수 있으랴며 열심히 일했으리라 믿는다. 비록 그 돌담은 헐리고 지금은 휀스로 대치해 있지만, 지금 저 참배객 가운데에는 그 때의 땀이 스며들었을 흙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글썽이는 노인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지하철 4,9호선 동작역에서 내리면 곧바로 정문. 현충일 전후해서 정문 앞은 조화를 파는 사람과 참배객들이 뒤엉켜 인산인해를 이룬다. 정문에 들어서면 먼저 커다란 충성분수대 앞에 서게 된다. 태극기를 세운 채, 경비를 하는 무장군인과, 평화를 기원하는 민간인의 동상이다. 탁 트인 넓은 잔디 광장을 지나면 현충문. 안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부조를 배경으로 애국투사상 과 호국영웅상을 좌우로 끼고 현충탑이 우뚝 서있다.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를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는 돌비가 있는데, 그 앞의 향로에 분향할 수가 있다. 현충탑에는 이름은 있으나 유해가 없는 10만여 명의 위패와, 탑 중앙 영현승천상 아래 지하 봉안실에는 유해는 있으나 이름은 모르는 7,000여 영현이 봉안되어 있다.

현충문을 나오면 여러 갈래 길이 바둑판처럼 각 묘판으로 연결되어 있다. 묘비 앞에는 항상 조화가 꽂혀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지만, 흘러간 세월과 함께 발길이 뜨음해지고, 이제 백발은 아예 발길이 끊어진 것 같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이승만․김대중․박정희 대통령 묘소가 차례로 조성되어 있고, 장군․국가유공자․임시정부 요인 애국지사․재일학도의용군 등 묘역이 따로 있다. 이곳 저 곳에 대한독립군 무명용사 위령탑․경찰충혼탑․육탄십용사 현충비․유격부대 전적 위령비 등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새로이 납골을 봉안하는 대형 충혼당이 들어서있다. 추모하는 애절한 글들이 여기저기 게시되어 있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측문 쪽에는 넓은 광장 주변에 현충관(영화관)․사진전시관․유품전시관 3동이 있으며, 충혼승천상 옆의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연못 현충지는 휴식공간이다. 산에서 흘러내린 현충천에는 정난교․정국교․구름다리가 놓여있고, 개천가와 사면팔방 통로에는 각종 수목과 화초들이 즐비하다. 특히 봄철에는 정문에서 현충문까지의 수양벚꽃이 장관이며, 가을철 솔냇길에는 황금빛 은행나무가 눈을 부시게 한다. 오르막 내리막 산책길은 사시사철 산보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데, 공기가 상쾌하고 한여름에도 더위를 모른다. 소쩍새와 뻐꾸기․꿩을 비롯한 멧새들의 지저귐이 반갑고, 청설모와 다람쥐가 나타나 숨바꼭질을 하자고 한다.

높은 지대에는 호국지장사(전 화장사)와 약수터가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지장보살의 발원으로 호국영령들이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뜻에서 이름을 바꿨다고. 그 옛날 난 이 근처 숲속을 독서실 삼아 공부를 하였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이 절 해우소에다 뒷거름 적선(?)도 하고, 하산 때는 땔감으로 오리나무 삭정이를 꺾어와 가지치기 협조(?)도 하였다. 오성과 한음도 이 절에서 소년시절 공부를 했다고.

검부러기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은 깨끗한 곳, 새소리 밖에 들리지 않은 조용한 곳, 잘 다듬고 가꿔진 아름다운 경관....토요일에는 잔디광장에서 특별 군악․의장 행사가 큰 인기다. 아닌게아니라 초창기에는 황량한 공동묘지 같은 혐오시설로 보였다. 그러나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전도서7:2)고 성경은 말한다. 되새겨볼 말이다. 앞으로 미국 웰링턴 국립묘지 같이 조성할 계획이라는데, 그 곳 무명용사 묘비에는 ‘자유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6.25 참전용사들의 모형상이 있다고 한다.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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