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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폭포공원

걷고 쉬고 생각하고

by 최연수

연일 청명한 날씨. 지하철 7호선 용마산역에서 내렸다. 왼쪽으로 고가도로 오른쪽으로는 빌라를 끼고 언덕길을 오르면 공원 들머리. 깎아지른 듯한 용마산이 그다지 높지는 않으나, 병풍처럼 펼쳐져 오똑 서있다. 산세로 보아 넓지 않은 공원 같았다. 입구의 나무 그늘 아래 장기를 두거나, 쉬고 있는 동네 어르신네들이 많았다. 오른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니 공원 안내판이 서 있다. 예측한 대로 조촐한 공원이다. 놀이 기구들이 하품하면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네로 보아 학교만 끝나면 아이들로 시끌벅적할 것 같다.

300여m 언덕길로 올라가니 왼쪽으로 한 줄기 폭포가 눈에 들어왔다. 나이아가라폭포나 빅토리아폭포를 상상한 것은 아니지만, 제주도의 천지연이나 정방산 폭포 쯤은 되지 않을까 짐작했는데, 별로 크지 않아 약간 기대에 어긋났다. 그러나 더 언덕을 올라가니 폭포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왔다. 오른쪽으로 플라타나스와 단풍나무․무궁화가 줄지어 섰고, 왼쪽으로는 낭떠러지 위로 기다란 휀스. 경관조망장소에 오르니, 용마산 절벽이 코앞에 버티고 있고, 두 갈래의 폭포가 선보이고 있다. 잔디 깎는 아저씨들께

“안내판에는 3개라는데 왜 2개 폭포만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다 용마산폭포예요”

라며 시큰둥한 동문서답. 잘 모르는 듯. 정상 가는 길이 막혀 돌아섰다.

잔디광장(우레탄)으로 내려와 폭포 쪽으로 다가갔다. 위쪽에서 내려다보던 초라한 폭포가 아니라, 아래쪽에서 쳐다보는 폭포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남녀가 맞선을 볼 때 볼수록 좋아 보이면 내 사람 된다고 했던가? 숨어있던 폭포마저 모습을 드러내었다. 동양 최고라는 중앙의 맏형 용마폭포(51.4m)가 오른쪽으로는 청룡폭포(21m), 왼쪽으로는 백마폭포(21m) 쌍둥이 동생들을 정답게 데리고 있었다. 차라리 백마를 백호라 하여 우백호 좌청룡이라 하던가, 청룡을 청마로 해서 형제 관계임을 뚜렷이 하던지. 부질없이 이름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했구나. 아무튼 의좋은 3형제가 훤출한 모습과 뚝심을 자랑 하듯이 우렁차게 쏟아져 내렸다. 바위 절벽과 폭포 그리고 소나무.....문득 사슴과 거북․학은 없어도, 불로초는 있을 법한 십장생병풍이 눈에 떠올랐다.

삼림이나 폭포 주변은 강한 자장의 영향으로 전자량이 증가하면, 음이온이 공기 중에 많이 포함되어 부교감신경을 일깨워, 편안하게 만들어준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인지 여간 기분이 상쾌한 게 아니다. 용소를 향해 목을 길게 빼고 외다리로 휀스에 기대어 섰으니, 내가 한 마리 학이 되었구나. 겸제 정선의 그림 박연폭포와 오버랩 되었다.

‘박연폭포 흘러내리는 물은 / 범사정으로 감돌아 든다.

에 에 에루화 좋구 좋다. / 어러럼아 디어라 내 사랑아.

간 데마다 정들어 놓고 / 이별이 잦아 못 살겠네.....’

가보지는 못했으나 송도삼절 천마산 박연폭포 앞에서 시를 읊는 황진이 기분은 내봐야지. 소리꾼들은 폭포 앞에서 득음을 한다지 않은가? 남들이야 귀를 막거나 말거나, 흥겨운 이 민요를 한 가락 뽑는데, 몸은 늙고 성대는 낡아서 숨이 차고 소리가 쉬었구나! ‘소매 긴 김에 춤춘다’는 속담이 있지만, 소매는 짧아도 기왕 노랫가락을 뽑았으니 덩실덩실 덧뵈기춤을 곁들이고 싶다. 하지만 억지춘향이 노릇은 차마 못 하겠다. 절벽 아랫도리는 두드리면 빈 통 울리는 인조바위요 폭포도 인공폭포지만, 삶에 지친 시름을 말끔히 씻어내는 데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정자에 앉아 쉬는데 용의 초리 소리가 데크레샌도(decresc)가 되더니 뚝 끊긴 것이 아닌가? 도돌이표가 없는 듯 되풀이 되지 않고, 세상이 갑자기 고요해졌다. 바다의 파도이건 골짜기 물이건, 단순한 멜로디일지라도 물이 부르는 노래는 어느 노래라도 심혼을 말갛게 해준다. 물보라가 내 가슴 속에서 시구로 피어오르는구나! 수첩에 끄적거려 본다.

물의 노랫소리

소리 없이 흐르는 깊은 강물에도 / 노랫소리가 있다네.

강바닥을 치며 울부짖는 / 포르티시시모의 노래 말일세.

외치며 떨어지는 높은 폭포에도 / 노랫소리가 있다네.

하늘을 보며 소리 없이 흐느끼는 / 피아니시시모의 노래 말일세.

한 세상 사노라면 깊은 강처럼 / 두 세상 살더라도 높은 폭포처럼

속내 드러내지 않는 / 노랫소리가 있다네.

3시. 에너지절약을 위해 가동 시간을 조절한 모양이다. 새로 조성하는 공원마다 인공폭포를 곁들이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겠으나 참 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베드민턴․축구장을 끼고 그늘진 산책길로 해서 내려왔다. 한 시간만이었다. 역시 산은 바위와 나무와 물이 어울려야지. 나와서 다시 쳐다보니 비경은 아니라도 제법 아름다운 산이다. 단풍이 곱게 물들면 또 만나자며 약속했다. 가까이 산다면 자주 오고 싶은 공원이다. 공원을 나와 근처의 면목4동으로. 2년 전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 조역으로 촬영했던 곳. 거미줄 같이 얽힌 전선 밑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낡은 주택들과, 비좁은 골목길이 여전했다. 이곳 주민들에게 용마산은 하늘이 준 산이라면, 폭포공원은 사람의 땀이 이룩한 참 좋은 쉼터다. 삶에 지친 시름과 짜증일랑 저 폭포에 실어 떨어뜨리면, 물 안개처럼 부서져 산산이 흩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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