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쉬고 생각하고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혜화문이 바라보이는 맞은편 샛길로 접어들었다. 70여 개의 나무 계단을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올라가니, 비스듬히 끊어진 성곽이 눈에 들어왔다. 듬성듬성 담장이덩굴로 뒤덮인 성곽을 끼고 완만한 경사 길을 따라 올라갔다. 왼쪽으로 아담하면서도 오래 된 집들이 나타났다. 30여 전만해도 나도 이런 집에서 살았고, 이런 비탈길을 오르내렸다. 옛날 시골 집에서나 볼 수 있었던 나팔꽃․맨드라미․봉숭아꽃들이 낯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동네 강아지들이 짖을법한 분위기인데 빈 집 같이 조용하구나.
성곽은 작은 길과 만나거니 헤어지거니를 몇 차례 되풀이 하더니, 갑자기 큰 길과 마주쳤다. 오토바이와 차들이 오가는 제법 큰 동네에 이르렀다. 한성대가 보이고, 옛집들이 빼곡히 들어서있다. 서울에 아직도 이런 달동네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외국인이 셔터를 계속 누르는데, 내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였지만, 역사적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었다. 6.25전쟁 때의 폐허, 보릿고개 시절의 몰골, 개화기 이전의 생활상....이런 사진 한 장이 요즘 얼마나 귀중한 역사적 자료인가?
가파른 길을 올라서니 성곽은 우뚝 높아지고, 북악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자에서 낮잠을 즐기는 할아버지 옆에 몇몇 할머니들이 깔깔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열화정(悅話亭)인 셈. 나도 잠깐 마루에 걸터 앉았다. 이야기는 뚝 끊어졌는데 얼핏 화장실 이야기다. 검부라기 비벼서 밑 씻던 측간 시절, 어둠을 타서 까맣게 탄 ☓을 아무데나 실례하던 6.25 피란 시절, 구더기 와글거린 퍼내기식 변소에서 끙끙거리던 보릿고개 넘던 시절, 비데까지 있는 오늘날의 수세식 화장실...이 게 곧 우리네 서민들의 생활사가 아닌가?
성곽을 쳐다보니, 담쟁이덩굴을 헤치고 심호흡을 하는 돌덩어리들이 뭔가 세상을 향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화장실만큼 산전수전 다 겪어온 이야기일 것이다. 지층이 곧 지구의 역사와 생물의 진화과정을 말해주 듯이, 여러 층으로 쌓여있는 성곽 속에서 어떤 귀중한 화석이라도 나오지 않을까...똑 같은 화강암인데 오랜 풍화작용으로 고색창연한 층이 있는가 하면, 잘 다듬어진 인조대리석 같은 층도 있다. 그 색깔․재질․축성법이 다 달라 보였다. 누(樓)가 없는 암문으로 들어가니 정상이다. 안내판이 서 있는데, 성곽의 역사이다. 조선 태조 4년, 낙산․인왕산․남산․북악산 줄기를 따라 흙과 작은 돌로 토석식으로 축조했다가, 세종 때 큰 돌 위에 작은 돌만으로 석성을 정비하고, 숙종 때 규격화된 큰 돌로 중수했다는 것이다. 성곽에 서울의 4대문과 4소문을 내었다고.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도시를 정비하면서 평지 성곽은 헐어, 총 18.2Km중 산지 성곽 10.5Km만 남겼는데, 6.25전쟁 때와 그 후 지각없는 불법 난개발로, 파괴․훼손되었다는 것. 이렇게 선잠에서 깨어났어도 짜증 내지 않고, ’70년대에 와서야 성곽․성문을 차례로 보수․복원하여, 완공(2012년 초)되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한다고 한다.
정상 정자에 앉아 켜켜이 쌓인 ‘나’의 성곽도 돌아보았다. 바닷가에서 모래성 쌓듯이, 나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얼마나 많은 성을 쌓았던가? 어느 때는 하룻밤에도 만리장성을 쌓기도 했다. 교만의 성을 쌓다가 오히려 감옥처럼 성에 갇히어, 바벨탑같이 무너지기도 하였다. 미사일이 하늘을 나는 시대에 허황한 토성을 쌓다가, 비를 맞고 여리고성처럼 힘없이 무너지기도 하며...그야말로 이 성곽처럼 짜깁기 성이요, 누더기 성이요, 시루떡 성이다. 만고풍상 속에서 금이 가고 깨진 내 인격의 성곽도 이제 차분하게 보수해야지.
내리막길 제2전망대에서, 발뒤꿈치를 들고 성 아래를 전망하려는데 쉽지 않았다. 사선으로 뚫린 구멍은 가까운 곳을 겨냥하는 것이고, 수평으로 뚫린 것은 먼 곳의 적을 겨냥하기 위한 것임을 후에 알았다. 경사가 거의 없는 산책 길 가에, 여러 가지 고목들이 즐비한 걸로 미루어 오랜 산임에 틀림없다. 이 푸른 낙산 자락을 ’97년부터 복원 사업을 시작, 낙산공원으로 새로 태어났다는 것. 커브를 도니 문득 남산. 지금까지는 줄곧 북악산을 쳐다보았는데. 그러고보니 서울의 남북을 다 내려다본 셈이다. 푸른노인종합복지관 할머니들이 마련한 ‘이화 꽃동산’, 이화동주민자치위원회에서 심은 나무들...후손들에게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를 물려주고 싶은 소망을 담아, 성곽 보수와 공원 조성에 온 주민이 땀을 흘린 흔적을 보았다.
제3전망광장으로. 붉은 벽돌로 넓고 깨끗하고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녹음이 짙게 우거져 가을 날씨같이 서늘하다. 잠간 쉬었다. 70여 년만에 바벨론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이 먼저 예루살렘 성곽을 보수했듯이, 성곽의 보수는 곧 국권 회복이 아닌가? 경복궁의 복원과 한양도성의 보수가 그래서 역사적 의미가 크지 않을 수 없다. 정상에서 108개의 나무 계단을 내려가 왼편으로 가면, 조선 임금의 수라상에 올렸던 김치를 만들었다는 ‘홍덕이밭’이 있다는데 그냥 돌아섰다. 자작자작 골짜기 물이 흘러내리고 숲속에서 멧새들이 노래하면, 금상첨화일 텐데 하는 아쉬움을 안고 산을 내려 왔다. 서울 도심에서 살짝 물러나기만 해도, 이런 트레킹하기 좋은 산길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요즘 이 도성을 따라 둘레길이 잘 닦아져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만리장성에 비하면 조약돌로 쌓은 아이들의 레고 장난감 같은 성곽이지만, 우리에게는 귀중한 역사적 유산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