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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독립공원

걷고 쉬고 생각하고

by 최연수

우리 근․현대사의 주제는 독립이다. 서대문독립공원은 크게 독립공원과 형무소박물관으로 나뉘어야 헷갈리지 않는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내리면 곧 광장. 수 백 그루의 무궁화 축제가 화려하다. 112년 만에 휀스를 걷어내어 처음으로 독립문을 통과. 러시아 사바틴의 설계로 파리의 개선문을 본 떠 만들었다지. 홍예문 위로 태극기와 함께 대한제국 황실의 문장 오얏꽃(李花)이 새겨져 있음도 처음 보았다. ‘영은문 초’라는 비석과 함께 두 개의 초석이 있어, 원래 영은문이었음을 알리고 있다. 근대화를 하겠다는 갑오개혁이 외국 세력으로 수월치 않자, 중국(명)의 사신을 맞이했던 그 문을 헌 대신, 독립협회에서 자주독립의 상징물로 시민의 기금을 모아 세운 것이다.

잘 가꿔진 잔디밭에 독립신문을 높이 든 서재필의 동상이 서있다. 그는 최초의 민간 신문인 이 신문을 발간하고, 독립협회를 창립하였다. 그리고 만민공동회를 조직하여, 국민의 독립정신과 민권사상을 크게 신장시킨 선각자였다. 맑은 물이 흐르는 4층 계단식 수조를 따라가니, 3.1독립선언기념탑이 우뚝 서있다. 탑골공원에 있던 것을 옮겨 온 것. 독립관으로 갔다. 독립협회의 사무실 겸 집회소였다.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팔각지붕 구조로서 조선 시대 한식 목조 건물의 대표적 건물이라고. 이 역시 순종이 황태자 시절, 중국(명) 사신의 영접연․전송연을 위해 모화루(후에 모화관)를 지었던 것을, 독립협회에서 독립관으로 개칭하였고, 옛 모습대로 재건한 것이다. 안에는 선열들의 위패를 모셨는데 문은 닫혀있군. 지하에선 대한민국선열유족회가 독립정신과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의사․열사․지사의 구분을 알게 되었다.

일본식 수경 시설을 전통 조경 양식인 방지(네모)로 새로 꾸민 연못엔, 수련과 부레옥잠화가 무심히 물 위에 떠있다. 그 위로 순국선열추념탑이 있는데, 14도를 뜻하는 14 개의 태극기 조각이 수직으로 연이어져 있고, 앞면 긴 돌판에는 독립운동의 역정이 생동감 있게 부조되어 있다. 뒷면에는 우리 민족의 자존을 지켜온 유구한 역사성이, 일제 침략 앞에서 어떻게 독립 의지로 나타났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구한말 경성감옥에서 현재의 서울구치소까지의 명칭과 규모의 변천을, 휀스에 사진으로 게시해 놓았다. 마당의 격벽장은 홀로 운동할 수 있는 부챗살 모양의 공간으로서, 지붕은 없고 대화를 차단하도록 벽이 높은 게 특이하다. 현재의 건물은 고전적 범죄 이론가 벤담의 페놉티콘에 근거하여 지은 근대식 감옥. 감옥은 감시와 처벌이 아닌, 참회의 장소로서 제도를 개선하고 특히 고문을 폐지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일제는 그와 역행했으며, 세계적으로도 그 형태가 유지된 곳은 드물다는 것.

우연히 7 명의 일본인과 함께 둘러보게 되었다. 1층 전시관은 정보검색실․형무소 역사실․영상실로 나뉘어, 전체적인 개요를 영상으로 보게 되어 있다. 2층 전시관에는 대한제국 말기부터 3.1운동을 거쳐 광복 때까지의, 형무소와 관련된 모든 기록과 사진 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를 본 일인들은 식민지 통치의 불법․부당함을 깨닫게 되었을까? 아닐까?

지하로 가는 계단과 통로는 비좁고 어두컴컴했다. 유령의 집 혹은 지옥으로 들어가는 듯한 으스스한 느낌. 웬일인지 일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회피했을까? 취조실의 분위기가 염라대왕과 죄인 그대로다. 용수, 수갑과 족쇄, 허리를 묶었던 육중한 쇠고리 요....물 고문, 인두 고문, 손톱 찌르기, 주리 틀기, 태, 상자 고문, 홀로 서있게 된 독방, 지하 독방, 벽만 바라보도록 된 독방....심신의 고통을 주기 위한 묘안이 총 동원된 듯 싶었다. 미로를 따라 가니, 천정은 안 보이고 두 가닥의 밧줄이 늘어뜨려져 있었다. 교수형장! 머리끝이 쭈뼛했다. 반사적으로 물러섰는데 입구에 영상이 떴다.

‘단두대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는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요’

강우규의사의 말에 숙연해졌다. 지하를 나왔는데도 이명과 함께 환청이 들려온 것 같다. 만세의 함성과 함께 총성과 말발굽 소리, 취조관의 협박과 고함, 고문의 신음과 비명, 가족들의 탄식과 통곡, 아직도 잠들지 못한 넋들의 읍소와 절규....아비규환이 이런 것일까? 공작사와 옥사, 류관순 지하감옥 등은 일부러 지나치기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높은 담장 앞 잔디밭에 ‘민족의 혼 그릇’이란 둥근 오목 거울의 추모비. 내부에 순국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투영되어 있다고.

한쪽 구석에 낡은 건물이 보였다.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들이 이슬로 사라진 사형장 건물. 정문 앞 높다란 미류나무는 이 건물 지을 때 심었다니까, 사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이를 붙잡고 얼마나 통곡했을까? 안쪽의 작고 연약한 또 하나의 미류나무는 원한이 서려 자라지 못했다고. 건물 뒤 담장의 개구멍 같은 시구문은, 사형한 후 외부에 사실을 숨기기 위해 시신을 바깥쪽으로 몰래 빼내기 위한 통로였다고 한다. 히틀러에 의한 홀로코스트의 아우슈비츠 감옥, 소련 스탈린에 의한 굴락(Gulag)등 시베리아 수용소군도, 캄보디아 폴포트에 의한 킬링필드, 북한 김정일에 의한 정치범 수용소...이런 생각까지 겹쳐 머리가 어지러웠다. 올무에서 빠져나온 새처럼 날듯이 공원으로 빠져나왔다. 하물며 특별 사면으로 출옥한 사람의 기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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