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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울호수공원

걷고 쉬고 생각하고

by 최연수

지하철 5호선 까치산역에서 버스를 환승하여 공원 근처에서 내렸다. 커다란 서서울호수공원 입간판이 서있는 마당에 들어서니, 소풍 온 어린이집 꼬마들이 물놀이장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 학부모들은 열린풀밭에서 자리를 깔고 앉아, 뿌듯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며. 빨간 100인의 식탁에 잠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잔디밭 중앙에 녹슨 상수관이 조형물로 장식되어, 옛 정수장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재생정원에는 옛 수도관을 활용하여, 사각 수조 안의 수생식물들이 제 철을 맞아 싱싱하다. 철근 갈빗대를 드러내놓은 채 죽은 콘크리트 벽으로, 새로운 생명체인 파란 담쟁이덩굴이 보이지 않는 보폭으로 기어올라가, 앙증맞게 다른 나무들과 키를 재고 있다. 김포정수장이 신월정수장으로, 50년 만에 다시 서울 서남권 최대의 공원으로 새로 단장하여 개장한 것이라고.

어린이 놀이터는 규모는 작으나 CUBE 식 놀이기구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다. 열린마당을 지나 문화데크광장으로. 넓은 야외에 부드러운 나무 데크로 바닥을 깔고, 계단식 광장으로 꾸며 참 아름답다. 여러 가지 문화․예술 행사가 펼쳐진 듯. 휴식을 하며 호수를 바라보니, 마치 세차장에서 나온 자동차같이 온 몸에 뒤집어 쓴 세상 먼지를 다 털고, 마음 깊은 곳의 찌든 때까지 말끔히 씻은 듯했다. 수면에는 구름이 떠있고, 주변 나무들이 그리스 신화의 나르키시스처럼 제 얼굴을 비추며 탐닉하고 있다. 호숫가에는 억새재브리너스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한쪽 수면에는 희고 노란 수련이 떠서 흔들거린다. 갑자기 비행기 소리가 요란했다.

“솨!솨!.....”

순간 분수가 높이 치솟았다. 오른쪽부터 41 개의 분수가 차례로 물을 뿜는다. 비행기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되는데, 시골에서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멍멍 짖어대는 개나, 꽥꽥 거리는 거위 같다. 항공기의 소음을 감지하여 자동으로 뿜는 소리분수라고. 81dB 이상이면 감지하는데, 김포공항을 이웃한 이 지역의 소음 완화 문제를 이벤트로 하고 있다고 한다. 호기심으로 正 자를 쓰며 횟수를 적었더니, 1시간 45분 동안 27회였으니까, 평균 4분 꼴이다.

1세기전 이탈리아의 화가요 작곡가인 루이기 루솔로가 다시 살아난다면 ‘소음의 예술’ 선언문을 다시 펴들며, 산업혁명의 기계 문명 덕분에, 인류가 복잡한 기계음을 감상할 수 있는 청력을 찾게 하였노라고 소음 예찬을 할까?

몬드리언정원으로. 추상화의 선구자인 몬드리언은 원래 자연주의 화풍에 철저했으나, 나무 연작을 하면서 차차 추상으로 옮겨 갔다고. 기하학적 추상으로 ‘차가운 추상’이라 불린다. 곧 직선과 직각 그리고 흑․백색의 기조 위에 약간의 원색을 더한 가장 단순한 조화를 바탕으로, 순수하게 리얼리티를 표현하고자 했다는 평가다. 미술 교과서에 실린 판화 작품 ‘적․황․청’을 떠올리며, 수생식물원․하늘정원․생태수로를 차례로 눈여겨 살폈다. 아닌게아니라 다양한 수평․수직 구조로서의 특색이 퍽 인상적이었다.

미디어벽천(壁川)은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수경시설에, 기존의 자연석이나 인조석 대신 LED를 길게 연결시켜, 다양한 영상을 제공하고 있는데, Media Vertical Space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때로는 영화도 상영하는 등 다양한 이벤트가 가능하다는 것. 스크린을 바라보듯 이 물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넋을 잃은양 말이 없다. 나는 백발을 흩날리며 이 물벽 앞을 바짝 가까이 지나갔다. ‘외로운 억새꽃’이란 영화의 주인공으로 보이지는 않았을까? 혹시 연인끼리 지나가면 ‘황혼의 로멘스’라는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이 될 것 같다. 층계를 올라갔다. 거울처럼 맑은 직사각형 못과 직선 계류들이 조화를 이루어, 신부를 맞고자 예식장으로 입장하는 신랑의 걸음걸이같이 행복하다.

호숫가에 늘어선 미류나무와 수양버들이 옛 시골 냇가 풍경의 추억 속으로 데려 갔다. 쉼터에서 다시 호수를 바라보았다. 쉬고 있는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말이 없다. 무슨 상념이 있을까? 뉴욕 도심의 소음 속에 사는 조지 프로흐니크의 ‘침묵의 추구’가 흥미롭다. 비행선 30종으로 2700시간 비행한 여성 우주 비행사가 ‘우주의 침묵을 느꼈던 순간’을, 마치 안경을 쓴 것 같이 세상이 환해졌다고 고백했다는 게 아닌가? 어떤 은둔자는 입에 돌을 물고 지냈듯이, 옛날에도 침묵을 찾아 나선 수도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지금 세상은 소음 문화이다. 정치인들의 고함과 언쟁, 시위대의 욕설과 폭언, 고막이 터질 듯한 음악...저 항공기나 공장의 기계 소리보다 더 볼륨이 높고 자극적이다. 히틀러의 권력 장악 비결을 화술에서 찾는 이도 있다. 분노를 일으키는 주파수가 220dB인데, 히틀러의 음파는 228dB였다고. 지금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소음은 몇 dB일까? 저 분출하는 물줄기도 소음 문화에 대한 카타르시스인지도 모른다. 프로호니크는 현대인은 침묵의 능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고요함은 희귀 자원 신세가 되었다고 했다. 신경과학자 비노드 메논은 ‘시의 적절한 침묵은 금과 같다고’고 했다. 메모지를 꺼내어 펜 가는대로 시 ‘분수’를 썼다.

삿대질하며 주먹질하며/ 겨우내 얼어붙었던 응어리를 풀어야만 하리.

괴어 있으면 어이하랴/ 굳어 있으면 어이하랴.

아롱다롱 반짝이 옷 입고/ 노랫가락에 맞춰 춤추는 분수도 있고,

기쁨을 퐁퐁 뿜어내며/ 개구쟁이들과 물 장난치는 분수도 있는데,

그대들은 어쩌다가 여기 와서/ 귀머거리 소음과 맞서야만 하는가?

또 겨울이 되어 호수가 얼면/ 가슴을 쓸며 헛구역질을 해야만 하리.

울화를 삭이느라고 화산은 불을 뿜고, 분수는 물을 뿜나보다. 그리고 이 쉼터의 사람들은 역설로 조개 되어 입을 다물고...

호수를 한 바퀴 돌고, 마지막 생태숲 탐방로로. 나지막한 산등성이를 타고 천천히 걸었다. 프레시한 공기를 호흡할 수 있는 자연 속에 돗자리를 깔고 오수를 즐기는 사람이 있고, 상크름한 솔내를 온몸으로 들이쉬며 녹색인간이 되어 산책하는 나도 더할 나위 없는 행운아다. 산에서 내려다 보는 호수와 분수의 청량감이 더욱 물씬하다. 하늘과 땅, 물과 숲이 하나가 된 자연의 일체감이 이런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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