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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둘레길

걷고 쉬고 생각하고

by 최연수 Jan 28. 2025

 7호선 도봉산역에서 하차 버스로 환승 다락원 쪽으로 향하였다. 북한산 국립공원 21 둘레길 중, 다락원에서 무수골까지의 18구간 도봉옛길(3.1Km)을 걷기로. 드높은 하늘과 선선한 날씨가 전형적인 가을이다. 40여 년 동안 멀리 그리워만 하다가, 설래는 마음으로 다시 도봉산을 만나뵙기로. 

 무난한 코스이기에 천천히 걸었다. 제1휴식처에서 쌍안경으로 위용을 자랑하는 만장봉(718m) 선인봉(708m) 자운봉(740m) 등을 바라보았다. 가을 햇볕에 반사하는 백악이 유난히 눈부시다. 도를 닦는 봉우리라고 도봉산이라 이르는데, 그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가 봉우리요 곧 도사이다.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와 우뚝 버티고 서있는 봉우리 앞에서, 숙연해질 수 밖에. 곁에 있는 분에게 쌍안경을 빌려 주었더니 여간 고마워한 게 아니다.

 둘레길 표지판을 따라 헤매지 않고 제대로 걸었다. 각종 나무에게 이름표를 달아주어 참 좋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알고 있는 오리나무는 물오리나무이고, 원 오리나무는 따로 있었다. 옛날 오리길미다 심어놓아 이정표 구실을 했다는 나무. 아직 단풍 철은 이른가보다. 봄철 꽃들보다 가을철 단풍이 더 고운 법. 내 인생의 가을도 깊어가는데 단풍이 고와야 할 텐데....참나무 종류가 많으나, 도토리들은 어디에 숨어서 도톨도톨 숨쉬고 있는지 한 개도 눈에 띄지 않구나

 한참 걷는데 인적이 뚝 끊겨 길을 잘 못 들었나보다고 생각했다. 호젓한 길가에 드문 드문 묘들이 누워있다. 비석과 함께 숨 쉬는 것도 몇 기 있었지만, 거의 잔디는 문드러지고, 봉분도 반반해졌다. 자손들의 발검음이 뜨음해지면, 무덤도 쉬 늙어 저렇게 초라하게 또 숨을 거두리라. 

 요기를 하고 내리막길로. 물이 밭은 골짜기가 나타나고, 주위에 구절초․고들빼기․쑥부쟁이․여뀌 등 야생화들이 아는 체 한다. 잘 닦아진 넓은 길이 나타나면서 갑자기 등산객들로 왁자지껄했다. 울긋불긋한 차림새가 단풍보다 더 곱다. 사람의 마음은 이미 가을이 짙었구나. 광륜사와 도봉탐방 지원센타 도봉분소가 자리잡고 있다. 도봉역에서 이 길로 들어와서, 녹야원이나 보문 능선으로 가는 코스가 본래의 등산로인가 보다. 이미 두어 시간 이상을 걸었으므로 나는 무수골로. 졸졸졸 흐르는 제법 큰 골짜기를 따라가니 능원사와 도봉사가 차례로 나타났다. 절 담벼락의 벽화가 재미있다. 손가락 하나를 위로 치켜든 모습은, 본래 중생과 부처가 하나를 뜻하는 ‘지권인’이고, 한 손바닥을 펴들고 한 손바닥을 위로 쳐들고 있는 모습은, 지신을 초청하여 마귀를 물리치는 ‘항마촉지인’이라는 것. 김지헌의 ‘둘레길’과 이해인의 ‘내 안에서 크는 산’ 시를 읊으며, 오늘 하룻길을 마감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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