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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호수공원

걷고 쉬고 생각하고

by 최연수 Jan 28. 2025

 지하철 2호선 서울대역에서 내려 버스로 환승, 서울대 정문 앞에서 하차. 바야흐로 등산철. 많은 사람이 북적거렸다. 교직에 있던 젊은 시절 아이들 소풍 때 한두번 왔을뿐, 관악산 등산을 즐기던 60대 때도 별로 다니지 않은 길이다. 

 미당 서정주의 ‘관악구에 새벽이 오면’ 시비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한봄에 철쭉꽃 뿌리는 꽃필 채비를하고 있는데, 당신들은 왜 사랑마저 잊었으며,  강감찬 장군의 넋이 서려있는데, 왜 쪼무래기로만 남으려느냐고 읊고 있다. 이곳 출신으로서의 애향심을 노래한 것. 가을도 중순인데 담쟁이 덩굴과 몇 그루 단풍나무․붉나무만 빨갛게 물들었다. 주종을 이룬 참나무들은 약간 노릇노릇할 뿐 아직은 푸르다. 초록 숲길로 들어서는데, ‘나무는 시. 숲은 소설’이란 글귀가 씌어 있는가 하면, 또 한 곳에는 ‘나무는 악기 숲은 콘서트홀’이라고도 씌어 있다. 그래서 산을 찾고 숲길을 걷는 게 아닌가?   

 호수공원 쪽으로. 옛날 두살배기 우리 아이를 데리고 왔을 때는 수영장이었는데, 지금은 인공 호수로 개조하여 공원이 되어 있다. 작은 무지개 다리를 건너니 큰 괴석이 탑처럼 서서 날 맞이한다. 조선 영․정조 때 시․서․화로 이름을 떨쳤던 자하(紫霞) 신위(申緯)를 기리는 동판 좌상과 자하정이 서 있다. 분수는 벌써 겨울잠으로 들어간듯, 호숫가 갈대들도 월동 채비를 하고 있다.

 왼쪽으로 계곡을 끼고 산을 오르는데, 온통 돌길이다. 관악산이 돌산이라지만 돌이란 돌을 모조리 갖다가 쏟아 부어 놓은 것 같다. ‘돌은 시 바위는 소설’ ‘돌은 악기 바위는 콘서트홀’로 바꿔 불렀다. 가파른 길은 아니지만, 울퉁불퉁한 돌들을 밟으며 비탈길을 오르는 건 여간 힘드는 게 아니다. 나무들과 얘기 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게 등산의 묘미인데, 헛디딜까봐 땅만 살펴야 한다니 이건 김샌 게 아닌가? 길가에 들꽃이라도 피어 있으면 눈 요기라도 하련만... 맑은 계곡 물이 흐르니까 망정이지 쉬 지쳤을지 모른다. 

 운동 기구와 휴식 시설이 마련된 넓은 광장을 지나 칠성당 계곡은 생태계보전지역이라고. 성주암․삼막사 등산은 접고, 무너미 고개에서 요기를 하고 발길을 돌렸다. 내리막길도 역시 힘들었다. 걷는 것도 이렇거늘 이 돌길을 닦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도 돌과 싸우며 계곡과 물놀이장을 정비하는 분들의 땀방울 앞에서 내 땀은 이내 식어버렸다.

 아뿔사! 호수공원을 지나 야외식물원을 둘러보는데 눈알을 빼놓고 온 게 아닌가? 황당했다. 어느 쉼터에 놓고 왔겠지. 찾아나서려는데 다리 힘이 빠진 듯. 맞춘지 8년이나 되어 다 낡았으니 포기할까 몇 번 망설이었지. 홀로 남겨 둔 채 훌쩍 떠나간 내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넋을 잃고 혼자 어이없이 앉아 있을 그가 안쓰러워 발걸음을 되돌렸다. 20분 동안 다시 산을 올라가서야 드디어 어느 벤치에서 안경을 찾았다. 노여워 입을 다물고 애써 봇 본채 토라져있는 그를 집어들었다. 조금 전 호수공원 자하정에서, 숨어 있는 엄마 아빠를 찾느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울던 아이가 생각났다. 

 올 때 지나쳤던 길쌈박물관.농촌풍경학습장을 잠깐 들렀다. 작은 규모지만 사계절을 모르는 온갖 화초들이 자태를 뽐내는군. 잃었다가 되돌아온 눈알은 더욱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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