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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공원

걷고 쉬고 생각하고

by 최연수

지하철 9호선 가양역에서 내려 걸어서 공원 안으로. 한눈에 들어오 는 그다지 넓지 않은 근린공원이요, 경관이 빼어나게 좋은 곳도 아니다. 그러나 옛날 이곳 탑산(塔山)은 명승지의 하나였다고. 경관보다는 동양의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인 구암(龜岩) 허준(許浚)에 얽힌 이야기를 생각하며 흥미있게 거닐었다.

허준 동상 앞에 섰다. 환자를 뉘어놓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치료하는 좌상이다. 그 옆에는 동의보감이 4권 놓여있다. 그는 “옛날 뛰어난 의원은 사람의 마음을 잘 다스려 미리 병이 나지 않도록 했는데, 지금의 의원은 사람의 병만 다스리고 마음을 다스릴 줄 모른다”고 했다지. 예방 의학 또는 요즘 흔히 쓰는 힐링(healing)이라는 말을 이미 썼던 셈이다. 그는 근대 민족의학의 지향점을 세워 한방의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위인이다. 16년 연구 끝에 완성(1610)해 내놓은 동의보감은 동양뿐만 아니라 현재 세계 각국에서 번역된 의서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2009)되어 있지.

동상 앞을 떠나 구암호로 내려왔다. 호수라기 보다는 넓은 연못 같은 느낌의 호수다. 올림픽대로를 건설할 때 한강 일부가 잘려져 나와 이루어진 호수라고. 호숫가에 커다란 바위가 버티고 있다. 한 개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두 개가 포개져 있다. 머리 위에 애교있게 진달래꽃 리본을 메고 있구나. 이 바위가 그 유명한 광주바위란다. 옛날 큰 홍수가 났을 때 광주(경기)에서 떠내려온 것이라나? 때문에 이곳 양천 현감이 광주 현감에게 해마다 이곳에서 난 싸리비를 세금으로 바쳤다는 것. 그런데 아무래도 억울해 광주에서 되 찾아가라 한 후로 중단했다고 한다. ‘광주 바위타령’ 민요가 곧 이 바위라고 한다.

그 밖에 몇 몇 어린 바위가 호수 위에 둥둥 떠있고, 그 사이 사이로 따사로운 햇빛을 등에 진 오리 식구 세 마리가, 새봄의 찬가를 부르는 참새들의 노래에 맞추어 수상 피겨를 즐기고 있다. 그래서일까 거북이 바위가 빙그레 웃고 있구나.

허가바위(서울기념물11호)로. 잘려진 탑산 자락의 커다란 바위로서, 허(許)씨와의 연관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양천(陽川) 허씨의 시조(許宣文)가 이 바위 밑에 뚫린 동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이 동굴을 공암(孔巖)바위라고 하는데, 최초의 지명인 제차파의(齊次巴衣)가 곧 구멍바위 동굴바위라는 뜻이라고. 지금 겉 보기에는 허술하지만 성인 20 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동굴로, 임진왜란․병자호란 때 피신처가 되었다는 것. 옛날에는 시인묵객들이 허가바위 아래쪽의 공암나루터를 통해, 위의 소요정(逍遙亭)으로 올라와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공원을 벗어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구름다리를 건너 한강변으로. 잔 물결을 어루만지며 불어오는 봄바람이 뺨을 가지럽힌다. 공암나루터 여울을 옛날엔 투금탄(投金灘)이라 했다는데 바로 이곳이 아닐까? 조년(兆年) 억년(億年) 형제 이야기를 교과서를 통해 가르치면서, 우리도 이렇게 이씨 형제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곤 했다. 길가다 우연히 주운 황금덩이를 형제가 똑같이 나눠 가졌는데, 함께 배를 타고 가던 아우가 그만 강물에 던졌다는 게 아닌가? 만약 형이 없었다면 두 덩이를 다 차지했을텐데 하는 나쁜 마음이 일어난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 말을 들은 형도 덩달아 던졌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황금만능주의에 휩쓸려 재산 문제로 부자간․형제간의 소송사건 심지어 살인 사건이 심심찮게 보도되는 요즘 세태에 별세계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되돌아 오는 길에 공원 밖 주위를 산책하는데, 오히려 벚꽃이 한창인 이곳이 공원이다. 공원 안쪽은 한산했는데, 봄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마지막으로 내의원과 내의녀 인형의 환대를 받으며 허준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이곳이 허준이 태어나고 자라며 동의보감을 집필하고 돌아가셨다는 설명이다. 조선 중기의 의학자 양평군(陽平君) 허준 초상을 비롯해서, 그의 저서들과 허준기념실, 내의원 생활상, 조선시대 한의원 전경, 진료실, 약재 창고 등이 잘 정비되어있다. 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께서 한약방을 하셨기 때문에 관심 깊게 둘러보았다. 약초원에는 동의보감에 실린 70여 종의 약초가 심겨져 있고, 옥상에는 약초분포도가 있다. 때마침 지금 MBC 일일방송극으로 ‘구암 허준’이 방영되고 있는데, 허준의 출생에 관한 미스터리에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가 서자임은 공통된 설명이나, 출생일과 출생지 성장지 모두가 설이 분분하다. 그의 인격과 업적에 흠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인물에 관해서 이리도 여러 가지 주장이 있는 것도 아마 드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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