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새가 깐 알
종이 학을 접다 보면 재호는 곧잘 어렸을 적 일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혼자서 싱긋 웃곤 하였다. 어렸을 적에는 한반도의 가장 남쪽 끝인 대구면 마량리라는 작은 포구에서 살았다. 닻을 올리고 돛만 달아주면, 금방 바다 위를 미끄러질 것 같은 ‘까막섬’이 손에 잡힐 듯 두둥실 떠 있고, 이 ‘까막섬’은 늘 아이들에게 놀러 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고금도가 맏형님처럼 점잖게 버티고 떠있었다.
재호는 하늘과 바다 위를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갈매기와 황새를 남달리 좋아하며 친구 삼아 자랐다. 아이들은 왜가리를 황새라고 불렀다. 조금 간물때 동네 아이들은 개펄에 빠지면서 이따금 까막섬에 갔는데, 산딸기나 머루 따먹는 재미도 있었지만, 황새들을 골려주는 일이 무척 재미있었다. 오만가지 나무들이 울창한 푸른 숲을, 눈처럼 하얗게 뒤덮고 앉아 있다가, 돌멩이를 던지면 일제히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모습은 참으로 볼만했다.
재호는 아빠더러 황새나 갈매기를 잡아서 기르자고 했다. 황새와 갈매기도 재호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옛날 이야기를 한 가지 해주겠다고 하였다.
“ 옛날 옛날 호랭이 댐배 묵던 시절이었는디, 어느 갯가에 해오라기와 아조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디, ”
“ 그래서? ”
“ 그 사람이 갯가에 나가믄 많은 해오라기들이 날아와서, 그 어깨나 손부닥 위에 앉아 놀았다는구나.”
“ 와! 좋겄다.”
재호는 제 손바닥을 펴 보이고 어깨를 우쭐해 보였다. 금방 황새나 갈매기가 날아올 것만 같았다.
“ 근디 말이다. 그 이야기를 각시에게 들려 주었는디, 각시가 아조 신기하게 생각해서 해오라기 한 마리 잡아오라고 했다는구나.”
“ 그래서? ”
재호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바싹 가까이 다가앉았다.
“ 근디 말이다. 그 사람이 새를 잡을라고 날이 새자마자 바닷가에 나갔거든.”
“ 응 그래서? ”
“ 그래서 으츠꾸 되었을 것 같냐? ”
“ 꽉 잡았지.”
재호는 신이 나서 두 팔로 새를 잡는 시늉을 했다.
아버지는 담배 한 대를 피워 물며, 한참 뜸을 드리다가
“ 아녀, 아무리 지달려도 한 마리도 날아오지 않았다는 거여. ”
하면서 재호의 등을 가볍게 두들겼다. 재호의 눈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아버지는, 그 사람이 잡으려는 것을 알아차리고 해오라기들이 벌써 멀리 피해 가버린 것이라고 하였다. 새를 잡아다가 기르는 것은, 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도 곁들었다.
“ 그라믄 못 잡는거야? ”
“ 새는 못 길러. 지 맘대로 날아다녀야재......”
“.....................”
어느 날 재호는 갯가집 형으로부터 종이새 한 마리와 강낭콩만한 새알 두 개를 얻었다. 이 종이새가 알을 품으면 새끼를 까게 된다는 것이다. 재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으나, 상자 안에 솜을 깔고 알록달록한 알을 놓아두었다. 깨질까봐 조심조심 그 위에 종이새를 얹어놓았다. 그리고 반닫이 밑에다 쑥 밀어 넣어 두었다.
“ 새야, 알 까그라 잉!”
재호는 혹시나 하고 뻔질나게 상자를 끌어내어 살펴보곤 하였다. 앙증스럽게 알을 꼬옥 품고 있는 종이새의 모습이 금방이라도 새
끼를 깔 것 같이 보였다.
열흘쯤 지났을까, 재호가 마을 갔다가 들어오니까 새장 안에서 귀여운 새 한 쌍이 뭐라고 재잘거리고 있지 않는가? 재호는 재빨리 상자를 끌어내어 보았다. 아, 종이새는 어디론지 날아 가버리고, 알도 없어진 채 솜 둥지만 남아있는 게 아닌가?.
“ 엄니, 내 종우새 으디 갔다우?”
“.....................”
엄마는 말없이 웃고만 있더니, 새장을 가리키며
“ 금매, 알 까놓고 날아가 부렀는갑다.”
하는 것이다. 그토록 조그만 알에서 어떻게 저렇게 큰 새가 까일 수 있을까 의심이 났지만, 재호는 아뭏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엄마는 새장 문을 함부로 열면 날아가니까 조심하라면서, 좁쌀을 넣어 주기도 하고 푸성귀 잎도 넣어 주었다. 새들이 모이를 쪼아먹는 모습이며, 접시 물에서 목욕하는 모습이 참 깜찍스러웠다.
재호는 자랑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서, 먼저 갯가집 형에게 달려갔다.
“ 성, 우리 종우새가 새끼 깠다!”
“................”
“ 두 마리 깠다.”
재호는 자랑스럽게 두 손가락을 펴 보였다.
“ 거짓말 마.”
“ 참말이야.”
기뻐 해야할 형은 뜻밖에도 시큰둥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재호에게 이끌리어 따라왔다.
“ 요것 봐! ”
그러나 형은 큰 소리로 웃으면서 종이새가 어떻게 알을 까느냐고 핀잔을 주는 것이다. 종이새가 알을 깔 거라면서 인심 좋게 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까지 못한다니 형이 야속하고 얄미워, 재호는 혀를 날름 내밀며 눈을 흘겼다.
“ 요놈아, 종우새는 가짜야. 가짜 새가 으츠구 알을 까냐? 널 놀려줄라고 그랬재.”
형은 재호의 머리에 군밤을 주는 시늉을 했다.
그 날 밤, 재호는 아빠에게 종이새가 진짜로 알을 깠느냐고 물어 보았다.
“ 니가 하도 새를 좋아해서 사 왔지야.”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가짜 새는 알을 낳지도 못하고 까지도 못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재호의 호기심은 사라졌으나, 새를 좋아하는 마음은 날로 더해 갔다. 아빠가 목포에 나들이하고 돌아오면서 십자매 한 쌍을 사온 것이다.
그런데, 이 무렵 재호 아빠 엄마가 종이새라는 소문이 아이들 사이에 나돌고, 마침내 재호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그렇다면 재호는 종이새가 깐 알이란 말인가?
“ 엄니 아부지가 종우새야? ”
이 뜻밖의 질문에 엄마는 얼른 대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했다.
“ 아그들이 엄니 아부지가 종우새라고 해.”
“ 누가 그래? 고런 못된 놈들...”
엄마는 아빠의 얼굴을 쳐다보며, 아이들을 혼내주라며 욕을 했다.
“ 가짜 엄니 아부지는 없재? ”
“ 아믄, 시상에 가짜 엄니 아부지가 워디 있다냐? 널 놀려줄라고 그랬지야.....”
아빠는 담배 한 개비를 또 피워 물더니, 아버지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재호를 사랑한다고 했다.
그 후 재호네는 재호가 학교 갈 나이가 되자 간이학교밖에 없는마량리를 떠나, 장흥읍으로 이사를 와서 조그만 농방을 차렸다. 장흥은 까막섬과 바다가 없고 갈매기와 황새가 없어 쓸쓸했으나, 코앞에 날마다 오를 수 있는 아름다운 남산이 있고, 은어와 함께 헤엄칠 수 있는 맑은 탐진강이 굽이쳐 흘렀다. 2층집이 있고, 자동차가 있고,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전깃불도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웃에는 알아듣지도 못한 말을 쓰는 중국 사람과 일본 사람들도꽤 많이 섞여 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어렸을 때 그 갯가집 형으로부터 얻었던 그 종이 학, 까막섬의 친구들이었던 그 학을 재호가 지금 접고 있는 것이다. 재호의 손재주는 그 작고 야윈 손 때문이라고들 했다. 아닌게 아니라 노무라 선생으로부터도 손재주가 있다는 칭찬을 들었다.
재호가 2학년이 된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는 노무자라는 이름으로 징용을 갔다. 일본 남쪽 섬 큐우슈로 간다고 했다. 돈 벌러 간다고 했으나, 할아버지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으며,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씀 잘 듣고 공부 잘 하라며 떠났는데, 처음에는 몇 통의 편지가 날아왔으나 웬 일인지 소식이 끊긴지 퍽 오래 되었다. 할아버지는 노상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 연기만 내뿜고, 어머니는 혼자서 밤늦게 바느질 할 때나 물레질할 때는, 구슬픈 계면조의 남도 민요나 심청전 춘향전 등 판소리를 흉내내 듯 부르며, 곧잘 눈물을 짓고 신세타령을 했다. 재호는 그 끊일락 말락 떨면서 흐느끼는 듯한그 목소리가 여간 싫지 않아 귀를 막곤 했다.
1) 간이학교(簡易學校)...시골에 세워진 초급 과정의 작은 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