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새가 깐 알
오른쪽 왼쪽 날개들이 일으킨 회오리바람 속에서 재호가 6학년이 되었다. 담임이 사범학교를 갖 졸업한 고선생으로 바뀌었다. 고선생은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정치 싸움에 휘말리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당부했다. 고선생은 국어 특히 옛 시조를 잘 가르쳐 주었다. 눈만 지그시 감으면 수십 수의 시조가 술술 흘러 나왔다. 재호는 그 모습이 그토록 멋있을 수 없었다. 문학을 좋아한다는 고선생은 동화와 소년소설도 곧잘 읽어주었다. 입만 벙긋 하면 우익을 비난하며, 정치 사상이야기를 하는 구선생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낸 까마귀 흰 빛을 새오나니
청강에 기껏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그러나 고선생이 가르쳐준 이 옛 시조에서, 까마귀가 과연 누구며 또한 백로는 누구냐고 따지며 대든 영식이는, 이것을 빌미로 말끝마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곤 했다. 우리의 옛 시조에는 까마귀와 백로가 많이 등장한다고 했으나, 그대로 곧이 듣지 않았다. 시조와는 아무 관계 없이, 왜 통일 정부를 세워야지, 단독 정부를 세워야 하느냐, 단독 정부를 세우면 삼팔선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고 따지면, 다른 아이들은 덩달아 박수를 치며 응원을 했다. 지주의 아들로 우익이라고 찍힌 젊은 고선생은, 색시같이 곱고 애띤 얼굴 모습부터가 이미 아이들을 휘어잡을 만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야들아, 저 고선생 실력 없어, 우리가 6학년인디 풋내기 선생한테 배울 수 있냐? 안 그렇냐?”
“옳소! 옳소!”
아이들은 책상을 치면서 맞장구를 쳤다. 때 마침 여자 학급 김선생님이 신병으로 오래 결근을 하게 되어 분반을 하게 되었다. 그 학급의 반수가 재호네 학급으로 오게 되었는데, 고선생은 그들을 앞자리에 앉히고 청소를 시키지 않았다. 고선생은 1학년 강선생님과 연애를 하며, 여자아이들만을 편애하는 색골이고,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매국노라며, 이런 선생에게 배울 수 없다고 재호는 아이들을 선동했다. 중학생들이 번질 나게 학교를 출입하더니 드디어 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영식이는 자치회를 열어 고선생을 내쫓기 위해서 동맹휴학을 하자고 제의 헸다.
“ 반대하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
한 사람의 반대도 없이, 이튿날 학교에 나오지 말고 읍사무소 뒤뜰로 모이기로 했다.
이튿날 재호는 우울한 얼굴로 책보를 끼고 집을 나섰다. 다리 앞에 이르렀을 때 복동이와 천곤이가 가로막았다. 그들은 영식이의 오른 팔이요 왼 팔이 아닌가?
“이 간나구 새끼 으디 가? 동맹휴학 몰라? 학교 가믄 쥑여!”
그들은 재호의 멱살을 잡더니 끌고 갔다. 거기에는 벌써 많은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학교 가다 잡혀 온 재호를 노려보며 한 대 칠 것 같이 으름장을 놓았다. 결석을 한 것인지 눈에 띄지 않은 원준이는 배반자, 비겁한 놈이라며 가만 두지 않겠다고 이를 갈았다.
“야들아, 날 따라 와, 시키는 대로 해!”
영식이는 아이들을 줄 세워 거리로 나갔다.
“고영수 물러가라!”
“고영수 물러가라!”
“실력 없는 선생 나가라!”
“실력 없는 선생 나가라!”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 없이 이 시위대는 교문 앞까지 갔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외치는 영식이의 쩌렁쩌렁한 구호를 따라서, 아이들도 큰 소리로 따라 외쳤다. 피켓은 가랑비에 젖어 흉물스러웠다. 고선생이 코를 실룩거리며 걸어나와 일단 교실로 들어가자고 했으나, 상대를 하지 않고 교장 나오라고 소리쳤다. 이윽고 교장이 나왔다. 영식이는 교장에게 고선생의 잘못을 조목조목 대면서 쫓아내거나 바꾸어 달라고 요구 조건을 내놓았다. 담임 선생님을 바로 쳐다보지 못한 채, 그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더듬거리는 재호에게는, 거침없이 따지며 대드는 영식이가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았다.
아뭏든 교실로 들어와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달랬으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들어가지 않겠다면서 그냥 뒤돌아 섰다. 교문 앞에 두 줄로 늘어선 측백나무들뿐만 아니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이 광경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다. 거의 매일 같이 일어나는 시위에 만성이 되어 있었다. 어느 사이엔지 대열에 끼어 든 중학생의 지시를 받으면서 영식이는 근처 야산으로 올라가 버티자고 하였다. 재호는 슬쩍 대열에서 빠져 나와 집으로 도망쳐 왔다.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던 아버지는 덫에서 잘 빠져 나왔다면서, 좌익 어른들이 꾸며 놓은 각본이라고 흥분했다.
뒤늦게 출동한 경찰에게 끌려가 주동자인 영식이는 무릎을 꿇고 팔을 들며 벌을 섰고, 다른 아이들은 잘 타일러 부모들에게 인도되었다고 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재호는 영식이 패들의 눈밖에 벗어나, 자라목이 되어버린 채 도살장에 들어간 소같이 학교 가기가 싫어, 꾀병을 앓고 결석한 일도 있었다. 고선생의 동정어린 눈길이 아니었다면 단 하루도 견딜 수 없으리만큼 갑갑하고 무시무시한 학교 생활이 계속되었다.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시위대가 맞붙어 피를 흘리기도 했다. 기마 경찰이 순시를 하고, 총대를 든 미군 찌프가 순시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재호는 중학교 입학 시험을 보았다. 그러나 떨어졌다. 영식이는 껑충 2학년으로 월반까지 하여 입학하는 판에, 재호는 몇 명 떨어지지 않은 1학년 입시에도 떨어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다고 고선생이 몹시 당황했으나, 재호는 구술 시험장에서 있었던 일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뭘 하느냐고 물었을 때, 얼떨결에 민족청년단이라고 대답하지 않았던가? 그 때
“민족청년단이 아니라 민족반역단이지. 나가!”
라고 안경 너머로 흘겨보며 빈정대던 그 대머리 선생이 그 동안 마음에 걸렸었다.
“틀림없다. 빨갱이 놈들 농간이다!”
아버지는 중학교에 달려가서 채점한 답안지와 시험문제 원지를 내놓으라고 대들었지만, 학교에서는 이미 태워 버렸노라고 빈 손바닥을 두들겨 보였다. 빨갱이 못자리로 이름난 학교에서 재호를 일부러 낙방시킨 게 틀림없다고 흥분했지만, 그 무엇으로 증거를 댈 수도 없고 어느 누구에게 호소할 수도 없었다.
“재호야, 내년엔 오기로 광주 가서 시험 봐라!”
“..............”
재호는 온 몸에서 맥이 쭉 빠졌다. 가슴은 할퀸 듯이 쓰라리고, 곰보에 언청이라도 된 듯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밖에도 나가지 못했다. 교복에 교모를 쓰고 가방을 든 동창들을 만날까 봐 죄인 같이 피해 다녔다.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다. 아버지가 왜 민족청년단이 되었는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좌익들의 끈질긴 방해를 무릅쓰고, 유엔(국제연합)의 감시 밑에 총선거가 실시되고 국회가 문을 열었다. 헌법이 제정되고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 박사가 선출되었다. 해방 된지 3년 만인 8월 15일에 미군의 군정이 문을 닫고,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으로 세워지면서 유엔의 승인을 얻었다.
읍사무소 앞에서 열린 경축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아버지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 차 있었다.
“인제 당신도 배슬 하겄지라우?”
어머니는 해방 후 지금까지 좌익들하고 싸우면서 건국 운동을 했으니, 큰 벼슬자리는 맡아놓은 것 아니냐며 덩달아 기뻐했다. 그러나 재호는 지난날 낙방에 대한 상처와 코앞에 다가선 입시에 대한 불안이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어서, 기뻐하는 아버지 어머니를 그렇게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이북 땅이 더 넓은디요?”
재호는 아버지의 처사가 못마땅해서, 영식이의 말을 떠올리며 불쑥 가시 돋친 말을 던졌다.
“땅덩이가 문제가 아녀. 인구 3분의 2가 이남서 살고, 90빠센토 넘게 투표에 참가했는디...”
공산 정부를 세우려는 좌익의 폭력이 끊이지 않은 한, 아버지는 이남만이라도 정부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될 이유를 침이 마르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나 재호에게는 그리 쉽게 이해되지 않고, 오히려 통일 정부를 세워야 한다는 영식이의 말이 자꾸만 귓바퀴를 맴돌았다.
정부 수립을 줄곧 반대해 왔던 좌익들은, 이제 드러내 놓고 전과 같은 시위를 하지 못 했지만, 끼리끼리 모이면 정부를 헐뜯고, 이승만 대통령을 욕하고 미국을 비난했다. 그리고 이북도 그들 나름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라는 정부를 세웠으며, 이남은 농업국이지만 이북은 공업국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영식이는 뭘 하고 있을까? 중학교에 가서도 판을 치고 있겠지’
까딱하면 핀잔을 맞고, 미움 받아 얻어맞기도 했던 재호는, 그와 떨어져 있다는 것이 퍽 안심이 되었으나, 한편으로는 그러면서도 맏형처럼 그를 의지하며, 우상처럼 그를 떠받들며 함께 어울렸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어떻든 영식이 없는 재호에게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의 길이 아주 끊겼으며, 그 구수했던 농담과 욕지거리를 듣지 못해 귀가 근질근질해서 여간 심심하지 않았다.
재호는 거의 문밖 출입을 하지 않은 채 책과 씨름을 했다. 나른한 피로와 지루한 권태가 밀물처럼 밀려오면, 고선생님이 가르쳐 주었던 옛시조를 외우고, 들려주셨던 그 재미난 동화들을 써보았다.
계모로부터 산 속에 버려진 오누이가, 흰 새의 안내를 받아, 과자 지붕과 사탕 창이 있는 빵집으로 들어가서 빵을 뜯어먹으며 살다가, 마귀 할멈에게 붙잡혀 죽을 뻔한 후 용하게 살아나온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가 참으로 재미있었다.
그리고, 황금 사과가 열리는 이상한 사과나무에, 찬란한 광채가 나는 황금새가 날아와 열매를 쪼아먹으려 할 때, 왕자가 쏜 화살에 날개 깃털 하나가 떨어지고, 여우 덕분에 황금새를 얻게 된 막내 왕자가, 여우의 누이인 공주와 결혼했다는 ‘황금새’ 이야기도 물론 재미있었다.
재호는 자기도 그런 재미난 동화를 지어 보고싶은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