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앵무새 그림책

종이새가 깐 알

by 최연수

용아는 혼자 집을 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장을 보러 갔는데, 말 잘 하는 구관조나 앵무새를 선물로 사 가지고 온다고 했습니다. 말재간이 없고 노래 솜씨가 없는 용아는 그런 새를 무척이나 기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 땡그랑”

마침내 대문에 매달린 종이 울렸습니다.

“ 누구세요? ”

용아는 방문을 열어보았지만 바둑이만 꼬리를 치며 들어왔습니다. 강아지에게 속은 것입니다. 조금 더 기다려 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방문이 가만히 열렸습니다. 드디어 어머니가 온 줄 알고

“ 어머니세요?”

하고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속았습니다. 바람은 손도 달리지 않았는데, 지나가면서 심술궂게 방문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속은 것입니다.

“ 에잇, 기분 나빠.”

용아는 쥐고있던 딱지들을 내팽개치며 투덜거렸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벌써 왔을 텐데, 한나절이 되었는데도 웬일인지 아직도 소식이 없습니다. 궁금증이 나서 견딜 수 없는데,

“ -용아!”

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닙니까? 용아는 너무 반가워서, 미쳐 신을 신지 못한 채

“ 예.”

하고 마당으로 뛰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웬 일입니까?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엄마가 숨어있지나 않나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이웃집에서 미용이를 부르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용아는 또 속은 것입니다. 용과 미용이의 이름이 비슷해서 가끔 이렇게 속곤 했습니다. 이제는 조바심이 났습니다.

“ 많이 기다렸지?”

“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용아는 소꿉놀이 할 때처럼, 자기가 어머니로 되었다가, 용아가 되었다가 하면서 혼자 묻고 대답하곤 하였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오지 않습니다. 용아는 하품을 하다말고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잤을까, 새 소리에 눈을 떴더니 이름 모른 예쁜 새 한 마리가 방안으로 들어와 파드닥거렸습니다. 새를 잡으려고 이리 저리 뛰어다녔지만 새는 창문 밖으로 그만 날아 가버렸습니다.

참 서운해하고 있는데, 누웠던 자리에 그림책이 한 권 놓여있는 게 아닙니까? 깜짝 놀란 용아는 그림책을 들고 펴보았습니다. 예쁜 앵무새 그림과 함께 ‘앵무새 그림책’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용아는 너무도 기뻐서 단숨에 읽어 나갔습니다. 색동저고리 옷을 입은 앵무새는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잘 불렀고, 재잘재잘 말도 참 잘 했습니다. 그래서 새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에게도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늘 앵무새처럼 노래도 잘 부르고 말도 잘 하고싶은 용아는, 너무도 부러워 표지의 앵무새를 가위로 오려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청을 찢어내어 자기 목 속에 붙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오려낸 앵무새는 포르르 날아서 횃대 위에 앉았습니다. 용아는

“ 요놈 새끼 봐!”

하고 소리쳤습니다. 앵무새는 울상이 되어 왜 자기를 오려내었느냐고 따졌습니다.

“ 너처럼 노래도 잘 부르고, 말도 잘 하고싶어서 그랬지.”

하며 용아는 울먹였습니다.

“ 그럼 내가 이 마스크를 줄 테니까 귀에다 걸어봐.”

하면서 마스크 하나를 던져 주었습니다. 용아는 기뻐서 얼른 귀에다 걸었습니다. 정말 매부리코 같은 마스크를 하고 나니까 꼭 앵무새 부리 같았습니다. 용아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자신 있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노래는커녕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 앵무새야, 나하고 친하자. 노래 좀 가르쳐 주라”

하고 말을 했는데

“ 앵무새야, 너하고 안 놀래. 늬까짓 게 뭘 노랠 잘 부른다고....”

하고 반대되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몹시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돌아왔습니다. 하도 반가워

“ 엄마, 앵무새 구관조 사왔어?”

하고 물었더니

“ 엄마, 썩 나가버려! 앵무새 구관조 필요 없단 말이야!”

하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큰일났습니다. 놀란 어머니는 이 이상한 마스크를 벗기려고 가위와 칼을 가져왔으나, 꼭 달라붙은 마스크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 어찌 된 거야? 왜 이렇게 됐어?”

용아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없는 어머니는 사진관으로 데려갔습니다. ‘마음을 찍는 사진관’이라는 간판이 붙어있었습니다. 사진사는 사진을 찰깍 찍더니, X레이 사진 같은 것을 불빛에 비추면서

“ 이 아이가 몹시 후회하고 있습니다. 앵무새 그림을 오려낸 것을 말입니다. 앵무새 그림을 오려내었던 모양이죠?”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굳기 전에 어서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용아를 업고 ‘마음을 찢는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 병원? 난 죽었네. 주사? 칼? ’

용아는 새파랗게 질려 바들바들 떠는데, 흰 까운에 흰 마스크와 흰 모자를 쓴 의사는 큰 칼과 가위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용아의 온 몸에서 식은땀이 났습니다.

이윽고 날카로운 칼로 마음을 찢는데,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또 무엇을 자르려는지 팔뚝만한 가위를 집어들었습니다. 용아는 기가 질려 의사의 손목을 붙들고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는데

“ 용아야, 너 꿈꾸는구나?”

하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습니다. 눈을 뜨니까 병원이 아닙니다. 의사도 보이지 않고 어머니의 웃는 모습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 앵무새는 어디 갔어?”

“ 앵무새라니? 네 꿈속으로 사라져버렸지.”

엄마는 용아가 앵무새 꿈을 꾸다가 가위눌리고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아차렸습니다.

* *

재호의 동화는 여기에서 끝났다. 기꾸장네가 선물한 일본 동화, 그림동화, 그리고 재호가 지은 동화를 모아서 한 권의 훌륭한 동화책을 만들었다. ‘앵무새 그림책’ 이야기에 ‘최재호 지음’이라고 쓰고나니 너무나 기뻤다. 아기를 낳은 엄마의 기쁨이 이와 같을까?

쓰고 나니까 용아 이야기가 아니라 재호 자신의 이야기 같았다. 고선생은, 소설가들은 처음엔 자기 이야기를 쓰는 법이라고 했다. 그리고 소설이란 팔자 사나운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했다.

아닌게아니라 집 보는 아이 용아는 재호이다. 무엇인지 모르게 목마르게 기다리고 사는 아이, 그러나 그 때 그 때마다 번번이 속고 살다가 잠든 아이. 영식이 같은 말 재간과 노래 솜씨가 부럽지만 힘에 닿지도 않고, 분에 넘치게 욕심부리며 흉내내다가 마침내 큰코다친 아이. 제 힘으로는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남에게 끌려 다니는 아이. 매양 꿈만 꾸다가 무엇 하나 쥔 것 없이 놓치고 만 아이......

재호는 용아가 측은했다. 아니 자신이 측은한 것이다. 왜 남들처럼 좀 튼튼하고, 씩씩하고, 약삭빠르고, 영리하게 태어나질 못했을까? 영식이 말대로 씨앗 탓일까? 텃밭 탓일까? 그렇다면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 때문일까? 까맣게 잊고 있었던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가 불현듯이 생각났다. 지도를 펴놓고 만주의 간도 땅 어느 곳에 자리잡고 살고 있는지, 해방을 맞이해서 고국으로 돌아오다가 삼팔선에 가로막혀 이북 어느 곳에 주저앉은 것인지......동생 승호와 순덕이도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그 때 뱃속에 있었던 동생은 이름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도 재호를 잊지 않고 생각을 하고 있는지....... 철이 들면서 재호는 태어나고 살고 죽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또한 사람의 운명이란 게 무엇인가? 재호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문제가 어렴풋이 머릿속에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keyword
이전 04화까마귀 싸우는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