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뻐꾸기는 왜 울까?

종이새가 깐 알

by 최연수

“응애 응애...”

만리성 앞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새벽을 깨웠다. 동네 개들이 컹컹 짖었다. 단잠에서 깬 만리성 아주머니는 대문을 열어 보았다.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휜 포대기에 쌓인 갓난아기가 바구니에 안에서 버둥거리며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고추가 달린 사내 아이였다.

‘누가 내부렸구나!’

순간 이런 생각이 번갯불처럼 스쳐 간 아주머니는, 아기를 안고 방으로 들어와 왕서방을 깨웠다.

“어서 일어나 봐요. 어서.”

“왜 그래 해?”

“애기 좀 봐요.”

“응애 응애...”

“누가 내다 버렸 것지라우?”

“이뻐한디.”

“당신, 하도 애기 갖고잪어한께 누가 갖다놨것재.”

아주머니는 혀를 끌끌 차면서 아기를 안고 달래었다. 저고리 섶을 들치고 빈 젖을 물렸더니 어찌나 세차게 빠는지. 왕서방은 아기를 신기해하면서 볼에다가 입을 맞추었다. 그 고사리 같은 손이며, 오밀조밀하게 돋아난 발가락이며, 생기다 만 고추며......

아주머니는 만리성 반점에 자주 드나드는 미군에게 부탁해서 우유와 분유를 얻어냈다. 숟가락으로 먹이는데 숟가락이 빨려 들어갈 정도로 힘차게 빨아먹었다.

“재호 엄니, 이 애기 좀 보소!”

“아니, 먼 애기란가?”

“글씨, 누가 대문 밖에다 놔두었단께.”

“워메메, 잘도 생겼구만 잉. 왕서방 소원 성취 했구만.”

재호 어머니도 빈 젖을 물려 보았다. 야무지게 잘 빨았다.

“우리 재호보다 더 야물구만.”

어머니는 벌써 십여 년이 지나간 옛 날을 더듬고 있었다.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젖을 얻어 먹이던 일이며, 우유 분유도 없던 시절 밥물 떠 먹이며 기르던 눈물겹던 일이며......

재호 어머니는 왕서방네 아주머니에게는 육아법 선생님이 되었다.

“근디 트기 같네 잉? 오똑한 코하며, 오목한 눈매랑 꼽실머리 랑...”

정말 날이 갈수록 아기는 서양 아기 같았다. 미군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가 아닐까 짐작을 해보았다. 혼혈아건 아니건 왕서방네는 아기에게 홀딱 반해서 온갖 정성을 다 해 길렀다. 이름은 ‘형빈’이라고 지었다. 재호도 가끔 왕서방네에 들러서 귀여운 아기를 보았다.

“이 애기 언제 났어라우?”

“한 달 전에 낳았단다. 이쁘냐?”

“예. 훈이 타겠는 것 같은디요.”

“.................”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갓난아기들은 다 비슷비슷하다고 했지만 그러고 보니까 재호의 말대로 훈이 닮은 것도 같았다. 그 무렵 훈이 엄마가 도깨비 불로 임신했다는 소문도 있었고, 미군과 깊게 사귀고 있다는 말도 심심찮게 나돌았다. 형님 동생 하는 사이였는데도, 재호네와 만리성 아주머니에게 단 한 마디의 사정 이야기도 없이, 어느 날 훈이네는 어디론지 훌쩍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빚을 졌거나 바람이 났거나 무슨 사연이 있겠지만, 어머니와 형빈이 어머니는 배신당한 듯한 느낌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고 욕을 했다.

“훈이를 왜 타게, 나 안 타겠어?”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보니까 또 아주머니 닮은 것도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왕서방 닮은 데는 없었다. 형빈이는 자고 나면 몰라보게 자랐으며, 날이 갈수록 귀여운 짓을 해서, 아주머니보다는 왕서방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십여년 전에 아기를 잃었던 쓰라린 과거를 돌아보며, 불면 날아갈까 봐 뉘면 뭐가 물어갈까 봐 늘 품에 안고 키웠다.

그러나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퍼져 나갔다. 형빈이는 미군과의 혼혈아이며, 누군가가 버린 것을 왕서방네가 주워다가 키운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식이의 말 대로라면 미군의 씨앗이 조선 여자의 텃밭에 떨어져서 싹이 났으며, 중국 사람 밭에 모종으로 옮겨 심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재호는 처음엔 귀를 의심했으나 자주 듣고 보니까 그런 것도 같았다.

재호는 남산을 퍽 좋아했다. 비록 벚나무와 함께 메아리도 다 사라지고, 울창했던 옛 모습은 되찾지 못했지만, 남산에 오르면 지저귀는 새 소리와 상큼한 산 냄새가 참 좋았다. 특히 이른 아침에 산을 오르면 동쪽 하늘에서 반짝이는 샛별이 재호를 반겨주는 것 같아서 더욱 좋았다.

“뻐국 뻐꾹”

꽃들이 다 지고 신록이 우거지는 초여름에 접어들면, 어김없이 뻐꾸기가 남산에 와서 울었다. 꼭 한 마리였다. 귀여운 훈이를 데리고 다닐 때, 뻐꾸기는 왜 제 이름만 부르느냐고 물었던 지난날이 생각났다. 훈이는 어디로 갔을까? 십자매는 지금도 기르고 있을까? 지금도 헬로 아저씨하고 놀고 있을까? 아니면 털보 아저씨하고 놀고 있을까?

“뻐꾹 뻐뻐꾹”

재호가 숨을 죽이고 살금살금 다가가면, 뻐꾸기는 금방 알아차리고 다른 나무로 후르르 날아갔다. 또다시 잠자리 포수 마냥 몰래

다가가면, 술래잡기라도 하자는 듯이 저쪽 나무로 날아갔다. 나뭇가

지에 팔뚝이 긁히고, 미끄러져 무르팍이 까질 때도 있었다. 이렇게 뻐꾸기와 숨바꼭질을 하다 보면 한 나절이 간다.

“뻐꾹 뻐뻐꾹”

재호는 그 울음소리가 어찌도 구슬프게 들리는지 그 무슨 사연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산에서 내려온 재호는 이제 뻐꾸기는 어떤 새인가에 대해서 퍽 궁금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뻐꾸기는 스스로 둥우리를 짓지 못해서, 알을 낳을 때쯤이면 다른 멧새의 둥우리에 몰래 들어가 한 개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뻐꾸기 알은 멧새에 의해서 까이고 자라는데, 다 커서는 자기가 멧새가 아니고 뻐꾸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훌쩍 날아가 버린다고 했다.

‘아, 그래서 그토록 슬피 우나 보다. 낳아준 엄마가 그리워 엄마를 부르며 우나 보다. 길러준 엄마보다 낳아준 엄마가 더 좋은가 보 다.’

재호는 이렇게 생각해보았다.

“뻐꾹 뻐뻐꾹”

이제는 건너편 산에서 뻐꾸기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 왔다. 재호는 문득 만주에 간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가 생각났다. 해방이 되었으니까 고향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작은집 식구들은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38선이 가로막혀 소식조차 끊어졌다. 재호는 양어머니 품에서 자란 자기가 뻐꾸기와 같다는 생각을 하니까 괜히 콧날이 시큰거렸다. 그리고 혹시 의붓아버지와 살고 있을지도 모를 훈이도 뻐꾸기처럼 가엾게 느껴지고, 의붓어머니 밑에서 사는 춘자 추자 쌍동이, 어쩌면 지금 형빈이도 자라면 저 뻐꾸기처럼 여기 저기 날아다니며 혼자서 서글프게 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 귀태(鬼胎)...도깨비나 귀신 아이를 배는 것. 과부나 처녀가 임신한 일

keyword
이전 02화쪼그라드는 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