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새가 깐 알
재호 아버지는 목공 연장을 다 팔아 버리고 구멍가게를 내더니 그것도 이내 치우고, 행정대서소를 차리더니 역시 치웠다. 그리고 ‘조선민족청년단’이라는 단체에 가입하고 간부가 되어 일을 했다. 이북에서 공산주의 반대 운동을 하였다가 삼팔선을 넘어 탈출해온 ‘서북청년단’을 끌어들여, 힘을 얻은 그들 젊은이들은 군대처럼 푸른 제복을 입고 푸른 모자를 썼다.
“ 우리는 한 줄기 단군의 피다
죽어도 또 죽어도 겨레요 나라...”
푸른 단기를 앞세우고 단가를 힘차게 부르며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이, 미군들보다 훨씬 더 늠름하게 보였다. 서울 한강 백사장에서 군대처럼 힘든 훈련을 받고 왔다고 했다. 이들은 민주주의 나라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 우익 청년들이었다.
“성님, 성님은 지주도 아니고 친일파도 아니었는디, 왜 해필이면 민족청년단을 합니까? ”
“자넨 한나만 알고 둘은 몰라서 그리여. 로스키들이 이북에 들어 와 공장 기계들 다 뜯어가고, 여자들 되는대로 겁탈한 걸 알고나 있는가? ”
“지주들, 왜놈들한테 붙어서 우리 같이 가난한 백성들, 피를 뽈아 지름기가 번질번질 했던 거 성님은 다 잊어뿌렀소? 그런 작자들 이 해방이 된께 독립운동가나 된 것맹키로 날뛰고 있잖소?”
“허허, 자네 속지마. 토지 다 뺏어다가 농민들한테 똑같이 나눠준다고? 어림도 없네. 사유재산 인정 안히어. 공산당들이 다 차지해뿌러. 서북청년단 말 들어봐. 아니 우리 아부님들도 김일성을 어르신 독립운동가로 생각하는디,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 김일성으로 둔갑해 갖고 왔다지 안혀?”
어쩌다가 고모부가 오면 아버지와 둘이서 밤을 새우며 이런 말 씨름을 했다.
이런 싸움판은 중학교까지 번졌다. 해방이 되자 국민학교에 부설된 고등과와 2년제 농림학교가 합쳐져서 6년제 중학교로 새 모습을 갖추었는데, 중학생들까지도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싸움이 벌어졌다. 우익은 ‘전국학련’, 좌익은 ‘학병동맹’이란 단체를 만들어 그 회원수를 늘리는 일에 눈에 핏발이 서있었다.
학교 안에서의 말다툼이 불티가 되어 밖으로 튕겨 나오면, 마침내 어른들의 패싸움으로 큰불로 번졌다. 주먹 싸움이 돌멩이 싸움으로 커지고, 작대기 싸움이 대창 싸움으로까지 변해서, 이 작은 고을이 발칵 뒤집혔다.
“ 느그들, 내말 들어봐! 우리 조선을 해방시켜 준 건 쏘련군이란 말여. 양키 미국놈들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라고 한단 말이여.”
“................”
5학년에 진급하자 영식이는 급장이 되었다. 지금까지는 담임 선생이 임명을 해왔는데, 이제는 선거를 해서 몰표를 받아 당선이 되었다. 쉬는 시간만 되면 교단으로 올라가 큰 소리로 떠들어대었다. 입에 거품을 물며 외치는 소리에, 다른 아이들은 기가 죽어 아무도 말대꾸를 하지 못했다. 왜정 때부터 새 소식도 빠르고 아는 것도 많은 데다가 주먹도 커서 학교 전체에서 대장 노릇을 해왔는데, 이미 소년 티를 벗어난 그는 그야말로 왕관 없는 제왕과도 같았다. 중학생들과 한데 어울려 시위에 참가하기도 하고, 시위대끼리 맞붙으면 싸움판에 끼어 한 몫을 한 게 오히려 그의 격에 맞았다.
좌익 중학생들이 자주 국민학교에 드나들면서 영식이를 만났다. 그 때마다 종이 쪽지를 건네 받으며 귓속말로 뭔지 속닥거렸다. 게다가 어떤 선생님은 영식이의 등을 토닥거리면서 추켜세우고, 뭔가 은근히 부추기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매국노들이 우리 조선을 미국에 폴아묵을라구 한단 말여. 한민 당, 독립촉성회, 서북청년단, 민족청년단 죄다 매국노여!”
순간 재호의 몸에서 소름이 쫙 끼쳤다. 아이들이 일제히 재호를 쳐다보았다. 아버지의 말 대로라면 민족청년단이야말로 새 나라를 세우려는 애국 청년들이라는데, 일본에게 나라를 팔아 넘긴 이완용 같은 매국노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재호는 영식이를 상대로 아니라고 할만한 지식도 능력도 없었고, 용기가 아예 나지 않았다.
“검정 개 노랑 개 편든 놈들 다 매국노여. 우익이라는 것들 죄다 백수건달이여. 느그들 그 앞잽이 노릇 하지 마!”
영식이는 얼굴이 달아오른 채 흥분을 하며 교탁을 쳤다. 그들은 검정 제복을 입은 경찰들을 검정개라 부르고, 국방경비대는 황갈색 제복을 입었다 해서 노랑개라고 불렀다. 재호는 아버지에게
“아부지, 민족청년단은 매국노라 하든디요.”
“어떤 눔의 새끼가 그딴 소릴 해? 고 놈이 매국노지.”
“영식이가요.”
“글씨, 고 눔은 빨갱이라니께. 빨갱이가 매국노지.”
아버지는 영식이 형님들이 모두 좌익 공산주의자라고 했다. 좌익들은 쏘련을 조국이라 하면서 스탈린 수상의 초상화를 내걸고, 그들의 붉은기를 휘두르고 다닌다며 빨갱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빨갱이들 말 귀담아 듣지 말고, 조용히 공부나 하라고 당부했다.
“구선생 동무!”
“박선생 동무!”
아버지의 말 마따나 선생님들끼리 선생님이라 하지 않고 동무라고 부르는 것이 참 이상했다. 그들은 하루에 몇 번이고 마주칠 때마다, 힘차게 악수를 하며 유난히 반가워했다. 선생님들끼리도 이와 같이 좌우익으로 나뉘어졌으며, 아이들도 덩달아 나뉘어 곧잘 입씨름을 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들도 좌익에게 꼼짝 못했다. 영식이는 좌익인 담임 구선생의 신임을 받으면서, 급우들뿐만 아니라 상급생들을 자기들 패로 끌어 모으기에 있는 힘을 다했다. 중학생들로부터 종이 쪽지를 받는 날이면, 어김없이 교단에 올라가 구호를 외쳤다. 한 사람 두 사람 좌익 패거리가 많아지면서, 영식이의 구호는 힘을 얻고 한층 소리가 커졌다.
“단독 정부 절대 반대!”
“단독 정부 결사 반대!”
한동안 신탁 통치를 찬성한다고 부르짖더니 구호가 바뀌었다. 아이들은 앵무새처럼 구호를 따라 외치며 박수를 쳤다. 그들은 쉬는 시간이면 칠판에다가 빨간 색분필로 ‘단독 정부 결사 반대’라고 커다랗게 써 놓기도 했다. 아버지가 일본 지원병이었던 정윤석을 친일파 매국노 아들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아버지가 민족청년단 간부인 재호와, 할아버지가 독립촉성국민회에 나가는 원준이는 검둥개 노랑개 앞잡이라고, 한 구석에 몰려서 어깨를 펴지 못하였다.
담임인 구선생도 교단에 서서 미국(美國)은 미구(米國)으로 써야 맞다면서, 미국 때문에 삼팔선이 생겼다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땅덩이가 훨씬 더 넓은 이북을 놔둔 채, 이남만 정부를 세우겠다는 이 승만은 미국의 꼭두각시요 사냥개라고 비아냥거렸다. 이웃한 여자 학급 박선생은 연구 수업을 하는데, 미군을 당장 몰아내고 우리 인민들끼리 통일 정부를 만들고 인민공화국을 세워야 한다고 가르쳐서, 경찰서의 조사를 받는 둥 말썽도 빚었다.
‘단독 정부 결사 반대!’
‘친일파 민족반역자 물러가라!’
‘매국노 양키 앞잡이 물러가라!’
갖가지 벽보가 교실 복도에 더덕더덕 나붙고, 변소 벽 담벼락은 빈 곳 없이 낙서로 메워졌다. 때를 따라 바뀌는 구호에 머리가 핑핑 돌 지경으로, 재호는 그 많은 구호들이 무슨 뜻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마라. 중국은 죽어 가고 일본은 일어난다. 조선아 조심해라!’
누가 지어낸 말인지 이런 말이 나돌고, 과연 누가 친구며 누가 원수인지 사람들은 갈팡질팡 이었다.
“후레자석 같은 놈들 같으니라고. 아부지보고 동무, 한아부니한테도 동무, 촌수도 모른 놈들이 사람 새끼여! 쏘련 보고 조국이라 한 놈들이 매국노고, 신탁 통치 받자는 놈들이 매국노지.......”
아버지는 흥분하면서 좌익들을 마구 욕했다.
“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 놈들이 멀 안다고 지랄덜이여? 쇠똥구리 같이 똥이나 궁글림서 사는 주제에 무신, 청년 운동이여?”
“ 사람 괄세 마시오 잉. 사람 팔자 모르는 거여. 당신들은 똥 안 묵고 사요? ”
“ 요눔의 조동아리는 살아서 나불거리구마....”
“ 워메, 사람 죽겄네......”
민족청년단은 좌익 청년들을 데려다가, 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엎드러뻗쳐를 시키며, 뭇매질을 하였다.
“ 가난한 백성들 등치고 간 내묵어 배때기가 불르니께, 다 배부른 줄 아냐?”
“ 아이고메...”
“ 얼굴에 개지름 질질 흘르니께 뵈는 거 없어? 니놈들이 독립을 해? 아니 개 똥닙을 해라....”
그런가 하면 또 우익 청년 학생들도 좌익 청년동맹 학병동맹에게 끌려가서 모욕을 당하고 호되게 난장질을 당했다.
1) 신탁통치(信託統治)...독립할 능력이 생길 때까지 국제연합의 위임을 받아 연합국이 통치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