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새가 깐 알
늦가을 오후.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 밝은 햇살이 방 안 깊숙이 비추고 있었다. 재호는 공부가 몹시 따분하고 지루해서, 벌떡 일어나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비둘기들이 마당에 날아와 먹이를 찾고 있었다. 가까운 학교에서 날아온 듯 했다. 방안을 기웃거리는 놈이 있어서, 심심했던 재호는 툇마루에다 보리쌀을 조금 뿌려 놓았다. 비둘기 한 쌍이 두리번거리더니 맛있게 주워먹고는, 더 없느냐는 표정이었다. 재호는 방문을 약간 열어놓은 채, 방바닥에다가 또 수북히 뿌려 놓았다. 한참 망설이던 그들이 드디어 방안으로 조심조심 들어왔다. 문 뒤에서 망을 보고 있던 재호는 재빨리 문을 닫아버렸다. 깜짝 놀란 비둘기들은 속은 걸 알아차리고 후드득거렸으나, 이내 재호에게 잡히고 말았다.
재호는 비어있는 새장 안에 비둘기를 넣고 먹이를 주었다. 어이없이 갇히게 된 비둘기들은 먹이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밖으로 나갈 궁리만 하였다. 사흘이 가고 나흘이 가자 체념을 한 그들은, 먹이를 먹기 시작하고, 이젠 뛰쳐나갈 생각을 단념한 것 같았다. 몸집이 좀 큰놈은 회백색이고, 작은놈은 짙은 회색에 목덜미가 보라 초록 회색 물감을 섞어놓은 듯한 아름다운 색깔을 하고 있었다.
한 달이 되었을 때야 비둘기들은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졌다. 새장 문을 열어도 피하려 하지 않고, 먹이도 잘 받아먹었다. 포근하게 짚을 깐 상자를 넣어주었더니, 비둘기도 좋아서 보금자리로 잘 다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구별을 할 수 없었으나, 큰놈은 수놈이고 작은놈은 암놈이 확실한 것 같았다. 재호는, 수놈은 흰 색이니까 ‘흰돌’, 암놈은 회색이니까 ‘재순’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어느 날, 재호는 새장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잠깐 망설이던 흰돌이가 성큼 문 밖으로 나왔다. 재호는 얼른 문을 닫아버렸다. 재순이가 남아있으면 흰돌이가 멀리 날아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바깥 세상에 나온 흰돌이는, 건너 집 지붕 위에 앉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더니, 어디론지 후드득 날아 가버렸다. 오랫동안 갇혀있어서 잘 못 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러나 재순이는 둥우리에 앉아서 부리로 지푸라기를 만지고 있었다. 한참 있으려니까 흰돌이가 마른 나뭇잎을 물고 와서 새장 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재호는 다시 문을 열어주었다. 그 후로 흰돌이는 부지런히 나뭇잎, 풀줄기, 지푸라기들을 물어다 날랐으며, 재순이와 함께 번갈아 가며 둥우리 안에서 알 품는 시늉을 했다.
‘ 알을 낳을랑갑다. ’
재호는 마음이 설레었다. 훈이네 십자매가 알을 낳고 까고 했던 일이 바로 엊그제 일 같았다. 이 때부터 비둘기 우는 소리가 요란했다.
“ 구구구구...”
이것은 관찮은 편이다.
“ 국구르르 국구르르....”
한밤중에는, 갖난애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유령의 웃음소리 같기도 한 흉내낼 수 없는 소리를 내어서, 어머니는 짜증을 내며 쫓아내버리자는 말도 했다.
초겨울. 드디어 비둘기는 알 한 쌍을 낳았다.
“ 축하 해! ”
비둘기들은 번갈아 알을 품으며 행복해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3주일이 지났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어 궁금해하는데, 갑자기 둥우리를 박차고 나오더니, 그 옆자리에다 새 보금자리를 만들기 시작한 게 아닌가? 알을 꺼내어 보니까, 한 개는 약간 금이 갔으며, 다
른 것도 겉은 멀쩡했으나 속이 비어있는 듯 가벼웠다. 어머니는 무정란인가 보다고 하였다. 무정란 달걀은 알지만, 비둘기들도 무정란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한 둥우리에 살면서도 결혼을 안 한 채알만 낳았다는 말인가? 믿어지지 않은 일이었다.
금슬이 다정한 부부를 비둘기 부부라 하듯이, 흰돌이와 재순이는 참으로 사랑스런 부부 같았다. 재순이가 먹이를 구하러 나가면 흰돌이가 대신 알을 품고, 재순이가 알을 품고 있으면 흰돌이는 집 주위를 지키고 있었다. 흰돌이가 보이지 않아 새장 가까이 접근하면, 어디선지 느닷없이 나타나서 경계를 하였다.
새 보금자리를 짓기 시작한지 두어 달 쯤 되었을까, 재순이의 가슴팍 사이로 까만 새끼 깃털이 보이는 게 아닌가? 몸을 들추었더니 재순이가 화를 내며 부리로 마구 쪼았다. 두 마리였다. 두 녀석 다 엄마를 닮아 짙은 회색이었다. 깃털이 앙상하고 몸집에 비해서 부리가 유난히 컸다. 눈은 떴는데 무엇을 알아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병아리처럼 귀여울 줄 알았는데, 고무풍선 같이 터질 것만 같은 불그스름한 배가 징그러워, 만지고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 재순이 아즈무니, 수고했네요 잉? 미역국 끓여 드릴까요? ”
엄마가 된 재순이는 쌍둥이를 품에 안고 참으로 행복한 표정이었고, 아빠가 된 흰돌이도 더욱 바빠졌다. 쌍둥이 이름을 새로 지으려는데 좋은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색깔이 같으니 색깔로 지을 수도 없고, 크기로 하자니 그도 그렇고......이름 짓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 옳지!”
재호는 무릎을 탁 치면서 소리를 질렀다.
“ 쌍둥인께 춘자 추자라고 하자. 추자가 머슴애 같은게 수놈을 추자라고 하자!”
재호는 혼자 웃었다. 이 일을 춘자 추자가 알 리가 없다. 추자가 재호더러 ‘가시내’라고 골렸으니까 보기좋게 앙갚음을 한 셈이다.
춘자 추자는 하루가 다르게 잘 자랐다. 재호를 보면 날개를 바들바들 어리광을 하면서 먹이를 달라고 졸랐다.
그런데, 걸음마를 아장아장 배울 무렵, 아빠새의 울음소리가 여늬
때와는 달랐다. 엄마의 모습도 눈에 띄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으슥한 장독 옆에 뜻밖에 엄마가 죽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늘을 향해 배를 내놓고 죽어있는 게 참 불쌍했다. 어머니는 쥐약을 놓을 때라 쥐약을 먹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며칠 동안 울기만 하던 흰돌이 아빠가, 슬픔을 딛고 일어나 새끼들을 보살피었다. 전과 다름없이 먹이를 씹어 삼켰다가, 잘 삭이어서 새끼들 입안에다 넣어주곤 하였다. 두 녀석들이 아빠의 주둥이를 물어뜯듯 귀찮게 굴면, 슬그머니 돌아설 뿐 짜증내거나 야단치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의 죽음을 알리지도 안 한 것 같았다.
엄마를 장사한지 닷새쯤 된 어느 날, 낯선 비둘기 한 마리가 나타났다. 새하얀 몸에 검정 점이 드문드문 있고, 특히 한 쪽 눈두덩 위에 검정 얼룩이 있어서 매섭게 보였다. 아빠가 가슴팍 깃털을 세우며 뭐라고 부르니까, 가까이 다가 왔다. 온 집안을 갸웃 갸웃 살펴보다가는 아빠가 바짝 접근하면 훌쩍 날아갔다. 꽤 겁도 많고 수줍어했다. 날아갔나 보다고 아빠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먹이면, 다시 나타나서 아빠를 불러내었다.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 흰 비둘기를 데리고 건너 집 지붕 위로 날아갔다. 4-5미터쯤 떨어져 앉아, 마주 보다가 외면하다가 어색한 줄다리기를 하였다.
그로부터 이틀쯤 지나니까, 흰 비둘기는 아예 가지 않고 아빠를 줄줄 따라다녔다. 해가 지고 껌껌해졌는데도 아빠의 반대편에 앉아 잠을 잤다. 날이 갈수록 점점 잠자리가 가까워지더니 닷새쯤 되니까 이제는 몸을 바싹대고 잠을 잤다. 아빠가 데리고 온 것인지 스스로 온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재호는 궁금해서 어머니께 물어보았다.
“ 저 삐둘기 먼 삐둘기라요?”
“ 금매말이다. 남편 여읜 홀어미거나, 약혼자 잃은 큰애기 것재.”
어머니의 이 말을 받은 아버지는
“ 이혼한 과부거나 실연당한 처녀겠재.”
재호는 그 말들이 그렇게 우스울 수 없었다.
‘ 삐둘기는 짝을 잃으믄, 혼자 못 산다 하던디......’
재호는 흰돌이가 죽으면 어쩌나 은근히 불안해졌다.
“ 국구르르 국구르르.....”
그러나 아빠가 부르면 곧 흰 비둘기가 다가 와, 아빠의 머리, 눈언저리, 목덜미를 가볍게 깨물고, 아빠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기분 좋은 표정을 했다. 이윽고 인사하듯 부리를 맞대고 고개를 쳐들었다 숙였다 하면서, 새끼들에게 먹이를 먹이는 시늉을 했다. 이윽고, 흰 비둘기 등위로 아빠가 껑충 뛰어 오르더니, 꽁지와 꽁지를 맞대었다. 재호는 순간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외면을 했다. 백년소에서 영식이가 말했던 닭들의 뼉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두 비둘기는 아침 저녁으로 조용할 때면 이렇게 자주 사랑하며 짝짓기를 했다.
“ 저 삐둘기 새 장개 들었구만.”
“ 그믄 저 흰 삐둘기는 후처게? 별꼴 다 봤네.....”
그러나, 춘자 추자 쌍둥이는 이 새 엄마를 흘끔흘끔 쳐다보며, 싫어하고 무서워했다. 새장 밖에 나와서 아빠를 기다리다가도 새엄마가 나타나면, 둥우리로 쪼르르 숨어버렸다. 한편 새엄마도 이 쌍둥이 춘자 추자를 미워해서, 옆에 오기만 하면 쪼아대고 쫓아버렸다. 아빠가 먹이를 먹여주면 옆에서 눈을 흘기다가, 아빠가 한눈을 팔면 재빨리 쫓아버렸다. 물론 쌍둥이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피했다.
재호는 새엄마가 얄밉고 건방져서 야단을 치면, 새엄마는 안 그런 척 시치미를 떼고, 제 둥우리로 들어가 버렸다. 아빠는 새엄마 눈치를 보랴 새끼들 보살피랴, 참으로 난처한 것 같았다.
‘ 저러다가 새끼들 죽겄는디......’
재호는 여간 걱정된 게 아니었다. 이 무렵, 새엄마도 알을 낳았다. 아빠는 새엄마 사이에서 낳은 알도 잘 품어주고, 쌍둥이들도 변함 없이 잘 키웠다. 참으로 훌륭한 아빠였다. 그러나 새엄마는 아빠에게는 참 상냥하고 애교도 좋은데, 쌍둥이들에게는 더욱 앙칼지고 심술사나워졌다. 쌍둥이들이 날 수 있게 되고 새엄마도 알을 까자, 마침내 아빠의 태도도 전혀 달라졌다. 춘자 추자를 집 근처에 얼씬도 못하도록 내쫓고, 새 새끼들만을 정성껏 보살폈다. 쫓겨난 춘자 추자는 이제 어디론지 떠나버리고 말았다.
“ 삐둘기들도 사람하고 똑같습디다 잉. 상처하고 새 장개들더니, 전실 자식 내쫓고......”
“ 긍께 수놈들이 못 됐구만......”
“ 그래도 전실 자식 키우느라고 욕봅디다. 새 각시 눈치볼라 전실 자식 키울라......”
“ 긍께, 사람이나 짐승이나 상처하믄 망신살 뻗치는 거여....”
어머니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 비둘기 이야기를 두고두고 했다. 이야기꾼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있었던 사실 이야기였기 때문에 더 흥미를 끌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인간 세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 비둘기 이야기에 많은 감동들을 하였다.
재호는 춘자 추자에게 참으로 미안했다. 장난 삼아 지은 이름인데,
어쩌면 그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엮어놓은 것 같을까? 춘자 추자쌍둥이들은 일찍 어머니를 여의였다. 폐병이라고 했다. 곧 의붓어머니가 들어오고 동생들을 낳았는데, 쌍둥이들을 미워한다고 했으며, 그 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끔 다툰다고 했다. 그들은 ‘콩쥐 팥쥐’‘백설공주’‘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를 아주 좋아했는데, 재호는 쌍동이 비둘기를 키우면서 이제 그들의 마음을 알고도 남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