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새가 깐 알
정부가 세워지면서 ‘반민특위’라는 것이 생겼다. 왜놈들 앞잡이가 되어 우리 민족을 박해했던 악질 친일파들을 처벌하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것이다. 재호 아버지는 건국 운동하던 동지들의 추천으로 이곳에 취직되어 자리를 잡고, 친일파들의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반년도 못 가서 이 반민특위는 해산되고 말았다. 행정의 공백을 막고, 온 국민의 화합을 이루겠다는 이승만 대통령이, 그들을 벌하는 일을 못 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광주에 와있던 아버지는 하는 일이 없어져 집으로 되돌아가고, 재호만이 홀로 남게 되었다. 그 때부터 아버지는 수입을 잃고,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를 비판하며 반대하기 시작했다.
광주. 시골뜨기인 재호의 눈에는 광주가 참 번화한 도시였다. 비록 재수는 했지만 이 곳에서 중학교에 다닌다는 것이 참으로 자랑스러웠으며, 사투리 대신 표준말을 쓰고 보니 어른스러워졌다. 그러나 재호의 모표는 다른 아이들처럼 그토록 빛나 보이지 않았고, 뻿지도 커 보이지 않았다. 책가방을 든 어깨가 축 늘어져 있는 것은 무거워서라기 보다는, 어린 나이에 자취하랴 고학하랴 너무 힘에 겨웠기 때문이다. ‘이북통신’이라는 잡지를 팔러 다녔는데, 잘 팔리지 않았으며, 손수 밥을 지어먹고 다닌다는 일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생물실에 진열되어 있는 그 많은 표본들과 박제들을 보고, 생물부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이름을 잘못 알고 있는 새, 처음 보는 새.....갖가지 조류들의 박제들은 어렸을 적부터 새를 좋아했던 재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값비싼 해부 세트를 장만하라는 바람에 슬그머니 나오고 말았다. 다음으로 문을 두드린 곳은 미술부였다. 갖가지 석고상 앞에서, 이젤 위에 커다란 화판을 걸어놓고 데쎙을 하고 있는 모습들이 얼마나 멋있는지. 그러나 이 곳 역시 비싼 화구들을 사야 한다는 말에 기가 죽어 도망치다시피 빠져 나오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돈이 들지 않는 곳은 문예부밖에 없는 것 같았다. 원고용지만 있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일기 쓰기부터 시작되었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참 귀찮았는데, 일기를 친구 삼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여간 재미나는 것이 아니었다. 동화책 티를 벗고 소설책들을 돌려읽는 것은, 재미도 있었을 뿐 아니라 어른스러워진 느낌이 들었고, 시를 써서 서로 읽고 감상하는 일도 썩 재미있었다.
이 때 가까이 사귀었던 친구는 병문이었는데, ‘청풍(靑風)’이라는 필명까지 가진 그는 재호네 자취방에 자주 드나들었다. 메밀 죽으로 끼니를 이을 때, 메밀 죽 한 그릇도 제대로 대접한 일도 없는데 왜 재호를 좋아했는지 알 수 없었다. 찢어지고 터진 운동화를 빈 틈 없이 얼기설기 홀쳐맨 것으로 보아, 그도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아는 것이 많고 말도 잘 했다. 특히 독서를 많이 한 탓인지, 웬만한 소설책 이야기는 모르는 게 없어 보였다.
“ 재호 너 카프 문학 알지?”
“............”
“ 카프 모르냐? ”
“ 모르는데....”
그는 여간 실망해 하지 않은 표정이었고, 재호는 또한 부끄러운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KAPF는 ‘조선프로예술가동맹’이라 했으며, 프로는 프로레타리아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진 것 없이 노동력을 팔아서 사는 무산근로 대중이라고 했다. 이런 무산근로 대중들의 생활을 밑바탕으로 해서, 현실을 그려낸 문학을 프로 문학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까 그가 빌려준 소설들은 해방 후 이북으로 넘어간 작가들의 작품이 많았으며, 자기는 그런 문학, 그런 작품이 좋다고 했다.
어느 날 그는 그가 쓴 시 한편을 가져왔다. ‘벽돌’이란 제목의 이 시는 벽돌은 구울수록 더 단단해진다는 내용이었으며, 벽돌집에 갇혀있는 사람들은 더욱 단단해진다는 말을 곁들었다. 바꾸어 말하면 벽돌집은 형무소요, 갇혀있는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를 비유하는 것임을 은근히 내비치었다. 그 후에 안 사실이지만 좌익들의 우상이었던 남조선로동당을 조직한 박헌영은, 왜정 말엽에 광주 벽돌 공장 노동자로 숨어서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하필이면 ‘이북통신’ 잡지를 파느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재호는 거미줄에 걸린 곤충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며, 가볍게 몸이 떨림을 느꼈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국민학교 시절 영식이의 얼굴이 눈앞에 커다랗게 나타났다.
‘제2의 영식이’
재호는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깊게 사귄 친구가 하필이면 제2의 영식이일까? 그렇다면 영식이와의 관계를 끊었던 것 같이, 병문이 하고의 친분도 또 끊어야 하는가? 그럴수록 병문이는 더 가까이 접근했고, 그의 친절이 오히려 진드기 같이 귀찮고 징그러운 느낌까지 들었다. 국민학교 시절, 그 사상 싸움의 악몽에서 벗어 나와, 모처럼 열심히 공부나 하겠다는 재호에게, 이 무슨 올가미의 그림자가 또 따라붙는가? 학교를 다니느냐 못 다니느냐는 문제도 무거워 이렇게 비틀거리는데, 진절머리가 났던 사상 문제가 또 무거운 짐으로 등에 지워지는 것 같은 중압감에, 어깨가 뻐근해옴을 느꼈다.
2학년에 진급한 해 6월 25일. 새벽.
잠결에 곡성을 듣고 눈을 떴다. 안방에서 새어나온 아이들의 울음 소리로 보아 엄마가 죽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벽 하나 사이로 시체가 누워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무서움증이 생겨 곧장 뛰어나왔다. 그 동안 시름시름 앓아왔던 아주머니가 마침내 죽은 것이다. 이웃에 사는 경수형네 문을 두드렸다. 경수형은 중학 5년생인데, 그 아버지는 재호 아버지와 함께 반민특위에서 함께 일하였던 분이었다.
장례를 치를 동안 신세를 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 날은 일요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았는데, 삼삼오오 골목에 나와있는 동네 사람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초상이 났으니까 그러려니 했으나, 경수형의 말을 들으니까 삼팔선에서 전쟁이 터졌다며 싱글벙글이었다. 그 동안 개성, 옹진 등 삼팔선 근처에서 작은 충돌 사고는 가끔 있어 왔지만, 이번에는 탱크로 밀고 내려온 큰 전쟁이라는 것이다. 전쟁이 터졌다는데 그는 왜 싱글벙글일까?
이튿날 학교에 갔을 때는 주먹만한 제목으로 전쟁 기사가 실린 신문지가 나돌았다. 많은 아이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찬 것과는 달리, 병문이가 들떠있는 모습이 참 야속했다. 경수형과 병문이...... 공교롭게도 재호의 주위 가까이 있는 사람들 모두가 영식이와 같은 좌익이라는 생각에 은근히 두려움을 느꼈다. 재호는 마치 적에게 포위 당한 듯한 느낌이 들어, 공부가 되지 않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 달 동안 학교 공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모두들 불안한 마음으로 시국 이야기만을 했다. 국군이 반격을 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정부 발표가 있었으나, 학도호국단 주최로 연일 궐기대회와 시위를 벌였다.
“ 우리에게 무기를 달라!”
“ 펜 대신 총을 잡겠다!”
실제로 상급생 형들은 손가락을 깨물어서 혈서를 쓰고, ‘대한학도의용대’로 자원해서 일선으로 실려 나갔다.
“ 땡땡땡땡......”
비상종이 울리자 학생들은 가방을 들고 운동장으로 모였다. 교장 선생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조기 방학을 할 테니, 빨리 고향으로 내려가라는 것이었다. 기차가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어, 재호
는 쌀과 책을 가방에 가득 싸서, 그 길로 광주역으로 나갔다. 벌써 역전 광장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말씨들이 전라도 사투리가 아닌 걸로 보아, 서울을 비롯해서 북쪽지방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틀림없었다.
“ 기차는 절대 안 끊어집니다.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내일 나오십시오!”
역장은 메가폰을 들고 소리쳤으나 누구 하나 꼼짝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재호는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서 차표를 사는 일은, 하늘에 별을 따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는데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달구지의 행렬이 밤새 끊이지 않고, 길들은 사람들로 메워졌다.
동이 트기가 무섭게 재호는 다시 역으로 나가서, 젖 먹은 힘을 다 하여 기차를 탔다. 차표고 줄이고 무어고 질서는 산산조각이 나고, 기차는 한 걸음도 발을 떼지 못한 채, 시커먼 연기만 한숨처럼 푹푹 내쉬고 있었다.
“ 위험하니까 내려오십시오! 안 내려오면 출발을 못합니다! 내려 오십시오! 다음 차로 가십시오!”
창문을 깨뜨리고 들어간 사람들은 콩나물 시루 속이나마 틀어박혀 있기나 했지만, 기차 지붕 위에 올라 탄 사람들과 승강구에 새끼줄을 메달고 서 있는 사람들은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었다.
“ 이 차가 안 가고 저 차가 간다네.”
누가 퍼뜨린 말인지, 삽시간에 사람들은 건너편 기차로 몰려들어 그야말로 아비귀환이었다. 재호는 맥이 다 빠져 죽으면 죽어도 다시 건너편 차를 옮겨 타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될 대로 되라는 듯이 눈을 딱 감고 있었다. 남아있는 사람들 모두가 지칠 대로 지쳐서 재호와 마찬가지 생각 같았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갈비뼈가 제대로 펴지면서 간신히 숨을 쉴 수가 있었다.
“ 치익 폭 칙 폭. 덜컹 덜컹...”
마침내 재호의 기차가 발을 떼기 시작했다. 차 안 사람들이 영문을 모르고 어리둥절 하는데, 건너편 차에 옮겨 타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내려오더니, 움직이는 차를 타보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레일 위를 달리며 따라오는 사람, 속은 것이 분해서 욕설을 퍼부으며 돌멩이를 집어던지는 사람.... 온통 유리창은 깨져 있으나 차안은 도가니가 된 채 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비지땀과 검댕이 짓이겨져서, 몇 곳의 터널을 통과하고 나니까 완전히 흑인으로 변해버렸다.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간다는 안심과, 혹시 적기의 공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엇갈리는 모습들이 얼굴에 역력했다. 고갯길을 오르던 기차가 힘에 겨워 다시 뒤로 미끄러질 때마다, 사람들도 끙끙거리며 함께 기합을 했다.
1)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우리 민족을 박해하던 친일파를 조사함
2) 카프(KAPF=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1925-1935)...조선프로예술가동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