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새가 깐 알
가까스로 사회가 안정되어 가고, 재호 가슴의 상처도 겨우 아물어갈 무렵 이렇게 6.25 전쟁이 터졌다. 인민군은 불과 한 달만에 남한을 거의 붉게 물들였다. 인민군의 군화 소리가 바짝 가까이 들려 오는 7월 중순, 재호네는 미싯가루 자루와 소금 주머니로 단봇짐을꾸렸다. 어머니는 친정으로 가고 재호와 아버지는 부산으로 가기로 하였다.
“ 재호는 우리 집안 대를 이을 사람이니께....”
한 달 정도만 잘 피신해 있으면 수복되리라 하면서 헤어졌다. 재호와 아버지는 긴 간짓대에 보따리를 메달아 어깨에 메고 길을 떠났다. 자동차도 없어, 걸어서 수문리라는 작은 포구로 향하였다. 내리쬐는 뙤약볕보다는 신작로가 내뿜는 열기가 훅훅 만물을 찌는 듯 했다. 잠깐 앉아서 땀을 식힐만한 가로수 한 그루 변변치 않아, 온 몸에 땀 줄기가 벌레처럼 기어 내려왔다.
갯비린내를 싣고 온 후덥지근한 바람이 이따금 얼굴을 스친 걸로 보아서 바다가 가까워 온 듯 했다. 쫓기는 신세이면서도 재호는 어린 시절의 마량리를 떠올리며 가슴이 설레었다. 수문리에도 갈매기가 날고 황새가 춤을 출 것이기 때문이다.
“ 으딜 가시오? 수문포 가도 배 한 척 없어라우.”
“ ..............”
“ 경찰 놈들 타고 다 도망 가부렀어라우. 헛 걸음 하지 말고 되돌아 가시오. 망할 놈들, 가다가 배나 뒤집혀부러라 이 잡것들아.”
도끼눈을 한 그 아저씨는 눈언저리에 경련을 일으키며 흥분을 하였다. 자기도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가려던 참인데, 이미 배들을 모조리 징발하여 경찰 가족들만 태우고 떠났다는 것이다. 헛걸음하지 말고 되돌아가라고 손짓을 했다.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그 아저씨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 하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계속 퍼부었다.
“ 치량으로 가자.”
되돌아오는 발걸음은 천근 만근 무거웠다. 낮이 긴 한여름이지만 어느새 해가 떨어져서 사방이 껌껌해졌다. 하늘에 뭇 별들은 바늘 하나 꽂히지 않을 만큼 총총 빛나고, 이따금 별똥별이 꼬리를 끌고 내려오다 이내 사라지곤 했다.
“ 공산군을 다 물리쳐 주십시오! 공산군을 다 물리쳐 주시.....”
유성이 사라지기 전에 자기의 소원을 세 번만 빌면 이루어진다고 했지 않는가? 재호는 재빨리 외웠으나 늘 헛수고이었다.
“ 공산군 다 죽여! 공산군 죽....”
짧게 줄여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양재기에다 냇물을 떠서 미싯가루를 타먹으며 허기를 달래었다. 시장했던 참이라 그 고소한 맛이 별미였다. 논둑 길, 밭둑 길, 고갯길...지름길을 더듬었으나 땅이 고르지 않아 몇 번이나 넘어지고 미끄러졌다. 멀리 헤드라이트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후퇴하는 국군이나 경찰들의 행렬일 것이었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뚜렷했다. 가까이 있으면 침이라도 뱉고싶을 만큼 원망스러웠다.
“ 재호야.”
“ 예.”
“ 공비 습격 받고, 집이 탈 때도 살아났지야?”
“ 예 ”
“ 아프리카에 비서새란 새가 있다더라. 평소엔 잘 나는 새인디, 적이 나타나믄 날지 못하고 설설 기기만 한다는 구나. 그러니 잡혀죽지 않겄냐?”
“ 도망도 못 가고요?”
“ 글씨 말이다. 날지 못하믄 죽지야. 평소에 잘 못 날드라도 적을 만나믄, 죽을힘 다 해 날아야지 않겄냐?”
“..........”
마치 고양이 앞에 쥐 꼴이 아니겠는가? 아버지는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여.순 반란 사건 때를 생각하며 꿋꿋하게 살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였다.
이렇게 껌껌한 밤중에 산길을 걸었던 일이 언제 있었던가? 도깨비와 귀신 이야기를 듣던 날 밤이면 방문도 제대로 열지 못하여, 웃목 요강에다가 소변을 보며 자랐던 재호는, 바람 소리와 나뭇잎 흔들리는 모습에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뭐가 따라 오는 것만 같아서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곤 하였다.
“ 멍 멍 멍”
요란하게 짖어대는 개들이 그토록 미울 수 없었다.
동백촌.
동네 뒤편으로 병풍처럼 동백나무들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하늘을 쳐다보며 농사나 짓고 착하디 착하게 사는 작은 마을이다.
한밤중에 외가에 도착했다. 온 식구들이 어둠 속에서 불안하게 맞이했다. 어머니는 친정으로, 아버지는 처가로, 재호는 외가로 각각 흩어져 피신한다는 것이 결국 한 집이다.
한 달 동안만 몰래 숨어산다는 것이 하룻밤 새에 들통이 나버렸다. 이웃집 살강의 숟가락까지 세며 사는 작은 마을에서 숨어산다는 것은 애당초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이 마을에는 여.순 반란 사건 때 지리산으로 입산한 공비들의 가족과 친척이 사는 마을이 아닌가?
이틀 밤을 묵고는 마을을 떠나야만 했다. 한밤중 어둠을 타고 나왔는데 여전히 개들의 짖음이 신경을 날카롭게 건드렸다. 마을 앞 개울가에 이르렀을 때 앞서 가던 아버지가 갑자기 엎드렸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재호도 낙장거리할 뻔했다. 가슴이 뛰었다.
“ 개똥벌러지다! "
주위를 살피며 숨을 죽이고 있는데 아버지가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일어났다. 건너편 논에서 반딧불이 반짝거린 것이다. 누군가 길목을 지키며 담배를 피운 줄 알았노라고 했다.
아버지는 숨을 길게 내쉬고는 바지 가랑이를 걷어올리며 개울을 건넜다. 재호는 이끼 낀 징검다리에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했다.
건너 마을은 수동리. 재호의 최씨네 친척이 모여 사는 곳이다. 개들이 짖어대기는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의 당숙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튿날, 건너다 보이는 동백촌에서 마을 사람들이 정각으로 모여드는 모습이 보였다.
“ 동백촌에 공산군이 들어왔능갑네.”
아버지와 재호는 다급하게 마을 뒤 야산으로 올라가 숨었다. 나무가 없어, 가슴팍에 닿는 풀들이 아니었다면 숨을 곳도 마땅하지 않고, 머리가 까질 정도의 뜨거운 7월의 햇살이 풀들을 헤치고 내리꽂혔다. 산새 한 마리 얼씬하지 않은 쓸쓸한 곳인데, 웬 개미떼만이 귀찮게 기어올랐다. 쓸어내고 쓸어내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커다란 구렁이가 그 작은 개미떼들에게 지고 만다는 까닭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말이라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아버지는 담배 한 개비도 피지 못한 괴로움을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
“ 탕 탕 탕”
건너편 기흥리 뒷산에서 총소리가 메아리치며 들렸다. 집이 불탈 때의 악몽이 되살아난 듯, 재호는 팔에 소름이 돋았다.
‘ 우릴 찾느라고 산을 뒤지는 걸까?’
소리개 한 마리가 떴다. 재호네를 내려다보며 뱅뱅 돌고 있는 것이 여간 불안하지 않았다. 마치 정찰하는 비행기 같이, 여기 사람이 숨어 있으니 공격을 하라고 어디론지 신호를 보내 주는 것 같았다. 몸을 움츠리고 귀를 기울이는데 다행히 다른 징조는 이어지지 않았다.
“ 만리성 왕서방한테 들은 이야긴디, 중국 위나라에 활을 짤 쏘는 명궁이 있었다는구나.”
“..................”
심심함을 견디다 못한 아버지는 마침내 입술을 열었다. 재호는 불안해서 이리 저리 주위를 살피며 귀를 바싹대었다.
“ 왕과 항꾼에 유람을 하고 있을 때, 기러기 한 마리가 날아가더란다. 왕은 명궁에게 저 기러기를 활로 쏘아서 떨어뜨릴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는구나.”
“...............”
“ 그 명궁은 ‘활로 쏘아 맞추지 못해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고 대답했다는구나.”
“ 어떻게요? ”
“ 왕이 감탄함시로 활을 쏘아보라고 했것지야. 그런디 활을 헛 쏘아 기러기를 못 맞추고 그냥 스쳐 지나갔는디....”
“ 그래도 떨어졌다요? ”
“ 아믄, 떨어졌디야.”
“ 와!”
재호는 그 묘기에 신음 같은 탄성을 내었다.
“ 왕이 그 비결을 물었을 게 아니냐? 머라 했겄냐?”
“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그 기러기는 병든 기러기라고 했다. 울음소리가 처량하고, 한 무리에서 낙오된 걸로 보아 병든 것이 분명한데, 기러기는 활 소리만 들어도 놀라, 그 상처가 터져 버린 통에 힘을 잃고 땅 바닥에 그만 떨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 재호 너, 그런 기러기 되믄 안돼!”
“ 예.”
“ 활 소리가 아니라 대포 소리를 들어도 말이다 잉.”
“ 예.”
이윽고 날이 저물고 시장기가 들어 산을 내려가기로 하였다. 달이 없어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이 어두웠다. 산기슭을 막 돌아섰는데 앞서가던 아버지가 또 갑자기 밭 두렁에 엎드렸다. 물론 재호도 따라서 엎드렸지만 또 반딧불에게 속나 보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아버지가 옷을 털며 일어났다.
“ 개똥벌레지요?”
“ 아니, 비석인가부다.”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것은 산소를 지키는 망두석이었다. 비서새 이야기랑 기러기 이야기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또 십년을 감수했다며 당숙 할아버지 댁으로 숨어들었다.
한 달이면 물러 가리라던 아버지의 예측은 빗나가고 인민군들은 이 산골까지 들이닥쳤다. 집안에 숨어 있다는 것은 독 안에 든 쥐였다. 재호는 떼어놓고 아버지만 깊은 산으로 피신했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 숨었다. 며칠 동안 재호는 주먹밥을 날랐다. 갈퀴를 들고 나무하러 온 척하고 동굴 속으로 주먹밥을 던져 넣은 것이다. 주먹밥은 식량일 뿐만 아니라 통신 수단이기도 하였다. ‘아버지 힘내세요’ ‘ 아버지 용기를 잃지 마세요’ 이 짧은 편지는 더 할 나위 없는 위안이 되었다.
“ 재호야, 안 되겄다. 넌 고모네 한아부한테로 가거라.”
“ 아버지는요? ”
“ 난 걱정말고. 넌 꼭 살아야재. 안 죽으믄 만날 날이 있겄지야.”
“ 아버지하고 같이 있을라요.”
“ 안 돼, 같이 죽어. 멀리 도망가야 할틴디, 니가 있으믄 짐 돼. 헤어져야 서로 살아 남어. 어서 가! "
“ 아버지하고 같이 죽을라요.”
“ 쉿.”
“..................”
나무 지게를 짊어진 아저씨 한 사람이 산허리를 내려오고 있었다. 재호는 갈퀴질을 하는 척 하고, 아버지는 재빨리 동굴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아버지는 어서 산을 내려가서 할아버지에게로 가라는 신호를 하면서. 아저씨는 재호를 힐끔 훑어보더니 그냥 내려갔다.
“ 부엉 부엉.”
날이 저물면서 어디선가 부엉이 소리가 들려 왔다. 그 소리는 어둠에다 더욱 짙은 검정 물감을 덧칠했으며, 재호의 얼굴에다가도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그래서 귀신 곡한다는 귀곡(鬼哭)새라 했을 것이다.
“ 부엉 ”
“ 더 어둡기 전에 어서 내려가. 내일 일찍 여그 떠나!”
아버지는 다시 기어 나와 재호의 등을 떠밀었다. 재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차마 발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이제는 반딧불이 보여도 무덤 앞을 지나가도 무섭지 않았다. 오직 사람이 무서울 뿐 호랑이가 나타나도 도깨비와 마주쳐도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두 주먹을 굳게 쥐었다. 어디서 그런 담력이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튿날, 동백촌에서 어머니가 왔다. 아버지를 자수시키려 왔노라고 하였다. 분주소에 불려 가서, 아버지를 찾아내라고 윽박지르는 바람에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잡아 떼였지만, 아무래도 자수하면 용서할 것이라고 하였다.
재호는 아버지의 말대로 할아버지에게로 가겠다고 했다. 어머니도 승낙했다.
“ 하느님,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살려주십시오!”
이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수동리를 떠나 터벅터벅 병영면으로 향했다. 논에는 벼가 파랗게 자라고, 띄엄뛰엄 흰 해오라기가 논바닥을 성큼성큼 걷고 있었다. 시냇물도 매미도 한가롭게 노래를 하였다. 겉으로는 참으로 평화로웠다. 그러나 군동면 분주소 앞을 지나면서 등골이 오싹했다. 붉은기가 장대 높이 나부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재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면서 언덕을 올라갔다.
“ 너 재호 아니냐?”
“...............”
재호는 너무나 놀라서 몸뚱이가 돌비석처럼 굳어버린 것 같았다. 아무도 몰래 가노라는데 이 낯선 산언덕에서 재호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니 참으로 뜻밖이었다.
“ 나 훈이 엄니야.”
“ 예?”
“ 나 몰겄냐? 난 널 알아보겄는디.”
“ 아, 예...”
재호는 몸둘 바를 몰라 했다. 틀림없는 훈이 엄마였다. 아무런 소식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이사를 해버린 훈이 엄마를 두고 별별 말이 많았지 않았던가? 태양카뻬에서 양갈보가 됐다는 둥, 미군하고 눈이 맞아서 어디로 줄행랑쳤다는 둥....재호는 이 외딴 곳에서 훈이 엄마를 만나게 된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훈이 엄마는 남의 속도 모르고 반가운 낯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으나, 어디로 도망가 버렸는지 전혀 알 수 없다고 시치미를 떼었다. 훈이 엄마는 장흥의 소식을 꼬치꼬치 물었으나, 재호는 떠나온 지 오래 되어 역시 모른다고 했다.
“ 만리성 아주므니 잘 계시지야?”
“...........”
“ 만리성 아주므니 애기 잘 크냐?”
“ 형빈이 말이라우?”
“ 이름이 형빈이냐? 그 애기 잘 크냐?”
“ 예. 지금은 뛰어다녀요, 말도 잘 해요.”
훈이 엄마의 눈시울이 갑자기 붉어졌다. 훈이 이야기는 하지 않고 왜 남의 집 아이 이야기만을 할까? 훈이 엄마는 옛 미인 옛 멋쟁이 모습이 아니었다. 농사를 짓는 시골 아주머니와 다름없는 허름한 차림이었다. 훈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몹시 궁금했으나, 재호는 일부러 무관심해 보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길게 하다 보면 재호네 사정이 다 드러날 것 같아, 애써 발을 떼었다.
“ 재호 너 바쁜갚다 잉?”
“ 예, 할아버지 심부름 가야 돼요.”
“ 그래 어서 가바라. ”
재호는 걸음을 재촉했다. 뒤따라올까 봐 몹시 불안했다. 훈이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재호. 그리고 동생처럼 귀여워했던 훈이. 참으로 반가운 오랜만의 만남이었으나, 이렇게 서먹서먹하게 헤어졌다. 고갯마루에 올라서서야 마음놓고 뒤를 돌아보았더니, 훈이 엄마도 그 자리에서 재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손을 흔들었다. 재호의 무뚝뚝한 행동에 실망했을 훈이 엄마를 생각하니 새삼스럽게 미안했다.
문득 형빈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랄수록 미국 아이의 모습이 또렷해졌다. 미군과의 혼혈아임이 분명한 것 같았다. 혹시 훈이 엄마가 형빈이 엄마일까?
재호는 고개를 내려와서 금강천 징검다리를 건너 신작로에 들어섰다. 이제는 제발 아는 사람을 만나지 않아야 한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병영면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 저 쪽에서 또 한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재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지나치려는데
“ 너 재호지야?”
하고 걸음을 멈추며 위 아래로 살펴보는 사람이 있었다. 재호는 또 한번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바로 영식이의 둘째 형님이었다. 여.순 반란 사건 때 빨치산이 되어, 지리산으로 들어갔다고 소문난 바로 그 사람이 아닌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 니 아부지는 어딨어?”
퉁명스러운 말소리가 재호의 귓속에 아프게 들이박혔다. 영식이네 탐진병원에 드나들 때의 그런 다정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 모르겠는데요.”
“ 모르긴 왜 몰라?”
“ 부모님하고 헤어져서 몰라요.”
“ 넌 으디 가?”
“ 할아버지 심부름 가는데요.”
영식이의 형님은 다행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발길이 바쁜 듯이 재호를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내 떠나갔다. 재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젖꼭지 빨던 때의 힘까지 내어 뛰었다. 그러나 되돌아서 붙잡으러 올 것 같은 불안이 짓눌러서 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고모네 집에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도 손자를 만나는 반가움보다는, 재호가 영식이 형님을 만났다는 불안에 몸을 떨었다. 까막까치도 제 고향 까막까치는 반갑다는데, 장흥 사람 만났다는 것은 무거운 짐이 되어 두고두고 어깨를 짓눌렀다.
“ 큰 일 났다. 절대로 바깥에 나가지 말고 숨어 있거라.”
할아버지의 금족령이 내린 후 재호는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