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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장새와 대붕

종이새가 깐 알

by 최연수

“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

그 밑에서 전사하리라...”

망치와 낫을 어긋맞춘 소련기와 조선노동당기, 그리고 인공기가 거리를 뒤덮었다. 청년들은 청년동맹, 여자들은 여성동맹, 방학 동안 고향에 내려와 있는 중학생들은 유학생동맹, 심지어는 국민학생들은 소년단....모든 주민들은 조직 속에 들어가, 거의 날마다 사상 학습을 받고 궐기대회에 동원되었다. 이승만 괴뢰 정부를 현해탄 속에 수장하고, 미제국주의 승냥이 놈들을 까부수기 위해서는 붉은 깃발 아래 굳게 뭉쳐, 김일성 장군에게 충성을 다 해야 한다고 목이 터져라 외쳐대었다.

“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국.....”

항아리 깨진 듯한 쉰 목소리는 거리마다 골목마다 홍수처럼 넘쳤다. 물론 이 노래는 재호의 고모네 지붕까지도 넘실넘실 차 올랐다. 소년단원인 대붕이와 낙붕이도 붉은 전사로서의 결의가 입술에 역력했다. 이들은 재호의 고종사촌 동생들인데, 어려서부터 몸집이 크고 억세어서 오히려 재호의 형 행세를 해왔다.

‘감장새 작다하고 대붕아 웃지마라.

구만리 장천을 너도 날고 저도 난다.

두어라 일반비조이니 네오 내오 다르랴.’

이 시조를 읊으며 대붕이의 기를 꺾으려 했던 지난날을 비웃는 듯, 대붕이는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이, 이제 구만리 창천을 향해 힘차게 날아갈 채비를 한 것 같았다. 한편 재호는 활개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갇혀 살다보니, 몸집은 더욱 오그라들고 여위어서, 작고 거무튀튀한 감장새가 틀림없었다.

대붕(大鵬)은 세상에서 가장 크다는 상상의 새인데, 단숨에 이 만리를 날아간다고 했다. 북해에 살던 물고기의 화신인데, 고모가 큰 새가 하늘을 나는 태몽을 꾸었다 해서 ‘대붕’이라고 이름 지었으며, 너무 기뻐서 또 낳은 아이가 동생 ‘낙붕(樂鵬)’이가 되었노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름에 대해서 대단한 자랑을 간직하고 있었다.

“ 성님은, 멀로보나 노동자 농민 편인디, 눈이 씨었재 왜 지주편을 든단 말이요? 애당초 잘못 됐어라우...”

고모부는 할아버지께 빈정거린 듯한 말투로 밖으로 바삐 나갔다. 할아버지는 덤덤한 표정이었으나 재호의 가슴은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이 얼얼했다. 해방 후 사상 문제로 입씨름을 했던 아버지와 고모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모부는 자위대장, 고모는 여성동맹, 동생들은 소년단...그럼 고모네는 진짜 좌익 공산당이었을까?

재호는 바위 밑에 은신해 있다는 것이, 오히려 호랑이 굴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불안과 공포의 나날이었다. 특히 외래자 보고는 재호의 신경을 날카롭게 건들었다. 반동분자를 찾아내기 위해 타지에서 와있는 사람들은 빠짐없이 보고하라는 것인데, 분명히 외래자인 재호를 과연 보고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김일성 장군에게 충성을 경쟁하는 이 마당에, 대붕이와 낙붕이가 언제까지라도 입을 다물어 줄 것인가? 지금도 재호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하나를 감시하고 있지나 않을까? 여태까지는 잘 덮어왔지만, 이제 붉은 마수가 점점 가까이 다가온 것 같은 초조함에 재호는 몸을 떨었다.

재호의 시선이 담쟁이로 뒤덮인 흙담에 머물렀다. 담 위 기왓장 틈새에는 재호의 중요한 비밀이 숨을 죽이며 숨어 있는 게 아닌가? 거기에는 화투짝 만한 종이에 깨알 만한 글씨로 쓰여진 재호의 반공 시가 숨어있고, 카메라 필름 만한 두루말이에 반공 만화가 숨어있다. 평화스런 비둘기 나라에 붉은 수리 떼들이 쳐들어왔으나, 온갖 새들이 힘을 합쳐 수리 떼들을 몰아내고, 비둘기 나라를 구해내어 다시 평화가 온다는 내용의 만화! 여느 때 같으면 그 그림 솜씨를 동생들에게 뽐냈을 텐데, 이것이 들키는 날이면, 반동분자인 재호는 물론 죄 없는 고모네 식구들까지 인민재판에 붙여질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 아닌가? 더구나 가을이 되어 담쟁이 잎들이 시들어 다 지는 날이면, 어차피 환히 드러날지도 모르고, 지리산에 아지트를 만들어 유격전을 펼쳤던 빨치산들 눈에는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 저걸 태워버릴까? 아니야, 저건 내 혼이 담긴 내 몸이야.’

재호는 자기도 모르게

“ 안돼!”

손사래 하면서 돌아서려는데, 낙붕이가

“ 성, 머여? ”

하며 다가왔다.

“ 아아니, 아무것도 아녀.”

“ 성, 무슨 비밀 있재? ”

“ 아니야, 비밀이 있긴...”

재호의 입 속이 바싹 마르며, 말꼬리가 더듬거리는 것을 스스로 느낄수 있었다. 낙붕이가 눈치채고 고모부나 할아버지께 일러바치는 날에는 끝장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재호야.”

저녁을 막 먹고 났는데 할아버지가 불렀다. 마침내 재호의 비밀이 탄로 난 것이 아닌가?

“ 삥아리 맻 마리 사줄텐게 길러서, 장날 내다가 폴아라. 니 아부지 엄니 다시 만나기는 다 틀렸다.”

“...............”

재호는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

“ 공부할 생각하지도 말고, 너도 다 컸으니께 돈이나 벌어서 니 앞가림이나 해야지야.”

“...........”

그러나, 할아버지의 뜻밖의 말이 너무 야속해서, 재호는 벙어리마냥 빤히 쳐다만 보다가, 눈앞이 컴컴해지자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부모님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 공부를 하지 말라는 것...이것이 재호에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닭장을 등에 짊어지고, 이 고장 저 고을 장터를 돌아다니는 장돌뱅이 신세가 된다는 것은, 외래자 보고나 다름없는 자살행위가 아니겠는가?

‘ 차라리 죽어버리자!’

재호는 입을 악물었다.

‘ 하지만 나 혼자 죽긴 아깝다. 몇 놈들 죽이고 나도 죽자!’

순간 국민학교 때 보았던 활동사진이 떠올랐다.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필름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그러나 권총이 있나, 폭탄이 있나?

그런데 번개처럼 번뜩이는 생각은, 경찰들이 후퇴할 때 몰래 묻어두었다는 수류탄 소문이었다. 재호는 어둠을 타고 건너편 밭 두렁으로 찾아갔다.

“ 옳지! ”

그러나 손에 잡힌 것은 돌멩이였다. 두더지처럼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헤집었으나 역시 캐고 남은 감자나 돌멩이였다.

학교 운동장에서는 여전히 요란한 고함소리와 박수소리가 재호를 더욱 흥분시켰다. 그 한복판에다가 수류탄을 던지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죽어 가는 자기의 모습이 여간 영웅다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끝끝내 헛수고만 한 채 돌아온 재호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장독대 주위에 피어있는 접시꽃과 맨드라미, 우물가에 피어있는 채송화, 그리고 바깥 세상이 보고싶어 담장을 기어오르며 피어있는 나팔꽃과 그 밑에 피어있는 봉숭아......모두들 아침 이슬에 얼굴을 씻어 더욱 고와 보였다. 붉은색 흰색 그리고 분홍색까지라도 한데 어울러 저리도 아름다운데, 왜 사람들은 색깔로 편을 가르고 원수지는 것일까?

아침밥을 먹자마자 재호는 개울을 건너 논둑 길을 걸었다. 그 쪽에는 웅덩이가 있다는 말을 동생들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한참 가

니까 정말 웅덩이가 나타났다. 가물 때 논에 물을 대기 위해서 파놓은 것이다. 맑고 잔잔한 물에 흰 구름이 둥둥 떠 있었다. 재호의 야윈 얼굴이 환자처럼 수면에 비추어 보였다.

‘ 저 놈은 세상에서 가장 못 나고, 지지리 복 없고 팔자가 사나운 놈이야 ’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살아 무얼 하랴. 풍덩 빠져버리면 죽겠지...’

그 순간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 물위에 비추었다. 이어서만주로 떠난 후 영영 소식이 없는 작은집 식구들도 희미하게 어른거렸다. 그러나 손바닥만한 붕어 한 마리가 물위로 떠오르더니, 이내 심술궂게 지워버리고 물 속으로 사라졌다.

‘ 나 죽으면 할아버지는 또 얼마나 우실까?’

이번에는 할아버지의 얼굴이 물에 비추어 보였다. 최씨네 가문 대를 이어가야 할 씨앗이라고, 입버릇처럼 하시던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재호가 죽어버린다면 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재호의 볼 위로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흰 구름 조각들이 물새 되어 웅덩이 위를 헤엄치며 지나가는데, 개구리 한 마리가 풍덩 뛰어들더니 물새들을 내쫓았다. 그리고 저 쪽 물가에는 개구리밥과 함께 죽은 개구리 한 마리가 흰 배를 드러내 보이며 떠있었다. 재호는 그 개구리처럼 뻗어서 물위에 떠 있을 자기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차마 뜬눈으로는 볼 수 없는 그 추함과 측은함! 누가 인생을 마치 저 부평초 같다고 했던가? 재호는 꿈에서 깨어난 듯 젖어있는 두 눈을 비비며 발길을 돌렸다.

“ 죽어선 안 돼! 태극기를 꼭 봐야 돼! 아버지 어머니 꼭 만나야 해!”

재호는 혼자 다짐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빨치산들의 습격을 받고 목숨만 건졌을 때의 그 감격을 되살려야 했다. 피난길에서 아버지가 들려주셨던 비서새와 기러기 이야기도 되새김질해야 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짐작했던 대로 큰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 아니 니가 돌았지야, 으디 갔다 왔냔 말여? ”

“..................”

고모의 목소리는 찢어지는 것 같았다.

“ 너만 죽냐? 우리 식구들 다 죽재 이 놈아!”

“ 죄송합니다.”

“ 꼼짝도 말고 처박혀 있어! 니가 미쳤지 그래.”

할아버지의 목소리에도 노여움이 서려있었다. 닭장 짊어지고 장터로 돌아다니란 때는 언제고, 지금은 또 가만히 처박혀만 있으라니, 할아버지도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재호는, 무릎을 꿇고 앉아 울음을 씹어 삼켰다. 할아버지의 명령을 받은 대붕이와 낙붕이가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것이 여간 괴롭지 않았으나, 자기가 판 자기 무덤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 날 밤, 한쪽 구석에서 새우잠을 자던 재호는 꿈을 꾸었다.

어미 새가 고무총을 맞고 죽어버린 바람에, 외톨이가 된 갓난 새끼 새는, 별 나라에 가있을 어미 새를 그리워하며 울다 울다가 지쳐서 쓰러졌다. 배가 고파도 먹을 모이가 없는데, 주위에 흩어져 있는 꽃씨가 눈에 띄어 콕콕 쪼아먹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몸에서 깃털이 나는 게 아니라 꽃씨를 먹을 때마다 작은 꽃들이 앙증맞게 피어났다. 뜻밖에 꽃새가 되어버린 새끼 새는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 하는데, 웬 벌들이 날아들더니 꿀을 빨았다.

“ 얘 꽃새야, 너 별나라 갈래 달나라 갈래? ”

“ 별 나라? 우리 엄마가 있는 나라 말이야? ”

“ 네 엄마? 네 엄만 죽었잖아? ”

“ 뭐? 우리 엄만 별나라 갔다니까.”

“ 그러니까 죽은 게지.”

“ 아냐, 아냐. 우리 엄만 살아있어! 살아있어! 죽었으면 왜 내가 별나라에 가? 살아있다니까 살아있어!”

울부짖다가 제 소리에 놀래어 눈을 뜨니까 꿈이었다.

낙붕이가 덩달아 놀래어 잠을 깼다가

“ 시, 드럽게 시끄럽네!”

하면서 못마땅한 듯 짜증을 내더니 다시 돌아누우며 잠들었다.

‘별나라와 꽃새?’

재호는 이 이상한 꿈자리를 푸느라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길몽인가 흉몽인가? 어머니나 아버지가 공산당들에게 잡혀가 죽었다는 말인가? 재호가 꽃새가 되었다면, 재호의 앞날이 잘 풀린다는 말인가 잘못 꼬인다는 말인가? 벌들은 재호를 도와줄 사람들인가, 아니면 해를 끼칠 사람인가?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비록 개꿈일지라도, 꿈 하나에 마치 자기의 운명이 걸려있는 것 같이, 이렇게 저렇게 해몽을 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1) 반동분자(反動分子)...공산주의 혁명을 가로막는 무리, 대한민국 치하에서 공산주의를 반대했던 사람

2) 인민재판(人民裁判)...법관이 아닌 인민이 법 없이 공개적으로 하는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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