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새가 깐 알
“ 따다다다다 다다다다.”
호주기 편대가 난데없이 동산을 넘어 급강하하여 기총소사를 하고 지나가면, 사람들은 혼비백산이 되어 쥐구멍을 찾았다. 낮에 장이 서지를 못하고, 궐기대회도 밤으로만 열렸다. 달구지가 지나가도 어느새 알아차렸는지, 하늘을 찢는 소리와 함께 귀신처럼 나타난 호주기가, 기관총을 쏘는 바람에 소와 말이 거꾸러지며 피를 흘렸다.
“쾅!”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과 함께 다리가 폭탄으로 끊어지고, 하늘로 솟구치는 시커먼 가오리 같은 비행기는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한밤중 등불을 들고 물꼬를 대던 사람이 총을 맞고 죽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 완전히 승리를 했다는데, 왜 호주기는 하늘을 누비고 날아다닐까? ’
‘ 불란서 미국까지도 공산 혁명이 이루어졌다면서, 왜 의용군은 뽑아갈까?’
더위가 한풀 꺾인 8월 하순이 되자 뭔지 모르게 세상이 뒤숭숭했다. 현물세를 받기 위해서 인민위원회의 붉은 완장을 한 동무가 벼모가지 낟알까지 세어갔다. 청년들은 의용군으로 잡혀가고, 장년들은 참호 파는 일에 끌려가며, 여자들은 식량 고추장 된장 소금 등을 거두어 갔다. 낯선 붉은 지폐를 물 쓰듯 하면서 닥치는대로 물자를 사들였다.
인민공화국은 만 백성들에게 지상낙원을 약속하였다. 못 배우고 가난하게 살아왔던 노동자 농민들은 이 낙원의 주인공이 되어, 벼슬도 하고, 쇠고기를 껌 씹듯 질근질근 씹고 다니며 날뛰는 게, 아닌게아니라 그들에게는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과거 ‘이승만 괴뢰정권’ 밑에서, 관리를 했던 사람, 우익 단체에 가입했던 사람, 심지어는 교육을 많이 받고 재산이 있는 사람들을 공산 혁명에 협조하지 않았던 반동분자들이라고 낙인을 찍어, 이들을 가려내고 찾아내는데, 그들은 두 눈에 불을 켜고 앞잡이 노릇을 했다. 북한에서 내려온 두 명의 인민군은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참으로 점잖다는 소문이 났으나, 지리산에서 내려왔다는 빨치산들과, 과거 머슴살이나 소작을 지어먹었거나 빚 졌던 토박이들의 눈은 벌겋게 충혈이 된 채 이 집 저 집을 뒤집고 다녔다.
특히 빨치산들은 시뻘건 머리띠를 두르고, 시뻘건 헝겊을 동여맨 긴 대창을 쥐고 다니면서, 벽장, 장롱, 중천장, 대청마루 밑, 쌀독, 장독, 아궁이, 우물, 장작더미 심지어 변소의 똥통까지 쑤시고 찔렀다.
인민재판으로 총살형을 받은 사람, 오랏줄에 묶여 어디론지 끌려간 후 소식을 모른다는 사람, 개처럼 길거리에 질질 끌려 다니며 돌멩이를 맞았다는 사람, 몽둥이 세례를 받고 왕소금에 절인 파김치가 된 채 기어 들어왔다는 사람....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끔찍스런 소문들이 꼬리를 물고 들어와 재호의 귓속에 아프게 틀어박혔다. 할아버지와 고모부의 오가는 눈길 속에서 심상치 않는 것을 눈치챈 재호는 불안과 공포에 싸여 안절부절 했다.
고모네 뒷집은 반동분자의 집이라고 낙인 찍혀, 빨치산들이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빨치산들의 적개심에 불타는 협박과 아낙네들의 앙칼진 반항의 목소리가 고모네 까지 건너와 재호의 뒤통수를 마구 때렸다.
“ 옘병할 눔 새끼들아, 니눔들은 에미 에비도 없냐? 새끼들도 없냐? 내가 먼 죄가 있단 말이냐? 쥑일테믄 쥑여라! 이 배락을 맞을 놈들아.”
“ 이눔의 아가리 찢어부릴 것이여!”
“ 찢든지 비틀든지 맘대로 히여, 이 호랭이 물어갈 눔들아!”
“ 이 육시랄 놈들아, 워메메 나 죽네!”
지옥에서 나는 소리가 저럴까? 자지러지는 아기 울음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나더니 마침내 집에 불이 붙었다. 재호는 재빠르게 마루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축축하고 껌껌하고 메스껍고.... 재호더러 아버지를 찾아내라고 저렇게 족칠 것만 같은 생각에 몸을 떨었다. 오줌소태에 걸린 것 같이 찔끔 찔끔 오줌이 마려워 그냥 바지에 싸버렸다. 그러나 기침만은 참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마룻바닥이 코에 바짝 닿은 데다가, 몇 십 년 묵은 먼지와 거미줄들이 얼굴을 뒤덮어, 마른기침이 자꾸만 나오는 게 아닌가? 이 기침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는 날에는 죽음 바로 그것이다.
피난길에 만났던 영식이 형님과 훈이 엄마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재호가 고모네 집에 와있는 것을 안 사람은 두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시 고모네 조차도 공산당이라면, 자기를 이대로 둘 것인가 하는 의심이 입 속을 바싹바싹 타게 하였다.
추석을 쇠고 난 9월 하순에 접어들면서, 비행기에서 웬 전단이 뿌려지고, 드디어 국군과 경찰이 온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재호에게는 꿈만 같은 반가운 소식이었지만, 사람들은 술렁거렸으며 세상은 더욱 어지러워졌다.
“ 자네야, 자위대 하고잪아서 한게 아니니께 갠찮을 것이네....”
할아버지는 이렇게 고모부를 위로하였으나, 고모부 내외분의 얼굴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렸으며, 할아버지의 얼굴에도 근심의 빛이 역력했다. 물론 동생들의 어깨도 점점 쳐지는 것 같았다.
면사무소, 경찰지서, 우체국, 금융조합, 국민학교...공공 건물로부터 시작해서 반동분자의 집에 불을 놓았다. 온 고을이 낮에는 연기로 가득 차고, 밤에는 불바다를 이루어 대낮 같이 환했다. 산천초목이 바들바들 떠는 이 생지옥에서, 재호는 할아버지를 따라 이곳 저곳으로 피해 다녔다. 피해 다니기는 고모네도 마찬가지였다.
빨치산들은 집집마다 차례대로 드나들며 숨은 사람을 찾아내었다.
고모네 집에도 들이닥쳤다. 낌새를 눈치챈 재호는 잽싸게 바깥으로 뛰어나가 다리 밑에 숨어 있었다. 굶주린 짐승들처럼 씩씩거리며 그 긴 대창으로 안 쑤시는 곳이 없이 샅샅이 쑤셔대었다. 만약 재호가 마루 밑에 숨어있었다면 찔려 죽었을 것이다. 하룻밤을 새우고 나면, 누가 죽고 어느 집이 불탔다는 소식이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 넣었다.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이요, 집이라는 것이 검부러기에 지나지 않았다.
왜정 때, 용화수 떠놓고 합장 기도하며 치성 드리던 어머니는 그 어디에서 용화수라도 떠놓고 있을 것인가? 천 마리 만 마리 종이학을 접으며 소원을 빌던 재호는 지금 한가롭게 단 백 마리의 종이학이라도 접을 수 있으며, 어느 골목에 앉아서 새점이라도 칠 수 있는가? 할아버지도, 추석 명절이자 증조할머니 제삿날인데도, 정성껏 차례를 드리기는커녕, 위패조차 쳐다보지도 않은 채 불안에 떨고 있지 않은가? 그런 것 모두가 한가했을 때의 이야기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이 경계선에서는 사치스러운 일 같았다.
이른 새벽.
뜬눈으로 밤을 새는데,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끝이 하늘로 올라간 식구들 중 감히 누구 하나 나가보려는 사람이 없었다.
“ 재호야, 나 엄니다. 문 열어라.”
“..........”
이 유령의 목소리에 속지 않으려는 듯,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고 귀를 기울였다. 오늘따라 대문 밖 수양버들이 산발을 한 귀신 같이 넘늘거리고 있었다.
“ 고무, 나 재호 엄니여. 문 열어 주시오.”
“...........”
할아버지가 떨리는 발걸음으로 다가갔다.
“ 아부님, 저 재호 에미니께 문 좀 열어 주시오.”
할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빗장을 열었다. 시커먼 이불보를 둘러쓰고 들어선 사람은 분명히 귀신이 아닌 어머니였다.
“ 아! ”
재호는 가벼운 신음 소리를 내었다. 생사를 모른 채 실로 석달 만에 만난 것이다.
“ 식구들 다 죽은지 알았지라우. 성전민에서 보니께 밴영(병영)이 불바다가 되어뿌러서, 잿더미 속에서 빼나 찾을 생각을 하고 밤새도록 기어왔어라우.”
“...........”
어머니의 거친 소리가 싫었을까, 할아버지의 눈살이 곱지 않았다. 담배를 한 대 피워 물더니
“ 당장 나가거라! 멋담시 여글 와? 누굴 쥑일라고...”
할아버지의 퉁명스런 목소리에 어머니의 몸이 움츠러들고, 재호의 손에 진땀이 났다.
“ 재호 살릴라믄 어서 나가! 너 있으믄 다 죽어.”
“...........”
“ 할아버지, 왜 그래요? 어머니 나가면 죽어요.”
재호는 할아버지의 손목을 붙잡았다.
“ 이 놈아, 살 사람은 살아야재. 모여 있으믄 다 죽는단 말여.”
어머니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호는 할아버지가 그렇게도 야속할 수가 없었다. 평소에 깊게 파인 할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감정의 골이 메워지지 않은 채, 그토록 말다툼이 잦더니 앙갚음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재호만을 살리면 어머니쯤이야 죽어도 좋다는 것 같았다.
“ 어머니, 나랑 함께 가요!”
재호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들었다.
“ 이걸 노란 말여, 이럼 둘이 다 죽어.”
“ 어머니 죽으면 나도 죽을라요....”
고모부의 억센 손이 재호의 손을 치는 순간, 어머니의 치마폭이 찢어지며 어머니는 쫓기다시피 쏜살 같이 대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 어머니! 나 안 데리고 가면 다 일러바칠거요....”
재호의 입은 수건으로 재갈물리고, 두 손은 뒤로 꺾여진 채 꼼짝달싹 못하게 붙잡혀 있었다. 한 끼니 밥은커녕, 그 동안 어떻게 목숨을 이어왔는지, 아버지는 어떻게 되었는지 몇 마디 말을 나눌 새도 없이, 재호는 또다시 어머니와 헤어졌다.
‘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고 했는데, 왜 뭉치면 죽고 헤어지면 산단 말인가?’
고무줄 총에 죽은 어미 새, 엄마를 잃은 새끼 새, 꽃씨를 먹고 꽃새가 된 새끼 새... 불현듯 며칠 전의 꿈이 생각나며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도 재호는 어머니의 참 사랑을 처음으로 진하게 느껴보는 순간이었다. 집이 불탔을 때, 자기만 남겨두고 도망쳤던 야속함이 말끔히 씻겨지고,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양어머니와의 그 어떤 틈새가 완전히 메우어졌다.
1) 현물세(現物稅)...현재 실지로 있는 물자에 대해서 그 물자로 받는 세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