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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

종이새가 깐 알

by 최연수

정부가 세워졌으나 사회는 휴화산일 뿐, 언제 활화산으로 폭발할 것인지 내일을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다. 제주도의 폭동이 도화선이 되어, 전라남도 여수에 있었던 14연대의 좌익 국군이 반란을 일으켰다. 좌익들이 이에 합세하여 경찰을 비롯한 우익들을 닥치는대로 잡아죽이고, 관공서들을 불태우며 서쪽으로 진격해 왔다. 순천, 벌교와 고흥 그리고 보성까지 육박해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다 급해진 우익들은 봇짐을 싸 가지고 광주로 목포로 피난을 떠났다. 재호네도 광주로 피난하기 위해서 경찰서 근처에서 말뚝잠 새우잠으로 하룻밤을 새웠는데, 그 동안 움츠려 있던 좌익들이 눈에 띄게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국군과 경찰이 반란군의 기세를 꺾고, 그들 손아귀에 들어간 고을들을 차례로 다시 빼앗았다. 1주일 동안 버티다가, 쫓기고 몰린 그들은 구례 곡성 산줄기를 타고 지리산으로 숨어들었다. 그들이 진격해 오면 환영하기 위해서 프랑카드를 만들어 놓았다가 들통난 영식이의 작은형도 지리산으로 올라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 봉화다! 오늘은 시 개다. ”

큰 불길은 가까스로 잡았으나 작은 불씨들은 여전히 남아있어서, 경찰들과 우익들은 고삐 풀린 말 같이 이를 갈아붙이며 앙갚음을 했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면 먼 산에 봉화가 피어올랐다. 한 곳 두 곳 세 곳....봉화의 수가 많은 날은 일찍 저녁을 지어먹고, 성안 친척집이나 친구들 집으로 보따리를 이고 지며 피신을 해야만 했다.

산에서 내려온 반란군들을 공비라고 했다. 공비의 습격이 있으면 경찰들과 콩 볶은 듯한 총격전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그 옛날 성터를 따라 산 능선에 높은 대나무 울타리를 치고, 밤에는 동문과 남문을 닫아 버렸다. 여기 저기에 새막을 짓고 야경꾼들을 세웠으나, 그래도 공비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개천이나 수로를 따라 스며들어 경찰과 싸움판을 벌였다. 동지섣달 추위처럼 사람들은 오들오들 떨며 새벽을 애타게 기다렸다. 날이 새면 이 곳 저 곳의 핏자국들이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산 속에 은신해 있던 밤손님들은 산길을 끊어 교통을 마비시켰으며, 전봇대를 잘라 전기를 끊고 통신을 방해했다. 외딴 산비탈 마을에는 밤이면 밤손님들이 내려와서 밥을 지어먹고, 식량을 비롯해서 갖가지 물건을 빼앗아 갔으며 정보를 얻어 갔다. 마을 사람들은 공비를 ‘밤손님’ 또는 ‘산손님’이라고 불렀다. 그들에게 화를 당하지 않으려면 손님 대접을 아니할 수 없었다. 반대로 날이 새면 경찰들이 들이닥쳐 공비들에게 협조했다면서 잡아 가두고 몽둥이 타작을 했다. 신고했다고 공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신고 안 했다고 경찰들에게 시달림을 받은 마을 사람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꼴이 되어, 더 이상 못 살겠다고 한 숨을 몰아쉬었다.

“ 워메메, 난리도 난리도 이런 난리가 또 워디 있당가?”

“ 갑오년 동학난리도 일안했재. 전생에 먼 죄를 지었다고...”

“ 똥장군 짊어지고 땅이나 파묵고 산 사람들이 으쨌단 말이여?”

“ 빌어묵을눔의 시상, 이것이 산 목숨이여?”

“ 하늘하고 땅하고 딱 닿아뿌렀으믄 좋겄니어.”

하늘만을 쳐다보며 땅이 꺼지도록 소리쳐보았지만, 이러한 소용돌이는 겨울을 지나 이듬해도 계속되었다. 밤이 되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저녁밥을 일찍 먹고, 먼 산을 둘러보며 봉화가 타오르지나 않나 살펴보는 것이 일과처럼 되었다.

이 날은 봉화가 타오르지 않았다. 다리를 쭉 뻗고 안심하고 잘 수가 있었다. 한 밤중이었다. 재호가 가슴이 답답해서 가슴츠레하게 눈을 떴더니, 세상이 대낮 같이 환했다. 곁에 있어야할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이지 않고 집에는 불이 붙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발자국 소리가 어수선한 게 직감적으로 공비들의 습격임을 알아차린 재호는, 그 길로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이어서 총 소리가 났다. 재호는 건너편 재제소 변소로 뛰어들었다. 변소라야 땅 속에 커다란 독 하나 묻어놓고, 나무 널조각 두 개 얹혀놓은 것이다. 재호는 이 부출에 쪼그리고 앉아 걸쳐놓은 거적문을 젖히며 밖을 내다보았다.

“ 와지직 와지직 쿵 쾅.”

시뻘건 불길이 하늘 높이 치솟고, 기둥이 쓰러지며 목조 가옥이라 순식간에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재호는 마치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겁에 질려, 간이 콩알만해진 채 부들부들 떨었다. 문득 아버지와 어머니 생각이 났다.

‘아부지 어무니는 나만 놔두고 어디로 도망갔을까? 역시 양아부지 어무니는 다르구나.....’

재호는 무서움과 서운함이 뒤엉켜 가슴이 미어진 것 같았다. 불기운이 재호의 얼굴에까지 와 닿았다.

“ 탕 탕탕 탕 삐용....”

총알이 유성처럼 어둠을 가르며 섬뜩하게 날아가고, 또 건너편 정미소에서도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 어무니, 아부지!”

재호는 아버지 어머니를 불러 봤으나, 목소리가 나오기는커녕 오히려 목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재호네가 동교리로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동교리는 탐진강 건너 성밖이 되어, 동문을 닫으면 경찰의 힘이 미치지 않은 곳이었다. 게다가 집은 대한청년단 사무실이 되어 공비들의 표적이 되었던 곳인데, 마침내 이 날 밤 재만 남기고 송두리째 사라져 버렸다. 물론 기꾸장이 선물한 그림책들과 장난감, 그리고 재호가 만든 동화집과 목숨 같이 귀하게 여기는 입시문제집과, 벽에 걸린 가족 친척 사진들이 흔적도 없이 재 돼버렸다.

이 지옥 같은 밤을 모르는 듯 아침 노을이 곱게 물들고, 여느 때처럼 수 백 마리의 참새들이 머리 위로 날아갔다. 매콤한 냄새가 코를 찌를 뿐 세상이 죽은 듯이 고요했다.

“ 아이고 아이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머리를 풀어헤친 채, 속옷바람으로 나타난 어머니가 미친 사람 같이, 연기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집터에 와서 땅을 치며 울부짖었다.

“ 재호야! 재호야!”

“...................”

“ 재호야, 죽었냐 살았냐? ”

“ 어무니! 저 여기 있어라우.”

재호는 어머니의 허리를 껴안으며 젖가슴 새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 니가 재호냐? 워메메 내 새끼, 니가 안 죽고 살았냐?”

어머니는 믿어지지 않은 듯 재호의 얼굴을 뚫어져라고 다시 바라보며 울었다.

“ 이 에미가 죽일년이재. 널 두고 나만 도망가다니...”

어머니는 간밤의 일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어떻게 도망을 친 것인지, 어떻게 살아났는지. 그저 재호하고 아빠는 죽은 줄로만 안 것이다. 잿더미 속에서 아버지의 뼈도 찾을 수 없다며 통곡을 하는데, 저 쪽에서 또 아버지가 유령처럼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 재호야!”

유령이 아니고 정말 아버지였다. 사람이라곤 그림자조차 얼씬하지 않은 마당에, 세 가족이 얼싸안고 큰 소리로 울었다. 목이 메인 이 울부짖음은 아직도 열기가 가시지 않은 뜨거운 잿더미 위에서 몸부림치며 뒹굴었다. 그러나 이 엄청난 난리 속에서 세 식구가 고스란히 산 것은 참으로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집은 비록 타 버리고 알거지가 되었지만, 목숨만이라도 건졌다는 것이 꼭 꿈만 같았다.

“ 아부지는 말이여, 빨갱이들한테 잡혀가다가 도망쳐 왔재.”

아버지는 간밤의 기막혔던 사건을 더듬더듬 이야기했다. 모두들 그 악몽이 되살아나서 몸을 떨었다.

“ 재호 넌 우리 집 씨여, 대를 이어갈 씨란 말이여. 하늘이 도왔재.”

아버지는 재호를 으스러지도록 껴안았다.

‘ 이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날은 환히 밝아왔지만, 재호의 눈앞은 점점 더 어두워만 갔다.

이윽고 조무래기들이 여기 저기서 생쥐 같이 나타났다. 간밤의 불바다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이 얼마나 죽고 시체가 어떻게 뒹굴고 있는지 상관없이, 오직 탄피를 줍느라고 가로 뛰고 세로 뛰었다. 고작해야 엿치기 돈이나 마련하려고......마당가에서 그 몸서리나는 광경을 지켜보고 서있었을 미루나무가, 반쪽이 열기에 그을러져 볼썽사나웠다. 그러나 간밤의 그 난리를 어디에서 어떻게 겪었는지 참새 떼들이 미루나무로 날아와 시끄럽게 조잘거렸다.

‘ 아 참, 삐둘기들은 으츠구 됐을까? 둥지랑 같이 타 죽었을까? 아니믄 도망갔을까? 살아있으믄 와보기나 하재.....’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새장 창살 하나, 비둘기 깃털 하나 보이지 않았다. 주인 잘못 만나 이런 변을 당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수록 불쌍했다. 평화를 상징한다는 비둘기가 이런 싸움판의 희생물이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1) 제주도 사건...1948년 4월 3일 공산당이 일으킨 폭동

2) 여.순 사건...1948년 10월 19일 여수 14연대의 좌익 국군이 일으킨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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