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새가 깐 알
가슴이 답답할 때면 재호는 곧잘 들길을 거닐었다. 아직은 찬바람이 옷소매 속으로 기어들었지만, 입춘을 지난 밭두렁에는 새싹들이 파릇파릇 고개를 들었다.
“ 기-럭 기-럭 ”
한 무리의 기러기가 북쪽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기러기 떼는 달무리 빛을 등에 업고 유유히 날개를 저었다. 마치 제트기 편대처럼,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날아가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 오동잎새 한 잎 두 잎 떨어지는데
길을 잃은 기러기 날아갑니다.
엄마 엄마 울고간 넓은 하늘로
기럭 기럭 부르며 날아갑니다. ”
재호는 국민학교 시절에 배웠던 노래를 휘파람으로 날렸다.
‘저 기러기들은 서울을 지나고 포연이 자욱한 전선을 넘어갈 것이다. 그리고 두만강을 건너고, 만주 벌판에서 날개를 접고 쉴지도 모른다.’
재호는 불현듯이 작은댁 식구들의 얼굴이 달무리 같이 부옇게 떠올랐다. 그리고 고모님 댁에서 우연히 발견한 작은아버지의 결혼식 사진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헤어진지 6년이 되었는데도 생사를 알 길이 없는 작은집 식구들도, 지금쯤 남쪽 하늘을 향해서 저 달을 바라보고 있을까? 과연 발이 닿는 대로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린 대로 거두며 오순도순 살고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높은 산 깊은 골짜기를 쓰러지다 일어나다 오르락내리락하며 살고 있을까? 편지 한 장 띄울 수 없는 이 비극의 무대 위에서, 재호는 북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편에 편지를 띄웠다.
* *
(작은)아버지 어머니께
북쪽 하늘로 한 무리의 기러기가 날아가고 있습니다. 저 기러기 편에 이 편지를 띄웁니다. 머나먼 곳에 소식을 전하고싶으면 기러기 편을 이용하라는 옛말이 생각나서입니다. 참으로 저 기러기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 편지를 전할 수 있겠습니까? 안신(雁信)이란 말이 마치 저를 위해서 생겨난 말 같습니다.
(작은)아버지.
해방되던 해였으니까 아버지 떠나신지 벌써 6년이 되었습니다. 비탈진 내리막길을 미친 듯이 치닫는 듯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실려서, 이 시간에도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도 낯선 북쪽 땅 어느 곳에서, 숨돌릴 수 없이 굴러가는 또 하나의 수레바퀴에 메달려서, 지금 이 시간에도 생명이나 이어가고 있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꿈엔들 되풀이해서는 안 될 6.25! 우리 가족이 뿔뿔이 생이별했을 때였습니다. 저는 고모님 댁에서 숨어 살았는데, 그 때 누렇게 빛 바랜 사진 한 장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때는 사느냐 죽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별로 눈여겨보지 않았던 사진이었지만, 그 동안 저도 모르게 제 가슴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요즘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결혼 사진.
어쩌면 제 역사의 시작일지도 모르는 그 사진에서, 눈길을 끌었던 것은 한 쌍의 기러기였습니다. 역사의 증인이기도 한 그 새가 하필이면 기러기였을까 궁금해하던 중, 우연히 그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러기는 지극히 높고 깨끗한 영물 새요, 기러기 같이 사이좋게 두 내외가 잘 살라는 의미에서, 예로부터 혼인 잔치에 쓰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산 놈을 잡을 수가 없어서 나무로 새긴 기러기(木雁)를 가지고, 신랑이 신부집으로 전안(奠雁)을 간다고 하였습니다. 정말로, 할아버지께서 기럭아비(雁夫)가 되어, 그 나무 기러기를 넣은 함을 지고, 앞서서 신부집으로 갔었는지요? 그리고 외할머니께서 이 기러기를 소중히 얼싸안고 들어갔었는지요? 저는 지금 믿어지지 않은, 그러나 한 폭의 그림 같이 아름다운 이 일을 상상해보면서, 행복에 취해 있답니다.
그런데, 신랑 신부가 절을 할 때는 기러기 대신 닭을 붙잡아서 가지고 있다는데, 기러기는 잡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영물이니까 함부로 잡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
세상살이 힘들고 고달파 지쳐 있을 때, 삶이 너무 괴롭고 아파서
인생이 한스러울 때, 이 한 장의 사진을 꺼내놓고 지난날의 추억을 더듬어볼 수 있다는 것이, 그래도 사람에게만 주어진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이 곳 부모님은 뒤를 돌아다볼 수 있는 사진 한 장 없이, 여기까지 와있답니다.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앞만 바라보고 숨가쁘게 뛰다보니, 저도 이제 상투를 틀고 관을 쓸 나이에 가까워졌나봅니다. 종이새가 깐 알이라고 운명을 비아냥거리면서 스스로 움츠려들었던 것이랑, 찌그러진 조롱 속에서 꿈의 날개 한 번 펴보지 못한 채 커버린 못난 나를 손찌검했던 것이랑.....이 모든 것을 훌훌 던져버리고, 그래도 굴러가는 수레의 향방을 이렇게나마 응시할 수가 있게 되었답니다.
아버지.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날아가는 저 기러기 떼를 쳐다보고 있노라니 참으로 신기합니다. 주줄이 제 자리를 찾아서 나는 차례를 잃지 않는다니 더욱 신기합니다. 제 사촌까지도 알아볼 만큼 형제간의 사랑이 깊다니, 참으로 영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남의 형제간을 안행(雁行)이라 한다지 않습니까?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저는, 승호랑 순덕이랑 그리고 이름 모른 또 다른 동생을 오랜 세월 까맣게 잊고 살아왔다니 부끄럽기 한이 없습니다. 지금쯤 학교에 다니면서, 고향 이야기를 듣고싶어 하겠지요. 아버지 어머니의 결혼 사진을 꺼내어 보면서, 웃음꽃을 활짝 피우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아버지.
모자 하나를 쓰고 벗는다고 해서 사람이 바뀔 리는 없지만, 아버지라는 글자 앞에 (작은)이라는 모자를 덧씌우고 보니, 사람이 아예 바뀐 것 같습니다. 말장난하자는 것은 아닌데, 이렇게 해야만 하는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휴전 회담이 진행되고 있어, 과연 휴전이 되어 그 몸서리나는 포성이 멈추고, 더 이상의 피를 흘리지 않을는지, 아니면 보다 더 참혹한 전쟁으로 번져나가, 한반도가 온통 해골 땅으로 변해버릴는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휴전이 되면 통일은 아주 멀어진다니 참으로 아쉽습니다. 어서 통일이 되어, 오며 가며 함께 모여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다못해 저 기러기처럼, 겨울이 되면 남쪽으로, 봄이 되면 북쪽으로 오락가락 하면서 서로 만나보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역사의 수레는 우리의 의지와는 아랑곳없이, 지금도 쉬지 않고 굴러갑니다. 뛰어내린 다는 것은 곧 죽음이기에, 다만 그 지나가는 바퀴 자국들이 참으로 아름답고 빛나기만을 두 손 모아 빌 뿐입니다.
“ 가을이 되면 또다시 와서 만나자! 그 때는 북쪽 편지를 가지고 오렴! 살아있다는 소식만이라도......”
저는 이렇게 속삭이면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이윽고 기러기 떼들은 멀리 사라졌습니다. 귀한 손님들을 배웅한 것처럼 뭔지 허전하고 아쉽습니다. 며칠 후면 전선을 넘고, 그리고 또 두만강을 건너겠지요. 남쪽에서 날아온 기러기 떼들을 바라보며, 이곳 남쪽 소식을 묻겠지요? 참으로 가늘지만 그러나 질긴 명주실 같은 생명이라는 소식만을 전해드릴 것입니다. 마음은 만리장성보다 더 길게 쓸 것 같은데, 막상 펜을 들고 보니 말이 짧아 이만 줄입니다. 통일될 그 날까지 건강하시고, 반드시 만나리라는 믿음과 희망만을 버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51년 3월 일
아들 재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