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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새가 깐 알

by 최연수

6.3.3.4 학제와 함께 학년초가 4월로 바뀌면서, 20개월만에 중학교 3학년으로 진급했다. 그나마 6.25로 인한 격동기로 15개월 정도 학교 생활했으니 공부다운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더구나 재호는 복학조차 늦어 2학년을 6개월로 마친 셈이다.

해동이 되어 서울을 재탈환했지만, 전선은 톱질 작전으로 인해 소모전으로 바뀌면서 소강 상태에 빠져들었다. 졸지에 중학 졸업반이 된 학생들은 진학, 진로 문제를 놓고 고심했으며, 나이 든 학우들은 언제 전쟁이 확대되어 징집이 될지 뒤숭숭했다. 마음을 잡고 공부할 수가 없어서 술 담배에 빠져들고,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안 해도 홍등가를 기웃거리는 학우들도 있었다. 그들은 ‘먹세,노세,자세’라는 ‘3세주의’가 그들의 인생관이라며 떠벌리기도 했다.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집에 내려간 재호는, 영식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 봄 유치 토벌 작전 때 죽었다는 것이다. 싸늘한 시체의 누더기 위로, 헤아릴 수 없는 이들이 기어 나와 바글거렸다니 그 애처로움이 어떠했을까? 자기는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장가가서, 한 다스 새끼들을 낳을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던 그가, 장가는커녕 생명체라고는 이들만을 남겨놓은 채 산골짜기에서 숨을 거두었으리라는 생각을 하니 너무 불쌍했다. 심장을 만져보며, 무섭냐고 했을 때의 그 모습이 너무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재호가 던져 준 운동화를 신은 채 누워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몸이 오싹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상이란 무엇이기에 그렇게 젊음을 송두리째 바쳤을까? 하나 밖에 없는 생명까지 바치면서 지켜야 할 가치가 과연 있는 것인가? 그토록 많은 지식과 갖가지 재주를 갖추고, 용기와 해학으로써 친

구들의 우상이 되었던 그가 왜 죽어야만 하는가? 그는 언제인가 종교는 아편이라 했는데, 사상이야말로 아편이 아니겠는가? 하기야 6.25를 겪고 난 아버지도 사상이란 그림자 같노라고 고백하며, 다시는 청년 운동.정치 운동 안 하겠다고 가족들에게 약속했건만, 지금 또다시 옛 동지들과 어울리면서 정치 운동에 기지개를 켜고 있지 않은가?

방학 동안이나마 재호는 신문을 배달하고 수금을 하면서 집안 일을 열심히 도왔다. 그러나 모이면 정치 이야기로 세월을 보내는 아버지가 몹시도 언짢았으며, 서당개도 십 년이면 풍월을 한다더니, 어머니마저 정치 이야기판에 한데 어울리는 것이 참 못 마땅했다. 버스에 실려온 신문 뭉치를 뜯자마자, 전황보다는 부산 정치파동 기사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아버지가 미워지기도 했다.

재호도 신문 구석구석까지 샅샅이 읽는 습관이 생겼다. 심지어 광고까지도 다 읽어야 속이 후련했다.

“ 아버지, 훈이 찾는 광고가 났어요!”

재호는 광고를 훑어나가다가 낯익은 사진에서 시선이 멈췄다. 너무 작아서 희미하였지만, 미군이 훈이를 안고 훈이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아버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며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Park Hoon의 이름이 틀림없고, ChangHueng에서 살았다는 것이 역시 틀림없었다. 어머니도 광고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 그 때 그 헬로 아자씬갑다. 훈이 집에 자주 들락거리던......”

“ 그 미군하고 눈이 맞았다 했재?”

“ 그렇겄재. 미군이 떠남시로 종적을 감췄은께.”

“ 아니, 털보하고 살았다믄서......”

“ 글씨, 으츠꾸 된 영문인지 내가 알간디.”

“ ...................”

이 신문 광고를 과연 몇 사람이나 유심히 볼 것인가? 더구나 훈이네가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 같았다.

“ 아버지, 훈이네 한테 알려주지요.”

“ 것이기, 훈이네가 으디 산지 알아야지.”

“ 군동에서 봤으니까 거기서 안 살까요?”

“ 군동 으디서?”

“ 훈이가 학교 다닐 것 같아요. 학교 가면 알 수 있겠죠.”

“ 근디, 알려준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난 모르겄다.”

어머니는 망설였다. 공연히 평지 풍파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만나고 안 만나고는 훈이 어머니에게 달린 것이고, 알려는 주자고 의논이 되었다. 그 길로 재호는 군동국민학교로 찾아가 보았다. 그러나 학교에 입학 한 일도 없었다. 그래서, 다음 날 훈이 외갓집을 찾아갔다. 관산면 장터에 음식점을 새로 냈다는 것만 알고 찾아나셨다. 좁은 시골이라 어렵지 않게 찾을 수가 있었다.

“ 훈이 외할머니시죠?”

“ 학생은 누군디?”

“ 전 재호인데요, 훈이 어디 갔어요?”

“ 오라, 재호로구마. 총각 됐네. 이리 앉아.”

“ 훈이는요?”

“ 바깥에서 놀것지야. 근디 웬일로......”

“ 훈이를 찾는 사람이 있어서요.”

“ 누군디?”

“ 미군이요.”

“ 뭣이? ”

“ 이것 보세요.”

재호는 신문을 펴 보이며 설명을 해드렸다. 외할머니는 믿어지지 않는다며, 돋보기를 들고 나왔다.

“ 맞구마, 우리 사진하고 똑같구마.”

할머니는 빛 바랜 사진 한 장을 꺼내오더니 맞추어 보았다. 틀림 없었다. 그러니까 벌쩌 6년 전의 일이 아닌가? 그 미군은 해방과 함께 우리 나라에 진주하여 잠깐 동안 장흥에 주둔하고 있다가, 다른 곳으로 전속가면서 헤어졌다고 하였다. 그후 미군이 철수한 후 소식이 끊어졌는데 이렇게 찾고 있다니 무어라고 말을 해야할지.

“ 훈이 어머니는요?”

“ 글씨다. 여그 없지야.”

외할머니는 먼 하늘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길게 몰아 쉬었다. 눈에

서 눈물이 반짝했다. 담배를 한 개비 피워 물면서, 지금 훈이 엄마는 부산에 가있다는 것만 알지,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연락을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때마침 훈이가 들어왔다.

“훈이야!”

재호는 몰라보게 커버린 훈이를 끌어안았다. 영문을 모르는 훈이는 재호의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 재호 형이야, 몰라보겠어?”

“...................”

“ 널 얼마나 이뻐했는데, 잊어버렀냐?”

“...................”

“ 나 몰라? 니가 얼마나 보고싶었는데. 길가에서 만나면 몰라 보겠다야. 지금도 십자매 기르냐?”

아, 생각이 났다. 십자매를 길러주던 그 형! 어렸을 적 일을 더듬어 보는 훈이의 귀뿌리가 발갛게 물들며 멋적어 했다. 국민하교 1학년에 다닌다고 했다.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고 있었다. 신문과 사진을 내보이며 미군이 훈이를 찾는다고 했더니, 그는 한 말로 싫다고 했다. 그 헬로 아저씨가 참으로 훈이를 사랑했지 않았느냐고 했지만, 아버지도 아닌 양코배기가 싫다는 것이다.

“ 재호야, 그 중국 사람 시방도 거그 사냐?”

“ 예, 만리성 왕서방 말이지요? ”

“ 거 한국 여자하고 사는 사람 말이다.”

“ 예, 그 분이 왕서방이라니까요”

훈이 할머니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 그 집 아이 잘 크냐?”

“ 형빈이 말이지요? 잘 커요.”

“......................”

훈이 할머니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 이름이 형빈이라고? 그 애가 미국 아이 같지 않던?”

“ 예, 서양 아이 같아요.”

“ 쯔쯔쯔쯔”

고개를 끄덕이는 훈이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또 반짝 빛났다. 그 눈 속에는 무슨 사연들이 그득한 것처럼 보였다. 추측으로만 머물러있고, 소문으로만 떠도는 사연을 시원하게 여쭈어볼 만한 용기는 재호에게 없었다.

“ 재호야, 그 신문 나 주고 가거라. 내가 훈이 엄마를 찾아볼랑께...”

재호의 할 일은 끝났지만, 이 일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지며 어떻게 마무리될지 짐작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재호는 사진 한 장을 마음의 카메라에 담았다. 훈이 엄마 옆에 훈이와 형빈이가 어깨 동무를 하며 앉아있고, 그 뒷줄에 미군과 형빈이 어머니 그리고 왕서방이 미소를 머금고 서있는 국제 가족을...



1) 정치파동...1951년 피란 시절 부산에서, 대통령 선거 문제를 놓고 국회를 중심으로 정당끼리 정치 싸움을 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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