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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마을 이야기

아내 팔순기념집

by 최연수

멧새는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토끼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어느 토끼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다. 토끼는 황해도 사리원 클로버 벌판에서 깡총깡총 뛰어다녔다. 행운의 네잎 클로버를 찾는답시고, 해지는 줄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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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한 거북이가 나타났다. 바닷속 용궁 구경을 시켜준다는 것이다. 용궁! 가슴 설레는 이 말에 기다란 귀를 쫑긋거리며, 그만 그 등에 올라탄 것이다. 들뜬 가슴을 안고 용왕 앞에 나아갔다. 어? 내 간을 빼어 용왕님의 병을 고치겠다고?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꾀를 내었다. 간을 나뭇가지에 걸어두었노라고 둘러댔다. 그래서 육지로 되돌아왔다.

이렇게 북한 공산 정권의 꾐에 넘어가지 않고, 어릴적 아내의 식구들은 삼팔선을 넘어 남한으로 넘어왔다.

또다른 거북이가 다가와 달리기 경주를 하자는 것이다. 달리기라면 그 누구에게 지랴. 먼산 봉우리에서 휘날리는 태극기를 향해 뛰었다. 걸어가도 승리는 내것이지. 느림보 거북이를 힐끔 돌아보다가, 그만 푸른 잔디밭에서 느긋하게 누웠다, “만세!” 어, 저 거북이가? 하는 수 없다. 의대 간호학과에 입학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자퇴하고 말았다

“〜산 고개 고개를 나 혼자 넘어가 / 토실토실 알밤을 주워서 올테야”

노래를 흥얼거리며 산 고개를 넘어 갔다. 아! 널려있는 이 탐스러운 알밤. 이것으로 식구들이 넉넉히 먹을 수 있고말고. 바구니가 넘치도록 신나게 주워 담았다. 거북이와의 경주에서 진 것을 뼈아프게 느끼고, 이렇게 생존경쟁의 부산 국제시장에서 남에게 질새라 열심히 장사에 뛰어들었다.

“〜 겨울이 되어도 걱정이 없단다. / 엄마와 아빠와 여름 동안 모아논 맛있는 먹이가 얼마든지 있단다."

그런데 어둠이 짙게 내리면 이따금 마음이 허전했다. 하늘을 쳐다보면 뭇별들이 보석처럼 빛났다. 그리고 두둥실 보름달이 하늘에 걸리면, 저 마을엔 누가 뭘 하며 살까? 궁금했다. 계수나무 아래서 토끼가 오공콩콩 떡방아를 찧는다고? 그곳엔 거북이가 없을까? 그럼 나도 갈 수 있겠네?

동산에 달이 떠오르면 나도 두 손 모아 기도했지. 이렇게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평생 기도생활을 해왔다.

* 아내는 1939년 기묘년(己卯年) 11월 10일생 토끼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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