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내에게

다리 없는 다리(서간문집 / 편지 모음)

by 최연수

흔들거리는 구름다리


흔들 흔들

흔들거리는 다리.

후들 후들

후들거리는 다리.

넘어질세라 손 잡아주며,

핑계삼아 붙들어주며.

발 아래 바다에선

파도가 출렁대고,

구름 위에선

다리가 출렁대고.

함께 노래하면

신명나는 춤사위요.

토라져 혼자면

비틀거리는 구름다리.




제1신 -

사랑하는 아내에게


당신이 떠난지도 벌서 1주일이 되었구료. 그리고 내일 모레면 결혼 3개월을 맞게 되고. 그 동안 부모님과 언니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재미나는 나날을 보냈으리라 짐작되오.

떠날 때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서 마음이 놓이지 않지만, 모든 것을 부모님께 미루어버리고 믿으니 차라리 안심했었소. 진즉 편지 낼까 했으나, 그동안 조용한 생활을 하고 싶었고, 어제는 전화나 걸까 했는데, 번호 기록해둔 게 없어졌지 뭐요. 그래서 6월을 마지막 보내는 오늘 이렇게 펜을 들었다오. 이 편지가 닿는 날은, 하나님의 사랑과 가족들의 축하 속에서, 어머님의 생신을 맞게 될 것이고, 모두들 기쁨이 충만하리다. 몸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고, 모든 것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사위도 마음을 함께 하면서 주님께 기도드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 전해 주오.

여보!

당신 떠난 이튿날 아침에는 주황색 원추리 꽃이 일제히 피어나더니, 이어서 연보라 양귀비꽃과 빨간 따알리아, 그리고 파란 패튜니아 꽃이 다투어 피어나고, 토마토도 제법 굵어졌다오. 이제는 가지가지 꽃이 한창 필 달이 되었구료. 10년 동안 사람들과 입씨름을 하면서 머리를 앓았을 아내에게, 예쁘고 고운 꽃송이라도 가꾸어 보여주자던 소년다운 생각에, 올핸 더 손질을 하노라고 했는데, 혹시 당신의 비위를 거슬렀는지 모르오. ‘노틀담의 꼽추’가 사랑하는 집시여인을 위해서, 노틀담 사원의 벼랑에 피어있는 야생화를 꺾어 바치기 위해, 아슬아슬한 모험을 하던 것과 같이...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으리요마는 아무튼 당신이 떠나자마자 꽃들은 피는지... 꽃 이야기를 늘어놓고 보니 또 시시한 사람 되었수다.

어머니는 며느리를 보내놓고 ‘미숫가루’ 이야기를 합데다. 밥을 못 먹는 며느리에게 미숫가루라도 먹일까 했던가 보오. 보내놓고 너무 안타까워서 갈 때 들려 보낼 걸 생각을 못 했다고 아쉬어 한다오. 이것이 ‘물 한 그릇의 행복’이라 생각해주면 고맙겠소만.

내 이야기를 하라고? 글쎄 아무리 생각해도 이야기 꺼리가 없구료. 총각 행세를 했다고 할까? 그랬다고 질투할 당신도 아니니까 말이지, 사실 총각으로 환원된 것은 틀림없고, 또 총각 시절과 똑같은 느낌과 생각이 들어, 어느 때는 내가 결혼 했다는 사실조차 깡그리 망각할 때가 있다오. 그러나 잠자리가 허전한 것은 역시 결혼했던가 보구료. 그동안 혼자서 시간을 갖게 되었고, 따라서 지난 석달 동안을 회상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반성해볼 기회를 가졌다오. 느낀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많지만, 몇 마디로 말하라면 난 영원히 소년이요 풋감이라는 것과, 사랑은 영원한 신비요 수수께끼라는 것과, 결혼은 영원한 현실이요 곡예가 아니라는 것이오.

여보.

이 말을 듣고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까지야 없소. 당신은 그런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며...아무튼 당신 그 동안 수고 많았소. 어려운 가정에 시집을 오고, 부족하고 무능한 남편에게 의지하려다 보니까 괴로운 점도 많고 아니꼬운 점도 많았을 거요.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인내하고 이해하려고 애를 쓴 당신을 볼 때, 한없이 믿음직스럽고 감사하면서도,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어색해 하는 당신의 모습을 볼 때, 결혼은 역시 꿈이 아니고 현실이란 걸 절감하면서, 안타깝고 겸연쩍기 짝이 없었다오. 이렇게 서로 헤어져 있으면서, 그 동안의 생활을 거울 삼아, 앞으로의 생활을 조용히 설계해볼 시간을 갖게 된 게 차라리 다행스럽소.

상수와 건수도 여전하다오. 맛있는 음식과 군것질을 안 시켜주어 다소 불편(?)이야 하겠지. 참 영내가 사흘 후에 와서 어머니 일을 돕고 있다오. 언니가 보고 싶다고 애교를 부리는데, 아무튼 큰 도움이 되오. 2일에는 하향할 모양인데, 결혼을 결정할 가능성이 보이는구료. 언니가 있으면 살 것도 많은가 본데, 아쉬워 하고 전화라도 걸겠다고 하는데... 번호를 잊었구료.

그리고 렛시도 아줌마가 보고 싶다는 구료. 아마 병아리들도 그러나 본데....

오늘은 날씨가 맑았지만, 서울은 이제 장마철에 접어든 모양이오.

7월이 되면 나도 바쁠 것이오. 1학기 말이 되면 성적 낼랴....아주 바쁘다오. 아무튼 하나님 은총 받아서, 건강한 몸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하겠소.

자, 그럼 오늘은 이만 안녕!

’70. 6. 30 밤

당신의 남편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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