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2019년엔 노령 인구가 14.4%에 달할 만큼, 이미 고령화 사회로 들어섰다고 한다. 평균 수명도 2020년엔 81세로 내다보고 있다.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2009년 기준 한국인의 기대수명(신생아의 경우)은 남자 77세, 여자 83.8세이다. 70대는 청춘이라 하듯이, 아닌 게 아니라 요즘 70대 노인들을 보면 늙은 것 같지 않다. 의학이 발달하고 생활환경이 개선되면서, 기대 수명이 백수(白壽=99세)도 바라보게 되었다.
성경에 아담의 자손들은 수 백 년을 살았으며, 특히 므드셀라(에녹의 아들이며 노아의 할아버지)는 969세를 살았다고 한다. 한편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의 신화의 주인공인 길가메시는 영생불사를 찾아 헤매었지만 120세에 죽었다고 했다. 실제 인간의 수명은 120년 정도로 보고 있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프랑스의 잔 칼망(Jeanne Calment 1875-1997)인데, 122년 164일을 살았다고 한다.
이렇게 100세 이상 장수하는 사람에서는, 염색체를 보호하는 텔로미어(telomere)가 일반인보다 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연구 결과가 보도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텔로미어는 짧아지며, 이는 이것을 만드는 효소인 텔로머라제(telomerase)가 줄어들기 때문인데, 이를 길게 하는 연구가 진척(進陟)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얼마만큼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며, 장수하면 어떻다는 것인가? 그래서 노인학교의 강의 중 건강․장수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개인으로나 국가적으로 볼 때 고령화 사회가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없다면 오히려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00세를 살더라도 건강하지 않으면 복이 아니고, 120세를 살더라도 죽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장생불로초(長生不老草)를 구했던 진시황(秦始皇)도, 영생은 기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로마 신화에 나오는 새벽의 신 아우로라(Aurora)는, 죽을 운명을 타고난 애인 티토누우스(Tithonus)를 위해, 제우스신에게 자기 남편을 불사의 몸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러나 불로의 몸으로 만들어 달라는 것을 깜박 잊었다. 그리하여 티 토누 스는 소원대로 죽지 않고 늙고 늙어서 쪼그라들고 오그라들어도 죽지 못했다니, 생각할수록 끔찍하다.
비슷한 그리스 신화의 무녀(巫女) 시발레는, 아폴론 신의 사랑을 받아,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시발레는 한 움큼의 모래를 쥐고는, 모래알만큼의 수명을 달라고 했다. 그러나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젊음을 유지해 달라는 부탁을 잊었다. 때문에 늙어갈수록 몸이 점점 오그라져, 마침내 병 속에 담긴 채 동굴 천장에 매달려 있어야만 했다. T.S.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병 속에 담긴 채 매달려 있는 무녀에게, 소원이 뭐냐고 묻는 소년에게 ‘죽고 싶어’ 라 했다고 한다.
나도 드디어 80고개에 올라섰다. 평균(平均) 수명이 120세가 되고, 장수하는 사람은 150세까지도 가능하다니, 나의 내일을 알 수가 없다. 사람이 몇 살까지 살 수 있느냐는 우문(愚問)에, “죽는 날까지 살 수 있다”는 것이 현실적인 현답(賢答)이다. 그럼 얼마 동안 사는 것이 좋을까?라는 질문에 현답은 무엇일까?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할 때까지”이다. 이는 인도의 한 철학가가 알렉산드로스에게 말한 대답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현답이다.
내일은 내 것이 아니다. 때문에 오늘을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매일 컴퓨터 앞에 오랜 시간 앉아 있는 나에게 자녀들이 걱정을 한다.
“혹시 컴퓨터 중독 아니에요? 병원에 가보세요!”
“벌써 갔지. 그런데 더 하래.”
아닌 게 아니라 속도가 느릴 뿐만 아니라, 오자(誤字)․탈자(脫字)도 많다. 그리고 오래 하다 보면 눈이 시리고, 허리도 뻐근하다. 그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판을 두드린다. 최근 3,4년 동안 20여 권의 책을 펴냈다. 지난 세월 잡기장(雜記帳)에 써두었던 글들을 차마 태워버릴 수 없어 엮은 것인데, 모두가 나와 우리 집 이야기다. 시시콜콜하고 자질구레한 이야기임은 물론이다. 죽어서 무덤이나 비석․영정 남겨두면 뭘 하며, 추도 예배 드려준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잠깐 왔다간 발자국은 이것밖에 없다. 그림자였던 ‘나’는 흙으로 돌아가지만, 내 넋과 혼이 남아 있는 참다운 ‘나’는 이것이기에, 이 글을 읽으면 나는 죽은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죽으면 그만이지 뭘 그러느냐는 아내의 핀잔이 있지만, 치매(癡呆)의 진전을 예방하려는 뜻과 함께 이 일을 지금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