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아나 산이 된 2월이던가
꺼져서 바다 된 3월이던가,
땅이 주름 잡히던 그 무렵에
짓눌려 단단히 굳었습니다.
방산충 첫 울음 울고
해면이 태어나던 8월 어느 날.
조그만 숨구멍 한 개가
뚫렸습니다.
한창 비 내리치고
바위옷 뒤덮더니,
얼부풀어 금이 간 그곳에
뿌리털이 돋았습니다.
섣달 그믐 밤 10시 반
사랑 사랑이 영글 적에는,
앉은 자리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묵은 해 자락을 걷고
새해가 동트는 새벽에,
조상도 없는 꽃 한 송이가
간드러지게 피었습니다.
햇귀에 시름시름
시들더니만,
달빛에 바래지며
이내 졌습니다.
46억 년 긴 세월을
주름 잡아 1 년으로 살아오면서,
그리움 없이 살자던 것이
아쉬움 없이 살자던 덧이....
* ‘그림자의 발자국(1)’에 게재
46억년의 긴 지구의 역사를 1년으로 축소하면, 지각(地殼)은 2월 경, 원시 바다는 3월, 첫 생명 탄생은 8월, 첫 화석은 11월, 공룡(恐龍)은 12월 중순 경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류의 진화는 섣달 그믐날 밤 10시 반 경이라고 한다. 46억년이라는 세월이 너무 길고, 그 숫자 너무 커서 실감이 나질 않아, 1년으로 환산(換算)해 놓고 보니, 이해하기 쉽고 퍽 친근해진다.
모르긴 해도 바위의 역사도 지구의 역사와 같지 않을까? 46억년의 긴 세월 풍화작용(風化作用)을 거치면서 현재에 이르렀을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생명이 없는 바위가 무슨 감정이 있을 것인가? 그런데 오랜 풍화작용 끝에, 바위의 틈새에서 야생화(野生花) 한 송이가 피어났다. 무생물인 바위지만 어찌 감정이 없으랴. 그나마 이 꽃은 금방 시들어버렸으니, 무감각할 리가 있겠는가?
바위는 자신이 생물이란 걸 느꼈다. 동경(憧憬)도, 미련(未練)도, 희망(希望)도 없이, 무감각․무감정하게 존재할 뿐이라던 바위에게는, 한 송이 꽃 사건이야말로, 창세기 1장에 맞먹는 사건이었다.
만 22세였던 1957년 한 해가 저물 무렵, 뜻밖에 혼담(婚談)이 있었다. 누나의 친구인 동향(同鄕)의 S가 좋은 규수(閨秀)감이란 것이다. 아버지는 가끔 6.25 동란 때 당한 고문(拷問)의 후유증(後遺症)으로 장수하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장손(長孫)인 내가 조혼(早婚)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해 왔다. 마이동풍(馬耳東風)으로 들었던 그 말씀이 현실화 된 것이다.
나는 28,9세 쯤 되어야 생각해본다는 문제요, 고등고시에 합격한 이후에 하겠다는 계획이었으므로 물론 사양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얼른 수그러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