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방문이 열립니다.
“누구세요”
그러나 바람만
말없이 지나갑니다.
“땡그랑”
대문이 소리칩니다.
“엄마지요?”
그러나 바둑이가
꼬리 치며 들어옵니다.
“-숙아”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예-”
그러나 옆집에서
새어나온 소립니다.
“많이 기다렸지?”
내가 내게 묻습니다.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내가 내게 대답합니다.
* 196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50년대 말, 서울보통시라는 변두리. 문창학교로 전근이 되었다. 첫 순환근무제(循環勤務制)라는 이름으로, 귀양 아닌 귀양을 갔다. 열악(劣惡)한 환경에서의 교육은 더욱 힘들었다. 문화․문명의 사각지대(死角地帶)의 어린이들에게 연민(憐憫)의 정이 싹 텄다. 정서적으로 메마른 이들의 가슴속에 꿈을 심어주고, 그늘진 마음에 밝은 빛을 비춰주고 싶었다. 낮엔 뻐꾸기가 울고 밤엔 개구리가 합창하는 이곳이야말로, 때 묻지 않은 낙원(樂園)임을 일깨워 주며, 맑고 고운 노래와 글짓기를 가르쳤다. 학급신문과 학급문집을 만들고. ‘글잔치’도 열었다. 이들과 함께 나도 많은 글을 썼다. 동시․동화․동극....대부분 어린이를 위한 글들을 많이 썼다.
그리하여 1961년도 한국일보 신춘문에 동시부문에서 ‘집보는 날’이 당선되는 기쁨을 안았다. 아동문학가 李元壽․姜小泉 선생님은 ‘집 보는 아이의 심정’이 잘 그려져 있다고 심사평(審査評)을 썼다.
아동문학가가 되고, 신문 잡지사에서 원고 청탁도 들어왔다.
‘집 보는 아이’의 심정은 인간 심정의 축소판(縮小版)이다. 사람의 일생이란 무엇인가? 누구인가, 무엇인가의 기다림이다. 시간이 흐름으로 농도(濃度)가 짙어지면 초조와 긴장을 낳는다. 마침내는 인생이란 속아 사는 것이라고 체념(諦念)하면서, 독백(獨白)으로 막을 내릴 수도 있다.
잡힐 듯 잡힐 듯 하다가 놓쳐버린, 올 듯 올 듯 하는데 아직 안 오는 그 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