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멧새 1 28화

해 골

by 최연수

뚜두둑 뚜두둑

소낙비 쏟아지면

호박잎 따서 쓰고

치닫았지.

송골송골

이마에 땀이 맺히면

은행잎 뜯어서

부채질했지.


우산살 없는

우산 받쳐들고,

부챗살 없는

부채를 부치고...

안델센의 동화인가?

피카소의 그림인가?

차프린의 희극인가?


바늘 구멍으로 황소 바람이

들어오는 겨울,

문풍지조차 뜯긴 채

창살만 엉성한데,

움츠리며 떨만한

살 한 점이라도 있나?




나를 알자. 새삼스럽게 나는 누구냐고 스스로 물으며, 나에게 돋보기의 초점(焦點)을 맞추었다. 철학책을 뒤적이고 신학책을 펼쳐보고....깊이 파고들수록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존재이다. 의지는 꺾이고, 정열은 식고. 깎이고 깎여 점(點) 하나 만큼도 못한 존재임은 분명한데. 그렇다고 지워지지 않은 존재.

드디어 발견한 자아(自我)는 무(無)의 존재구나! 무지(無知)․무식(無識)․무능(無能)․무력(無力)....온 통 없는 것으로 점철(點綴)된 사람. 재력(財力)․권력(權力)․지위(地位)․명예(名譽)․인기(人氣) 하다못해 체력(體力)․매력(魅力)도 갖추지 못한 사람.

만신창이(滿身瘡痍)․피골상접(皮骨相接)은 썩을 살이라도 있지. 해골(骸骨)이 우산살 없는 우산을 받치고, 부챗살 없는 부채를 부치고 있는 모습은 동화(童話)도 회화(繪畵)도 희극(喜劇)도 아니다. 더구나 문풍지 조차 너덜너덜 찢긴 채 창살만 엉성한 문으로 삭풍(朔風)이 들어오는데, 앙상하게 누워있는 해골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호박잎 쓰고 소나기를 피해 달음질했던 옛날. 은행 잎 주워 들고 부채질했던 옛날. 동화 같은 과거를 회상한들 뭘 하랴. 이 냉엄(冷嚴)한 현실! 이 마른 뼈에 살이 붙고 힘줄이 생기는 기적(奇蹟)이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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