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멧새 1 27화

분홍꽃

by 최연수

間色 계절에 핀 꽃이기에

내 숙명은 분홍.

눈 같은 아쉬움 속으로

그리움이 피처럼 스며든 꽃.


발갛게 물들지 않을 바엔

차라리 하얗게 바래지지,

갈 줄 모르는 계절이여,

오지도 않는 계절이여.


아, 지루한

중립지대에 뿌리 내리는

조산된 혼혈아.

웃음도 울음도 아닌 얼굴로

피었다가 져야만 하는가?

間色 계절에 핀 꽃이기에




겨울에서 봄으로 옮겨가는 환절기(換節期)를 싫어한다. 을씨년스런 날씨와, 옷소매 속으로 스며드는 으스스한 바람, 더구나 꽃시샘하는 황사(黃砂) 바람이 싫다.

겨울이 간 것도 봄이 온 것도 아닌 간색(間色) 계절, 그래서 이 계절에 핀 꽃들은 분홍색일 것이다. 눈 처럼 흰색도 아니고, 익은 고추처럼 빨간색도 아닌 간색. 그래서 진달래나 복숭아꽃이 분홍색일까?

155마일 휴전선(休戰線)에는 긴장(緊張)의 철조망(鐵條網)이 쳐있고, 중립지대(中立地帶)에는 어정쩡한 간색 혼혈화(混血話)가 피어 있을 것이다.

내가 서 있는 좌표(座標)는 중립지대. 내가 서 있는 현재는 간색계절. 이 곳 이 때에 피어있는 나는 분홍색 혼혈화이다. 연못에 비추인 내 모습이 수선화(水仙花)가 아닌 혼혈화였다니....빨갛게 염색(染色)되지 않을 바엔 차라리 하얗게 표백(漂白)이나 되지....

완전히 단절(斷切)된 과거도 아니고, 완전히 용접(鎔接)된 미래도 아닌 엉거주춤한 현재. 이상과 현실의 갈등 속에서 빚다가 만 자화상(自畵像). 긍정(肯定)하기엔 너무 초라하고 부정(否定)하기엔 너무 귀한 존재. 생명을 예찬(禮讚)하기엔 너무 고달픈 삶, 죽음을 미화(美化)하기엔 너무 귀한 삶.

아, 나는 버림 받은 트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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