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장 - 정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제23장 - 정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by 리얼흐름


카페 디알로고스의 오늘 배경음악은

오래된 재즈였다.

진우는 일부러 그 곡을 골랐다.

느슨하지만 예측 가능한 구조.

그 예측 자체를 빗나가는 것도 재즈의 매력이었다.

정의란 것도 어쩌면 그렇게 작동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손님은 존 롤스.

넥타이를 반쯤 느슨하게 맨 채,

수첩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정의란 공정함입니다.

우리는 '무지의 장막' 뒤에서

자신이 어느 위치에 설지 모르는 상황에서

원칙을 설정해야 합니다.

그게 진짜 공정함이죠.”


라빈이 물었다.

“하지만 세상은 장막 없이 시작되잖아요.

그 불공정한 출발은 어떻게 되나요?”


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정의는 결과보다 절차에 있습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불평등을 허용하되,

그 불평등이 가장 불리한 이들에게도

이익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손님은 플라톤.

흰 튜닉, 절제된 말투, 깊이 있는 눈빛.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정의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전체의 질서입니다.

각자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때,

사회는 정의로워집니다.

정의는 덕의 총합입니다.”


진우가 물었다.

“그럼 억울한 소수의 고통도 질서 속에 포함되나요?”


플라톤은 대답했다.

“그 고통이 전체 조화를 무너뜨리지 않는 한,

그 또한 하나의 기능일 수 있습니다.”


그 순간, 마지막 손님이 들어섰다.


카페디23존롤스플라톤아말클루니.png


아말 클루니.

간결한 검정 슈트,

노트북 대신 종이 문서를 들고 있었다.

“현장에서 보면 정의는 개념이 아니라 투쟁입니다.

나는 법정에서 ‘진실’을 변호하지만,

때론 그 진실이 ‘정의’와 충돌하기도 하죠.”


라빈이 조용히 말했다.

“그럼 법과 정의는 다른 건가요?”


아말은 고개를 끄덕였다.

“법은 시스템이고 정의는 이상입니다.

그 둘이 만날 때도 있고 엇갈릴 때도 있어요.”


롤스는 잊힌 단어가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정의를 포기하면,

남는 건 힘뿐입니다.”


플라톤은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정의는 국가의 혼이자,

인간 내면의 질서입니다.”


아말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정의는 말이 아니라 싸움입니다.

나는 오늘도 그걸 믿고 변호사석에 앉습니다.”


진우는 노트에 적었다.

‘정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 질문이 사라지는 순간,

정의는 힘의 다른 이름이 된다.’


만일 오늘 손님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왔다면

비례적 정의에 관하여 말했을 것이고

로크와 루소가 왔다면

개인의 권리를 위한 정의를 말했을 것이다.

혹은 니체가 왔다면 특유의 딱딱함과

완고함이 느껴지는 어투로

'정의라는 개념은 약자들이 강자를

억제하기 위해 만든 노예의 도덕'이라는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의 말속에는 정의가 있었으나

그 정의는 아마도 각자의 정의였을 것이다.


현실의 정의는 대체로

'정의롭지 않은 자들의 정의'일까? 아니면

'힘없는 자들이 마지막으로 기대는 희망'의

다른 이름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정의되지 않는 정의들이 창 밖의 눈송이처럼

규칙 없이 흩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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