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장 - 윤리는 절대적인가, 상대적인가

제24장 - 윤리는 절대적인가, 상대적인가

by 리얼흐름

진우는 오늘 아침 커피콩을 두 번 갈았다.

처음 간 것은 너무 거칠었고,

두 번째 간 것은 약간 부드러웠다.

그 사이 어디쯤이 정답일까

그는 커피뿐 아니라,

삶에서도 같은 생각을 자주 했다.


첫 번째 손님은 임마누엘 칸트.

검은 코트, 단정한 머리.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다.


“윤리는 절대적입니다.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어야 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예외는 없습니다.”


라빈이 물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예외투성이 아닌가요?”


칸트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예외를 허용하는 순간,

윤리는 계산이 됩니다.

윤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입니다.”


곧이어 문을 연 이는 질 들뢰즈.

짙은 자주색 셔츠, 무심한 듯 깊은 표정.

그는 앉으며 이렇게 말했다.


“윤리는 고정된 법칙이 아니라,

흐름 속의 관계입니다.

‘되기(becoming)’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갱신하는 움직임이죠.

윤리는 차이 속에서 생성됩니다.”


진우가 조용히 물었다.

“그럼 ‘항상 옳은 행동’이란 존재하지 않나요?”


들뢰즈는 웃었다.

“‘옳음’ 자체가 매 순간 달라지는 거죠.

어제의 선이 오늘의 폭력이 될 수도 있어요.”


그 순간, 마지막 손님이 들어왔다.


카페디24칸트들뢰즈셰리터클.png


셰리 터클.

테크놀로지와 인간 사이를 관찰하는 눈빛,

그리고 손에 쥔 스마트폰.

“오늘날 윤리는 네트워크를 타고 흘러 다녀요.

좋아요, 공유, 차단...

우리는 즉석에서 윤리 판단을 내리고 즉시 잊습니다.

윤리는 지속적 사고가 아니라,

반사작용이 되어가고 있죠.”


라빈이 조용히 말했다.

“그럼 우리는 지금 ‘윤리의 시대’에 살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윤리의 부재 속에?”


터클은 말했다.

“아마도 우리는 ‘윤리 피로’ 속에 살고 있어요.

끊임없이 판단해야 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자주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죠.”


칸트는 입술을 조금 열며 말했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 원칙을 필요로 합니다.”


들뢰즈는 고개를 느리게 저으며 말했다.

“그럴수록 더 자유로운 ‘되기’를 시도해야 하죠.”


진우는 그들의 대화를 턱을 괴며 듣고 있었다.

아니 보고 있었다는 편이 더 옳을 것 같았다.

그동안 카페에 온 손님들 중

절대적인 윤리는 아마 칸트, 플라톤 혹은

종교관련된 인물들이었을 것이고

상대적인 윤리를 강조했다면

니체나 피터싱어 혹은

여러 인류학자들이었을 텐데

정작 본인은 윤리에 관해

심도 있게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절대적이라는 것

즉 종교적 윤리를 통한

마녀사냥이나 동성애 처벌등의 문제는

타인을 억압하는 도구가 될 수 있고,

모든 게 상대적이라면 어떤 악행을 저질러도

'문화적 차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거짓말은 절대 안 된다는 칸트의 말과

'타인을 구하려는 선의의 거짓말은 필요하다'는

관점의 차이와

살인은 안되지만

'방어를 위한 전쟁에서의 살인은 된다'라는 차이 혹은

'자살은 신이 말한 것처럼 절대 죄악이고 안된다'라는

입장과 개인의 자기 결정권과의 입장차이....


한참을 생각하던 진우는 노트에 적었다.

‘윤리는 언제나 옳아야 한다는 강박과,

언제나 달라야 한다는 자유 사이에서

조용히 흔들리는 저울이다.’

결국 윤리는 문화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인간의 고통, 존엄, 평등,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보편 윤리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맑은 날이, 비 오는 날이, 눈 오는 날이

바른 날씨라는 정답과 기준이 될 수 없듯이

정답 혹은 기준과 정의가 없어도,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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