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장 - 기술은 구원인가, 감옥인가
카페 디알로고스의 와이파이는 오늘 꺼져 있었다.
진우는 의도적으로 공유기를 껐다.
조금 불편해도,
오늘은 기술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남는지를 보고 싶었다.
첫 번째 손님은 마셜 맥루언.
도톰한 니트 조끼, 손엔 오래된 타자기 자판 하나.
그는 앉자마자 말했다.
“기술은 인간의 확장입니다.
바퀴는 다리의 확장, 전화는 목소리의 확장,
그리고 미디어는
감각 전체의 구조를 바꾸죠.”
라빈이 물었다.
“확장이 우리를 더 자유롭게 만들까요?”
맥루언은 웃었다.
“자유롭지만은 않죠.
확장은 동시에 마비이기도 해요.
기술은 우리가 보는 방식뿐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까지 바꿉니다.”
곧이어 자크 엘륄이 들어섰다.
검은색 코트, 무거운 눈빛.
그는 말없이 앉아,
진우가 내린 커피를 오래 바라보았다.
“기술은 도구가 아닙니다.
그건 자율 시스템이며,
자체 논리로 진화합니다.
인간은 점점 기술에 맞춰 자신의 가치를 조정하죠.”
진우가 물었다.
“기술을 통제할 수는 없나요?”
엘륄은 단호히 말했다.
“기술은 통제당하지 않습니다.
그건 중립적이지 않고,
항상 효율과 기능을 중심으로 작동합니다.
우리는 기술이 허락한 만큼만 인간일 수 있습니다.”
그때 셰리 터클이 들어왔다.
노트북을 겨드랑이에 끼고 그녀는 조용히 앉으며 말했다.
“기술은 외로움을 줄이려 했지만,
우린 이제 고독조차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었어요.
‘연결됨’이라는 환상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잊고 있죠.”
라빈이 물었다.
“그래도 기술이 없었다면
지금 이 대화도 불가능했을 텐데요?”
터클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래서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기술을 통해
무엇을 회피하고 있는가에 있어요.
진짜 만남, 진짜 생각, 진짜 침묵을요.”
맥루언은 한 마디 덧붙였다.
“기술은 거울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자주 우리 자신을 잊고,
때론 새롭게 발견하죠.”
진우는 노트에 적었다.
‘기술은 구원이기도 하고, 감옥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열쇠는 언제나 인간이 쥐고 있다.’
카페 안에선 종이책 넘기는 소리대신
맥루언이 두들기는 구식 타자기 소리가 울렸다.
아날로그적 소리의 타자기 리듬은
오래된 연주와 같았다.
전자음이 사라진 시대란
무언가 아련한 감정을 가져오는 것 같았다.
카페 안의 모든 사람은
아날로그적 리듬에 집중하고 있었다.
밤이 늦어지고 새벽이 올수록
더욱 선명하게 들렸고
모든 사람들은 타자기의 소리에 맞춰
자신의 기억들을 꺼내놓고 있었다.
그리고는 떠오르는 각자의 추억에 맞는
이미지들이 흘러가도록 놔두었다.
그 이미지들을 오래 붙잡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하나둘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선명해지는 건 분명히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