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과 묘사
자!
빛을 내주던 나의 오랜 벗, 그 생김생김을 더듬어본다.
두 손으로 잡아야 감쌀 수 있는, 정육면체보다 조금 더 긴 사각기둥을 바닥에 눕히고 그 한쪽 끝의 사각 면을 없앤 후 둥근 원형면을 결합하자.
그러면 한쪽 면은 원형이고 반대쪽 면은 사각인 입체적인 물성이 있는 어떤 모양이 될 것인데 원형면과 사각기둥은 바로 결합할 수 없으므로 원형 면이 사각기둥보다 살짝 더 크게 설계되어 이 부분의 면이 좁아져 가면서 차츰 변형하여 사각기둥과 이어지는 구조가 된다. 위쪽에는 쥐고 이동하기 편하도록 디귿을 오른쪽으로 모자처럼 돌려세워놓은 손잡이가 이어져있다.
둥근 원형과 손잡이 사이엔 까만 고무로 덮인 딸깍 하고 누를 수 있는 동그란 스위치가 하나 있다.
한쪽의 원형면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고 그 안쪽엔 깔때기 모양의 은빛 원뿔을 원형면의 유리 가장자리부터 안쪽으로 파 넣었는데 그 꼭짓점쯤엔 촛불 모양의 전구가 외려 안쪽으로부터 조그맣게 솟아 나와 있다.
원형면의 유리와 본체를 결합하는 검은색의 테두리는 돌려서 열 수 있는 너트형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이걸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리면 빛을 모아주는 깔때기 모양의 반사경과 전구는 하나로 결합되어 있어 한꺼번에 분리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리 후 안쪽을 보면 플러스 마이너스의 용수철이 두 개 솟아난, 제법 크게 자른 백설기만 한 사각형 건전지가 들어있었다. 전체를 보자면 이것은 일반적으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으며 빨간색이 가장 흔하고 노랑과 파랑, 녹색등 선명하고 진한 색으로 된 것들이 많다.
가로등이 없는 마을에 밤이 오면 후레쉬는 가장 믿을 만한 친구다.
슬레이트 지붕아래 걸려있는 주황색 전구는 변소 가기 무서운 아이들이 마당 가장자리에 급히 볼일보고 생쥐처럼 잽싸게 방으로 도망칠 수 있을 정도, 딱 그 정도의 어둠만 간신히 밀어내고 있을 뿐, 앞과 뒤를 막은 산들의 허리께서 밀려내려와 마을을 덮은 어둠은 짙고 무거웠으며 밀도를 만져보면 마치 검정이 묻어날 듯하여 저녁 먹고는 하냥 잠들어 새벽에 일어나는 농부들의 통금 배경이 되었으며 해가 지면 되도록이면 외출을 삼가야 한다는 자연이 부여한 이유가 되었다. 그래도 마음이라는 건 어떨 때는 어둠이 내리면 소옥소옥 간질간질할 때가 있어서 사람들이 무슨 일로 다니느라고들 분주할 때 먼 길 저편의 어둠 속에서 후레쉬 불빛이 동동 뜨고 그 빛이 휙휙 스치며 눈동자를 쨍쨍 찌를 때 사람들의 들뜬 목소리는 거기에 같이 묻어온다.
나는 언제부터 어둠을 무서워했을까. 아이들이라고 처음부터 어둠을 무서워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만질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는 개념은 어떻게 자리 잡게 된 것인지 그 시작을 알 수 없다. 말 잘 안 듣고 울고 떼쓰면 호랑이가 물어간다는 말과 또 망태할아버지가 데려간다는 말을 들었겠고,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소복을 입고 입가에 피를 흘리는 처녀귀신과 꼬리 아홉 개가 있다는 구미호,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내 다리 내놔!'를 반복하며 숨 막힐 듯 가까이 좇아오는 조선판 좀비도 모두 오싹 오싹 무서웠다.
그런데 그렇게 무서운 밤이 왔는데도 심부름이든 뭐가되었든 어쩌다 어둠을 밀며 그 속에 들어가야 하는 일이 있으면 '스위치 온' 한 번에 밝은 빛을 앞으로 쏟아내는 듬직한 휴대용 후레쉬는 이 모든 악과 어둠의 세계를 낮처럼 뚫어내 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신기하고도 정다운 옛 물건이었다.
가끔씩 티브이에서 '몇 년에 한 번 오는 우주쇼'와 같은 타이틀로 모월 모일 몇 시부터 유성우가 하늘에서 쏟아질 예정이라는 뉴스를 보면 어린 시절 올려다본 밤하늘의 강, 빛나는 흰모래들이 빽빽하게 이어지다 성기게 흩어지면서 느리게 굽이치고 그 옆에 점점이 푸른 별 붉은 별과 노란 별들이 아롱이며 섞여있던 은하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 밤의 하늘에 문득, 은하수의 물줄기보다는 투명한, 몇 겹은 지구로 앞으로 다가온 어떤 한 지점에서 주욱 사선을 그으며 내리꽃히던 하늘을 베는 섬광, 그리고 그것을 봉합하는 어둠, 그때 보았던 별똥별들의 잔상은 예리한 칼에 베었던 얇은 실금이 발갛게 돋아 올라오듯이 어떨 때 새까만 어둠과 하늘을 만나게 되면 어린 날의 시린 아릿함으로 떠올라오는 것이다.
그때 그날 밤, 나는 후레쉬를 갖고 나가서 하늘로 빛을 올렸다.
깜빡깜빡 떨고 있는 별들을 보며 빛은 빛의 속도로 오니 나도 그에 대한 반응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나는 하늘의 별들을 올려다보며 어느 한 별을 점찍고 그 별을 향해서 딸각딸각 빛을 올렸다.
만약 저 별에 나와 같은 어느 누가 살고 있다면 분명히 이 빛의 신호를 보리라.
그것이 비록 얼마큼의 시간이 흐른 뒤에 거기에 도착할지 모르지만.
오늘 밤 내가 오래 본 어느 한 별이 밝았다가 흐렸다가 깜빡, 그리고 깜...... 빡 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내가 빛을 올린 별에 살고 있는 시인이 보내주는 모스부호와도 같은 알 수 없는 답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