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nt of no Re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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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가시는 건 자유지만, 출처를 명기해 주세요)
[엔드지크] 시리즈
제1부 철혈의 지배
1944년의 장
제3-3장. 노르망디 상륙작전 : Point of no Return
영연방 측의 회의 소집 요청에 연합원정군 최고사령부의 수뇌부가 다시 모였다.
사령관 아이젠하워가 도착했지만 회의는 시작되지 않았다. 실무자들은 말이 없었다.
영연방 측 인원들도 소집 이유를 몰랐다.
말없는 분위기 속에서, 칠판과 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지도와 상황판이 그들을 내려다봤다.
얼마 뒤, 오늘 회의의 주최자, 엘런 브룩 제국 참모총장이 왔다.
아이젠하워는 그의 표정을 읽고자 했지만 그는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동석한 해군참모총장 커닝엄과만 시선을 교환했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신사 여러분. 작전중으로 모두 바쁠 테니 빠르게 용건을 말하겠소.
현 시간부로 영연방군은 이 작전을 종료하겠소.
이것은 현지의 작전지휘부와 전시내각의 통일된 결론이오."
침묵. 아니, 소리 없는 절규가 울려 퍼지는 듯했다.
답변할 단어를 신중히 고르는 아이젠하워 대신 그의 참모장 월터 베델 스미스 소장이 먼저 답했다.
"이건 배신이오. 우리는 동맹이잖소! 이런 태도는 동맹군을 대하는 게 아니오!
당신들 제국군의 철수 통보일 뿐이잖소!"
그의 고성에 회의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졸다가 갑자기 일어난 누군가가 엎었는지 참모진 책상이 시끄러웠다.
"배신이 아니오. 작전한계점에 도달한 부대를 철수시키는 거지.
그런 표현은 상당히 불쾌하군. 수정하시오, 참모장."
커닝엄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크지는 않았으나 회의실에는 잘 울려 퍼졌다.
"인정하겠습니다. 참모장, 방금 발언을 수정하세요."
아이젠하워의 말에 스미스는 잠시 얼굴을 붉혔다.
"... 예, 수정합니다.
영연방군의 철수는 연합군의 단결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판단을 재고해 주시길."
"이미 작전부대에 적과의 접촉을 단계적으로 감소시키라는 지시가 하달되었소.
그리고 전시내각은 이미 결심을 내렸소. 재고는 없소."
"이것이 철수라면 다음 부대의 투입은 언제입니까? 예정은 되어있습니까?"
아이젠하워가 물었다.
"계획 중이오. 아시겠지만 영연방군은 세계 각지에 퍼져있으니,
이를 소집하거나 재훈련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지.
다음 투입할 부대의 준비가 완료되면 그때 통보하겠소."
브룩이 답변했다.
아이젠하워는 그의 표정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계획? 소집? 재훈련? 이미 혈전 중인데?
"이건 이미 군의 문제를 떠났습니다. 정치인들과 국가 수뇌부의 문제입니다.
일단 회의를 잠시 멈추죠. 그리고 내일 다시 이야기합시다.
이런 중차대한 일은 바로 결단할 수 없으니까."
"그러도록 하시오. 미국 측만 의견 조율하면 될 거요.
이미 그쪽으로도 통보되고 있을 테니까."
"그럼 다른 문제를 논의하는 건 어떨까요?
예를 들어, 거의 완공된 인공항 멀베리 B는 어떻습니까."
"그것은 실무 차원에서 논의해 주시오. 추가적인 용건이 없다면 우린 가보겠소."
브룩과 커닝엄은 함께 일어나서 회의장을 나갔다.
남은 이들은 말없이 서로를 쳐다봤다.
얼마 뒤, 벨소리가 울리고 다과가 들어왔다. 주인 잃은 다기들만이 조용히 연기를 피워 올렸다.
하루동안 런던과 워싱턴을 오가는 수백 차례의 통화가 지나갔다.
이번엔 미국 측에서 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왜 철수한다는 결정을 내린 거요? 왜 상의도 없이 그런 결정을!"
스미스 소장이 포문을 열었다.
"영연방군의 힘들고 고된 싸움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먼저 전선에서 용감히 싸우는 그들에게 격려를 보내며 질문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작전이 시작한 이후 여러 번의 연합참모회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어째서 상의하지 않았습니까?"
아이젠하워도 거들었다.
"영연방 측은 회의 간 지속해서 말했소.
무모한 작전, 이대로 진행할 수 없다. 대형 항구를 확보하지 못하면, 작전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1제파 병력만으로는 캉 돌파가 어렵다고도 했지."
커닝엄이 말했다.
"그리고 작전 실시 후에도 계속 말했소.
기상, 공수부대 등. 이 작전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맨 거요."
제국 참모총장 브룩이 덧붙였다.
"양 측의 입장 모두 이해됩니다. 하지만 양 측의 합의 하에서 작전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서로 간의 대화로 풀어나갑시다. 연합의 단결 없이는 어떠한 성과도 없잖습니까."
연합원정군 부사령관, 아서 테더 공군 대장이 말했다.
"부사령관님, 잠시. 당신들 지금 뭐라는 거야! 첫 단추부터 잘못 꿰매었다고?
그 말 다시 해보시오! 해보라고!"
스미스가 폭발하듯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작전이 무모하다? 돌파는 힘들다? 그때는 당신들 그렇게 말 안 했어!
지금 와서 감히 작전을 부정한다고...."
"참모장님, 참모장님. 화를 가라앉히시고... 연합의 단결. 대화와 협치로 해결하죠..."
테더가 손을 들고 말했다.
"회의실에서 고성에 고함에 삿대질? 당신. 퇴장하시오, 그게 아니라면 발언하지 마시오."
커닝엄이 차갑게 말했다.
"그는 저의 참모장입니다. 발언이나 퇴장은 저가 결정합니다.
참모장, 조금만 진정하시오."
"영연방 측은 딱히 더 할 말이 없소.
이미 철수지시가 오늘 아침 하달되었고, 부대는 철수를 시작했소.
철수 간 당신들에게 신세는 안 질 테니 걱정 마시오."
브룩이 말했다.
"이동 중인 병력은 적 공중공격에 취약하니까요.
항공 엄호를 더 배정하는 건 어떻습니까? 해상 엄호도 필요하겠지요."
테더가 말했다.
"이미 제공권과 제해권은 확보했잖소.
연합원정군 사령부는 미군 측이나 지원하시오."
"캉. 캉 돌파가 문제라면... 저흰 협력할 수 있잖습니까?
사령관님, 캉 돌파에 공군력을 집중시키는 건 어떨까요. 물자도 보급하고요."
테더 원수는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나가려 노력했다.
"이런 방법도 있겠군요. 돌파 시도를 중단하는 겁니다. 인공항 멀베리 B는 이제 완공되었습니다.
저희는 대형항구 없이도 물자 보급이 가능하다는 걸 곧 입증하겠지요."
"결국 전격적인 돌파 시도는 무모했다는 것을 부사령관도 인정하는 거요?"
듣고 있던 브룩이 갑자기 한마디를 던졌다.
"네? 그건 무슨 뜻으로...?"
"돌파 시도를 멈추고 방어태세로 전환하라는 건
최초 작전이 무모했다는 걸 인정하는 발언이냐고 묻는 거요."
"..."
"참모총장. 그 추궁의 저의는 무엇입니까. 왜 갑자기 전체 작전을 들먹이는 것인지?"
곤란한 표정의 테더 대신 아이젠하워가 대답했다. 그의 표정이 굳었다.
"내 말은, 전격적인 캉 돌파 시도가 무모했다는 거요.
역시 코탕탱 반도 고립과 셰르부르 점령에 집중해야 했다던가. 애당초..."
"만약에, 애초에… 이런 표현 좀 쓰지 마시죠!
부사령관께서도 말했잖소! 우리 모두 동의한 거라고!"
참모장 스미스가 다시 외쳤다.
"그쪽에서 일정 확립이나 물자의 주도권을 지녔으니 어쩔 수 없잖소."
"결국 당신들이 캉 돌파에 실패해서 손실이 크니 못하겠다는거잖소! 그걸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거고!"
"자, 다들... 진정합시다.
저희가 회의실에서 다투고 있으면 전투 현장에서 분투하는 브래들리 장군이나 몽고메리 장군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들과 장병들을 봐서라도..."
테더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그래, 맞소. 인정하지. 전략폭격까지 쏟아부었다만 돌파하지 못했소.
그러니 애당초 영연방군을 주공 삼아 캉으로 보낸 게 잘못이란 거요."
"주공? 캉 축선과 카랑탕 축선은 동일한 수준의 적 저항을 고려했소!"
"양 군의 물자 보급 능력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었소."
"자꾸 물자 물자 말씀 하시는데,
그 당신네 제국군이 미합중국의 무기대여법에 의해서 기능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시오!
제국 자체도!"
"참모장!"
아이젠하워가 크게 외치며 그의 말을 끊었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스미스의 표정이 굳었다. 곧이어 입술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그는 조용히 후회했다.
침묵 속에서, 브룩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신네 양키들이 오기 전까지, 우리 영연방은 피를 흘리며 유럽을 지켜냈소.
간신히 지탱하고 있었지. 그래. 제국은 고사 직전이었소.
인정하리다. 무기대여법. 랜드리스. 큰 도움이 되었지. 그것도 인정하겠소."
"네, 영연방의 고된 분투는 저희도..."
브룩은 아이젠하워의 말을 끊고 말했다.
"하지만 말이오. 우리에게도 우리만의 긍지가 있고 명예가 있소. 빌어먹고 사는 것들?
이게 회의장에서 한낯 소장 놈의 입에서 나올 소리야!"
"... 참모총장,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닙니다.
발언을 정정하지요. 실언을 정정할 기회를 주십시오. 제 실수입니다."
고개를 숙인 채 스미스가 말했다.
"나가. 당장 여기서 나가라고! 나가지 않는다면 우리가 나가겠다."
"... 참모장."
"제 실언이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개인적인 실언이었고, 연합원정군사령부나 연합참모회의,
혹은 미합중국의 어떠한 의견도 반영하지 않습니다. 부디 이 점만은..."
영국 측의 대답은 없었다. 스미스는 회의실을 나갔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테더마저도 입을 열 수 없었다.
공은 다시 영국에게 넘어갔다.
"우리도 하려면 할 말이 아주 많소. 선거라던가, 정치라던가.
하지만 더 말해 뭐 하겠소. 연합은 끝났소.
최소한 군사적인 분야에서는, 우리는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소."
브룩이 말했다.
연합원정군 사령부의 그 누구도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방금 연합원정군 사령부가 그 기능을 상실했으니까.
"... 그럼 이것으로 현지 상황의 보고를 마칩니다.
요약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군은 카랑탕을 혈전 끝에 점령하였습니다.
인공항 멀베리 A는 아직 운영 불가, 멀베리 B는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 영연방군은 말씀드린 대로 실제로 철수 중에 있습니다."
미합중국 육군 참모총장, 조지 마셜 대장이 보고를 마쳤다.
마셜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방 안엔 시계 초침 소리만 들렸다.
루스벨트는 안경 너머로 서류를 내려다본 채, 입술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침묵을 지키자, 다른 참석자가 발언을 이었다.
미합중국 해군참모총장. 어니스트 킹 제독.
"저희는 아직 해상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해군의 적은 독일이 아니라 날씨뿐입니다.
바다에서 그들은 우리를 이긴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인공항이 가동되기 시작했습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루스벨트를 바라봤다.
"영국? 이미 우리를 버린 그 배신자들을 논할 가치도 없습니다.
그 녀석들은 이제 전쟁이 끝나는 그날까지 오늘을 후회하며 자신들의 작은 섬에 박혀있을 겁니다.
이 작전의 준비부터 실행까지 들인 엄청난 노력, 그걸 잊어선 안됩니다.
철수는 지연이 아니라 곧 실패입니다.
그리고 유럽 해방에 두 번째 기회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각하."
"좋소. 영국은 빠졌고, 인공항 하나에 우리 병사 전부의 목숨을 걸란 말이지."
미합중국 대통령,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마셜. 솔직히 말해주시오. 그 보급품이 7월을 버틸 수 있습니까?
아니면 이 회의가, 오늘 밤이, 미국의 장례식이 될 것입니까?"
"상륙부터 카랑탕 확보까지 병력들은 쉼 없이 전투했습니다.
당장 증원이나 보급의 신속한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솔직히 답해주시오."
"현재의 전투지속능력으로는 대규모 반격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어디선가 작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루스벨트는 조용히 휠체어의 다리를 두드렸다.
"홉킨스."
"네. 각하."
대통령 특별보좌관 해리 홉킨스가 답했다.
"영국의 철수는 아직..?"
"정식 발표는 아직이지만, 언론이 곧 눈치챌 겁니다.
그 순간, 의회와 국민 여론은 우리가 홀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건... 최악이야..."
루스벨트는 떨리는 손으로 안경다리를 잡았다.
그는 조용히 안경을 내려놨다.
"유럽 탈환의 사명을 방기 해서는 안됩니다.
어떻게든 교두보를 유지하죠. 최소한 11월 선거까지는 그래야 합니다."
홉킨스는 방 안의 무거운 침묵을 깨며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마셜은 눈을 감은 채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었다.
군인의 본능과 정치의 명령 사이에서 대답할 말을 잃고 있었다.
킹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정치적 이유로 군을 구속해선 안되지요. 선거가 아니라 다른 목적이나 이유를 제시하시오."
"그러니까 유럽 탈환의 사명을..."
"국민 앞에 그것을 뭐라고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국민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됩니다."
루스벨트가 말을 끊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고뇌가 가득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홉킨스가 대신해줬다.
하지만 장군과 제독들은 거부했다.
그는 결심을 내릴 수 없었다.
"우리는 국민을 속일 수 없소. 그러나 국민을 버릴 수도 없다.
내일 다시 논의하도록 합시다. 내일 모일 때는 좀 더 희망적인 정보가 있다면 좋겠소..."
루스벨트가 말했다.
킹과 마셜이 이야기하며 나갔다. 홉킨스는 조용히 루스벨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대통령과 대화를 시작했고, 집무실의 문은 굳게 닫혔다.
아직 저녁이라기에도 이른 시간이건만, 납빛 하늘이 마을을 덮었다.
강풍이 몰아치자 병사들은 갈대처럼 흔들렸다.
"전사자나 사살한 프리츠한테서 무기나 탄약을 모아라!
내일이 오기 전에 여기 방어선을 친다. 경미한 부상자도 거들어!"
전사한 소대장 대신 소대를 지휘하는 중사가 외쳤다.
그의 호통에 지쳐 흩어져 있던 소대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보급품. 특히 탄약과 의약품, 차량. 도대체 언제쯤 도착하는 거지?"
교회를 개조한 연대본부에서 연대장이 말했다.
"멀베리 B에 계류 중이다가 조금 전에 해안에 하역했을 겁니다... 우선순위는..."
"우선순위는 무슨 우선순위야!
연대 전투력이 절반인데 당연히 우리 연대지! 누가 뭐라 하면 나 바꿔!"
"여기 기관총 설치할게. 30 구경 탄 좀 줘."
기관총사수가 부사수에게 말했다.
"저기, 상병님. 열두 발 남았는데요."
"에라이... 집어 쳐. 담배는?"
"마침 두 개비 있는데요. 같이 피실래요?"
"그래. 고맙다."
"너무 아파... 목말라... 모르핀과 물, 그중 하나라도 제발 줘..."
의무텐트에 누워있는 부상병이 중얼거렸다.
"미안해... 둘 다 없어서... 일단 출혈부터 막자."
의무병이 그의 상처에 설파제를 부었다. 마지막 비축분이었다.
그 순간, 부상병의 비명조차도 덮는 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은 포탄 소리인 줄 알고 엎드렸다.
하지만 천둥소리였다.
그 천둥을 신호로, 납빛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장대 같은 빗방울이 기관총처럼 바닥을 내리치고 포탄 같은 천둥벼락이 울렸다.
누군가 희망을 갖고 말했다.
"이런 날씨에는 프리츠 놈들도 반격 못하겠지."
누군가는 불안하게 말했다.
"멀베리 항구는 괜찮을까?"
강풍이 몰아치고 파도가 널뛰었다.
용감하게 출항한 예인선이 널빤지처럼 휘청였다.
"모두 부두에서 이탈하라!"
항만감독관이 외쳤다.
멀베리 B의 거대한 봄바돈(부유 방파제)이 들썩이며 점차 해체되었다.
콘크리트로 고정된 케이슨은 잠시 버티며 모두를 기대하게 만들었으나 균열이 나며 쪼개져 전도됐다.
철근과 콘크리트가 분해되는 소리가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사슬 풀어, 당장! 선박도 철수해!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방파제가 무너지자 인공항이 휩쓸리는 건 순간이었다.
부두를 고정시키던 다리가 꺾여나가자 그 위에 놓여있던 차량과 장비들이 검은 바닷속으로 쓸려갔다.
뒤이어 줄줄이 이어진 부두가 부러지며 거대한 인공항은 흩어졌다.
다음날, 날이 밝았을 때, 수십만 톤의 구조물은 물거품처럼 사라져 있었다.
잔해와 파편, 몇몇 장비들이 해안가로 쓸려 내려왔을 뿐,
그 거대한 인공항은 노르망디의 해안에서 소멸되었다.
비는 그쳐가고 있었고, 바람도 줄어들고 있었다.
멀베리 B를 재물로 삼킨 바다는, 충분히 만족했는지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뒤집힌 셔먼 전차와 뒤틀린 철근 콘크리트 파편 사이에서, 사람들은 망연자실하게 바다만을 바라봤다.
인공항 교두보가 무너지고, 상륙지대는 완전히 고립되었다.
"0600 기준, 현지 보고입니다.
멀베리 B 완전 붕괴. 하역 기능 상실. 멀베리 A는 미완성 상태이며, 대체 불가.
보급 불능이 현실화되었습니다. 현재 교두보 병력은 최대 1주일, 길어야 2주 버틸 수 있습니다."
마셜이 상황을 브리핑했다. 그의 표정은 평소처럼 무미건조했으나 목소리는 조금 어두웠다.
"태풍은 물러갔고 해상 통제는 여전히 우리 손에 있습니다.
그러나 대형 항구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인공항이 아니라 항구, 그것도 대형 항구를 확보해야 합니다."
킹 제독이 이어서 말했다. 그는 어떻게 그 대형 항구를 확보할지는 말하지 않았다.
"대형 항구라… 르아브르는... 불가능하다고 했었소? 그렇다면 셰르부르가 유일하지.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그곳에 닿을 수 있소?"
루스벨트가 질문했다. 아니, 희망을 던졌다.
"이름 모를 작은 마을 같은 곳이 아니라 가능하면 르아브르,
안된다면 셰르부르를 확보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해군을 통해 항구를 지키는 겁니다.
저희는 유럽 해방을 포기하지 않았고, 유럽에 발을 디디고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될 테니까요."
홉킨스가 그의 질문을 좀 더 풀어서 대신 말했다.
마셜은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단어를 골랐다. 그런 그를 홉킨스가 재촉했다.
"마셜 장군님, 어떻습니까. 셰르부르로 가는 건."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카랑탕에서 셰르부르로 이동할 때 적의 저항이 전혀 없을 것.
둘째. 셰르부르의 적이 저항하지 않고 바로 항복할 것.
셋째. 기상상황이 계속 양호하고, 해군과 항공대가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 이상입니다."
"그렇군요. 일견 힘들어 보입니다만 성공하면 그 파급효과는..."
"보좌관님, 저는 '불가능하다'라는 것을 말한 겁니다.
셋 다 불가능한 가정입니다. 실현가능성은 0%에 수렴합니다."
"그럼 제독님, 해군 선박을 해안 가까이 붙여서 보급하는 건? 일본군도 비슷한걸 했다잖습니까....."
"해리. 고맙소.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루스벨트가 그의 말을 끊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때리는 소리만 들렸다.
모두가 대통령의 다음 말을 기다렸으나, 그는 오직 생각에 잠긴 얼굴로 책상을 두드릴 뿐이었다.
"마셜."
"듣고 있습니다, 각하."
"독일군은 반격을 시도할 거같소? 우리를 바다로 밀어내기 위해?"
"단정할 순 없습니다. 저들의 전투력도 상당히 소진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바다로 밀어내는 것은 저들의 최우선 전략목표입니다."
"킹 제독도 함께 말해주시오.
어떠한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교두보를 확장하거나 유지할 수는 없소?"
킹은 눈을 감고 생각했다. 이미 답은 정해두었지만, 말로 풀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제차 말씀드린 대로 해군은 도버 해협에서의 완전한 제해권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지상군이 위치를 확보하고, 항만만 존재한다면 보급은 당장이라도 가능합니다."
"... 지상군의 상황은 보고 드린 대로 좋지 않습니다. 항만 확보, 위치 사수 모두 어렵습니다."
"수송기는..."
홉킨스가 조용히 말했다. 대답은 없었다.
"알겠소. 영국 측과도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회의를 마치겠소. 솔직한 의견 제시, 고맙소."
회의실에 남은 건 서류 더미와 식지 않은 커피 냄새뿐이었다.
누구도 서로의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보카쥬 사이로 저무는 노을이 아름답게 늘어졌다. 병사들은 잠시 긴장을 풀고 풍경을 즐겼다.
그때, 갑자기 포격이 시작되었다. 일상적으로 날아오던 포탄과는 비교도 안 되는 탄막이 쏟아졌다.
포탄의 파편과 화염 속에서 병사들은 자신의 위치로 흩어졌다.
전처럼 겁먹고 쓰러지거나 주저앉는 이는 없었다.
그런 자들은 이미 오마하와 보카쥬에서 쓰러졌다.
태양이 지고 항공기의 시간이 끝나자 다시 전차의 시간이 찾아왔다.
저 멀리서 소름 끼치는 궤도와 엔진의 소음이 들렸다.
참호와 건물의 폐허 속에 숨은 병사들은 그 소리를 느꼈다.
그리고 알았다. 저자식들이 오고 있다고.
"독일군은 해 질 녘 포격으로 시작하여 카랑탕으로의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첫 반격 시도입니다."
언제나처럼 침착하게 마셜이 브리핑했다.
"군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소?"
루스벨트가 질문했다.
"도시 외곽 참호 라인부터 시작하여 도시 내부까지 이어지는 다층 방어선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쉽게 뚫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손실과 보급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나, 그것은 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들도 마찬가지라 했소만... 저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싸우는 거요. 우리는 바다 건너에서…"
"그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결론적으로, 군은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으나 소모되고 있습니다."
방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고, 초침 소리만이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군사적 현실은 충분히 이해하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가능하다면 이 교두보를 사수하고 싶소.
그것이 우리의 신뢰와 노력을 지키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오."
"각하, 저도 각하의 그 마음에 지극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 바람을 실현하려면 아까 말씀드린 불가능한 조건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해야 합니다."
"해군은 해상 보급을 약속드리지만, 항구 없는 보급은 모래 위의 성입니다."
말이 끊기자 방 안엔 다시 초침 소리만 울렸다.
말을 하는 건 쉬웠으나 그 말의 무게는 너무 무거웠다.
누구도 대통령의 눈길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했다.
홉킨스만이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었다.
루스벨트는 잠시 그와 눈을 마주친 후 눈을 감았다. 깊은 고뇌가 그의 마음을 덮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프랑스의 해안과 마을에서 분투하고 있을 군인들을 생각했다.
마셜과 킹, 그리고 그 외 다른 장교들의 말에서 루스벨트는 군인들의 실상을 깊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굶주렸고, 총탄은 떨어졌으나, 보카쥬의 진흙 속에서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 고마우면서도 그들에게 미안했다.
그는 미안함과 감사, 그리고 현실의 문제점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고요히 고개를 숙였다.
"각하..."
홉킨스가 조용히 말했다.
마침내 루스벨트가 고개를 들었다.
잠시 숨소리마저 멎은 듯한 침묵이 이어졌다. 초침마저 침묵하는 듯했다.
"결정을 내리겠소. 마셜. 군을 후퇴시키시오.
킹. 군을 영국으로 호송하시오.
두 장군은 이 하나에 집중하시오. '누구도 남기지 않는다.‘
그리고 해리, 고맙소. 언론과 국회, 국민 대응을 준비해 주시오."
"예, 각하. 즉시 수행하겠습니다."
"해군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즉시 수행하겠습니다."
모두가 나간 뒤, 루스벨트는 집무실에 남아있었다.
불 꺼진 집무실엔 그와 초침 소리만이 남았다.
그는 차갑게 식어가는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돌아오지 못할 이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마지막 군인이 돌아올 때까지 그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추축군과 서방 연합군의 배치는 후반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영연방군의 철수 이후 추축군은 캉 - 바외 축선을 탈환하였다.
이후 미군의 철수 이후 노르망디 전역을 회복하였다.
카랑탕에 가해진 몇 차례 압박을 제외하곤, 별다른 교전은 발생하지 않았다.
※ 서방 연합군은 노르망디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대형 항만 없이 이뤄진 철수는 덩케르크 철수와도 같았고, 대부분의 경우 소화기도 버려졌다.
1) 서방연합군 측 효과
교두보 완전 상실
노르망디에 구축한 교두보와 멀베리 인공항은 모두 무너졌고,
대형 항만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장비·물자를 전면 방기한 채 철수함으로써,
유럽 대륙 재진입은 장기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전투 인원 보존과 장비 전면 손실
인적 자원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회수했으나
전차·야포·차량·공병장비 등 중·대형 전력을 거의 전부 상실했다.
서부전선 공세력 붕괴
즉각적인 서유럽 재침공은 불가능해졌으며,
미국은 본토에서 다시 장비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최소 수개월, 현실적으로는 1945년 이전 유럽 재침공이 불가해지는 효과가 발생했다.
2) 추축군 측 효과
서부전선 안정화
대규모 결전을 피하면서도 연합군 철수를 이끌어내며 방어선 재정비에 성공했다.
전선이 안정화됨으로써 동부전선에 더 많은 여유를 줄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
물자 노획 및 심리적 우위
방기 된 장비·물자 일부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고
대서양 방벽의 붕괴 위기를 수습하면서 사기적·선전적 이득을 크게 얻었다.
전략적 시간 확보
연합군이 다시 공격을 준비하는 동안 최소 6개월, 내지는 1년 이상의 시간을 벌게 되었고,
이는 동부전선의 방어 및 재편성에 유리한 시간을 제공한다.
노르망디 철수의 결정적 효과는 연합 내부의 균열과 갈등의 폭발적 심화였다.
이미 시칠리아, 안치오 등 이탈리아 전선에서부터 드러난 미·영 간의 불신은
이번 작전 실패와 철수 과정에서의 노골적인 충돌로 비화했다.
영국은 미국의 전략을 무모하다고 비난했고, 미국은 영국의 독자 철수를 배신으로 규정했다.
그 결과로 철수는 단순한 작전 실패가 아니라 동맹의 신뢰 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수준의 균열로 되었다.
군사적 차원에서 독일군은 '서방 연합의 유럽 침공 저지'라는
절대적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전략적 주도권을 되찾았다.
전투 손실은 있었지만, 대륙에서 서방 연합군을 몰아냈다는 성과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서부전선은 다시 방어 안정권에 들어갔고,
이는 곧 동부전선에서 독일이 더 주도적인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의 핵심 효과는 서방 연합군의 대륙 침공 좌절과 장비 전면 상실, 영·미 동맹의 균열 심화,
그리고 독일의 전략적 주도권 회복으로 요약된다.
웅장하게 편곡된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이 라디오 전파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잠시의 침묵 뒤, 괴벨스의 목소리가 차갑고 또렷하게 마이크를 채웠다.
"여기는 베를린, 세계의 심장입니다."
"서방 연합국의 거대한 도박은 무참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노르망디의 파도 속에 잠긴 수천 켤레의 군화, 해안에 나뒹구는 총검 하나하나가
미국 청년들의 운명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 짧은 침묵 속에서 청취자들은 노르망디 해안을 떠올렸다.
"미국은 유럽을 해방시키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해방시킨 것은 바다와 파도뿐입니다.
그들의 젊은 병사들은 이제 조국으로 돌아가겠지만,
그들의 이름은 바다의 모래에 흩어져 사라졌습니다!"
괴벨스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독일 병사들은 보카쥬의 진흙 속에서 밤을 지새우며 싸웠습니다.
한 명의 군인이 두 명, 세 명의 적을 쓰러뜨렸습니다.
그들의 땀과 핏방울이 오늘의 영광을 일궈낸 것입니다."
"이제 세계는 알게 되었습니다. 독일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히틀러 총통의 의지와 비전, 그리고 정통을 계승한 후계자, 헤르만 괴링 제국 원수의 지도 아래
우리는 새로운 질서를 향해 행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당성은 불길 속에서 증명되었습니다!
베를린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유럽과 전 세계가 흔들릴 것입니다!"
군중의 환호성이 광장을 가득 매웠다. 여성과 자경단원, 히틀러유겐트 청년들이 부둥켜 앉고 환호했다.
승리! 그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으니... 오늘은 그들만의 날이었다.
"그래, 결국 그 잘난척하던 서방 놈들도 무참히 실패했군."
소비에트 연방 국가방위위원장, 최고사령관 이오시프 스탈린이 말을 꺼냈다.
"동지들이 느끼는 바를 기탄없이 말해보시오. 나는 이번엔 듣겠소."
"서기장 각하, 단순히 서방의 실패로 치부할 일만은 아닙니다.
철수 과정에서 영국 제국과 미국은 극심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이건 작전 실패보다 훨씬 큰 사건입니다."
소련 외무상 바체슬라프 몰로토프가 입을 열었다.
"그건 연방에 기회가 되는가?"
"유럽 해방의 위업을 연방 주도 하에 달성한다면 거대한 기회가 될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좋소. 그럼 다음. 군사분야."
"서방이 무너졌지만 파시스트 놈들도 큰 피해를 입었을 겁니다.
그 자식들이 다시 재편성하기 전에 후려쳐야 합니다.
계획된 대공세를 당기는 것도 고려할 수 있겠죠."
국방인민위원 제1차관,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가 먼저 말했다.
"당신의 말은 언제나 듣기 좋군. 좋다, 다시 일어서기 전에 때려눕히자. 가능한가?"
"바그라티온 작전은 대규모 작전입니다.
이미 준비 과정에서도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금 공세 일정을 앞당긴다면 재앙적인 결과가 나올 겁니다."
붉은 군대 참모총장 알렉산드르 바실레프스키가 냉정히 말했다.
"당신 말대로라면 이미 문제가 많은데, 실행이 가능하긴 한가? 둘 다 만족시킬 길은 없는가?"
"... 최대한 준비를 빠르게 마무리하고 공세를 실시하겠습니다."
바실레프스키가 답했다. 그는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국내 분야 답하시오."
"서방 동맹의 실패는 국내 민심에 별다른 변수를 주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정보는 통제되고 있었으며, 축소 보도 되었습니다.
다만 국민들은... 음, 붉은 군대의 철수와 영토의... 일시적 상실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작게나마 갖고 있습니다."
소련 내무인민위원, 라브렌티 베리야가 답했다. 그는 단어를 신중히 골라서 답변했다.
"그걸 없애는 게 당신 일이지."
"예, 서기장님. 이미 언론과 라디오를 통한 대규모 선전 프로그램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철수와 상실은 작전의 일부이며, 끝내 승리한다는 믿음을 의심하는 국민은 없습니다.
국민 모두가 무적의 붉은 군대를 굳게 신뢰하고 있습니다."
베리야는 황급히 대답했다.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그래야만 하고."
스탈린이 조용한 목소리로 마무리 지었다.
그가 나가자 스타브카 회의실은 잠시 조용해졌다.
남은 이들은 이번 사건의 파급효과에 대해 좀 더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늦은 밤부터 이른 새벽까지 대형 윤전기의 연판이 쉴 새 없이 굴러갔다.
신문들은 뽑혀 나오는 족족 가판대에 올려졌다.
그리고 행인들은 가판대가 열리자마자 줄을 서서 신문을 집었다.
뉴욕 타임스는 1면에서 'Greatest Gamble Ends in Withdrawal'라 썼다.
논고 방향은 이번 패배는 참혹하지만 자유의 대의를 포기할 수는 없고,
대통령은 여전히 국민을 이끌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신문을 읽은 독자는 침통하게 역을 빠져나가 일터로 나갔다.
헤럴드 트리뷴은 ‘Where Now, Mr. President?’라는 헤드라인으로 의문을 던졌다.
논고 방향은 유럽 해방의 꿈은 흔들리고 있으나 여기서 미국이 물러난다면
자유 세계 전체가 무너진다는 내용이었다.
독자는 과연 그럴 수밖에 없는가 라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카고 트리뷴은 'Roosevelt’s Folly Ends in Disaster'을 헤드라인으로 썼다.
자극적인 제목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시카고를 집었다.
논고 방향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무모한 전쟁 도박에 희생되었고,
이 참극의 책임은 백악관에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공화당 지도자 토마스 듀이의 발언에도 페이지를 할당했다.
읽은 자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듀이에 주목했다.
의사당의 민주당 의원들은 대통령을 방어하려 했으나, 그 발언들은 무겁고 힘이 없었다.
공화당 의원들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토마스 듀이가 연단에 섰다.
"우리는 냉혹한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무모한 도박 속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책임은 분명합니다. 백악관의 오판과 고집 때문입니다."
의사당 안이 술렁였다. 듀이는 원고를 접어들며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마무리했다.
"이제 미국은 선택해야 합니다. 같은 잘못을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지도력을 세울 것인가."
그의 마지막 말이 울려 퍼지자, 공화당 의원들의 박수가 단호히 터져 나왔다.
라디오를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간 그의 연설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 순간 워싱턴 정계와 국민들은, 공화당의 한 정치인을 더 이상 단순한 야당 지도자로만 보지 않았다.
브리즈번 GHQ의 현관 앞, 플래시가 터지는 기자들 사이에서 맥아더는 단호히 말했다.
"예. 유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압니다. 지독한 실패지요.
그러나 태평양은 다릅니다. 나는 전진하고 있으며, 결코 퇴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본 제국은 무너지고 있고, 우리는 그 끝을 보고 있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미합중국의 승리를. 우리의 승리를."
기자들의 펜이 멎은 듯 조용해졌다.
이 한 문장이, 곧 미국 전역의 신문과 라디오를 채웠다.
펜타곤의 합동참모본부는 패배의 혼란을 수습해 나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맥아더의 발언은 충격이었고, 파문처럼 모두에게 번졌다.
"그의 자신감은 이해하나, 정치적 야심이 지나치오. 지금은 군 내부의 단결이 필요한 시기요."
마셜이 생각하기에는 패전 후의 단결이 가장 중요했다. 저런 발언은 분열을 낳으리라.
"문제는 언론이 그를 영웅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치에 이용된다면 위험합니다. 정치와 군은 분리되어야 해요."
육군항공대 사령관, 헨리 아널드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적어도 그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지. 유럽에서처럼 허망하게 물러설 수는 없다는 메시지요.
우리는 다시 태평양에 집중해야 하오.
왜냐? 해군은 태평양을 지배하고 있고, 그곳에선 승리할 수 있으니까.
유럽 우선이 아니라 승리가 최우선이요."
킹 제독은 단호하게 말했다.
제독과 장군들은 의견을 통일하지 못한 채 대화를 마쳤다.
바람에 흩어지는 낙엽처럼, 해안가의 잔해들이 흩어져갔다.
피와 불과 철은 바닷속으로 끌려갔고, 전쟁의 참상은 물거품처럼 사라져 갔다.
끝내 남은 것은 침묵과, 바닷물에 씻겨 내려간 이름 없는 흔적뿐이었다.
노르망디의 해안가에서, 바람이 속삭이듯 시 하나가 울려 퍼졌다.
'가을날 바이올린의 긴 흐느낌 끊기지 않는 우수로 내 마음 괴롭히네.
종소리 울릴 때 창백하고 곧 숨 막혀 옛날들 기억나 눈물 흘리네.
그리고 휩쓸어 가는 모진 바람에 이끌려 가네 여기저기로 낙엽처럼.'
- 폴 베를렌(1866) 「가을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