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가족인가?

100일의 글쓰기 - 24번째

by 천세곡

아버지는 차례와 제사를 집착에 가까울 만큼 챙기신다.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돌아가신 조상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만 하는 분이시다. 명절과 제삿날이 돌아오면 조상님께 예를 다하기 위해 꼭 큰집에 가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큰집에 가는 것이 나에게는 큰 짐이었다. 친가 쪽 친척 분들은 모이기만 하면 자주 다투셨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고작 일 년에 두세 번 볼까 말까 하는 데도 그들은 서로를 향해 삿대질하고 목청을 높여 싸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렸을 때는 용돈 받는 재미에 갈 법도 한데 그마저도 싫었다. 예민하고 눈치가 빠른 나는 어른들의 술주정과 고성에 불안했고 어쩔 줄을 몰라했었다. 아버지가 엄하셔서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을 뿐, 출발하는 순간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물론, 친척 어르신들이 특별히 나를 혼내거나 뭐라고 하신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린 눈으로 보기에도 화목함과는 거리가 먼, 자신들의 계산에만 밝은 어른들의 모습이 보기 싫었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큰집은 꽤 시골이어서 뛰어놀기에 괜찮은 곳이었음에도 최대한 빨리 돌아오고 싶어서 괜히 아프다고 꾀병을 부리기도 했다.


아버지는 늘 가족이 최고라고 말씀하신다. 어찌나 친척들을 잘 챙기시는지 당장 집에 쓸 돈이 없어도 명절 상차림에는 돈을 보태야 한다면서 큰집 식구들에게 봉투 챙기는 일은 절대로 잊지 않으셨다. 정작 나와 동생에게는 명절이라고 해서 변변한 용돈 한번 주신 적이 없었다.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께서 만취해 들어오신 날은 집안에 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술을 드신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최대한 빨리 잠자리에 드는 것이 상책이었다. 큰집만큼이나 우리 집도 화목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핏줄이 중요하다는 아버지의 말씀은 정말 말뿐이어서 나에게 와닿기에는 너무나 먼 것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큰집에 대한 거부감은 아버지로부터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것은 아니었는지 이제는 명절이 되어도 친가 쪽에 친척들이 거의 모이지 않게 되었다. 물리적 거리보다 심리적 거리가 멀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벌어진 사이를 좁히기 위한 부단한 노력 없이는 회복이 불가능해 보인다.


친척들이 다시 모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이가 좋아지는 것뿐이다.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자연 치유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핏줄이라고 모든 것을 다 받아주고, 무조건 이해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피가 물보다 진해지려면, 피만 섞여서는 안 되고 양보와 배려, 진심 어린 마음도 섞여야 하는 것이다.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의를 갖추고 세심하게 챙겨주며 보살필 줄 알아야 한다. 말만 앞설 뿐인, 모순적인 사람과의 사이는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다. 어느 유명 강사님의 말처럼, 사이가 좋아야 만나는 것이지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찾아가게 되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사진출처: Photo by Na visk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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