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로? 나는 빌런!

100일의 글쓰기 - 40번째

by 천세곡

'나는 솔로(이하 나솔)' 17기가 시작되었는데도 이전 16기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뜨겁다. 연애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초월해 버린 16기는 방송 후에도 그 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누가 누구를 저격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더니 고소를 하겠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나솔 16기는 돌싱 특집으로 방영되었는데 실상은 역대급 빌런 특집에 가까웠다. 보통 이런 프로그램의 특성상 한 명 정도는 빌런이 있기 마련이고, 또 그 덕에 적절한 긴장감과 반전의 재미를 더해준다. 그런데 16기는 빌런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중반 이후가 되면, 어떤 사람들이 커플이 되느냐 못지않게 누가 누구와 오해가 생기고 갈등이 빚어지게 되는가에 더 집중하게 된다. 12명의 출연자가 고작 4박 5일 동안 한 공간에서 지내며 촬영한 것임에도 마치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들이 보여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은 흡사 PTSD까지 올 정도였다. 갈등의 중심에는 정확한 팩트체크 없이 ‘뇌피셜’에만 근거해 퍼뜨린 소문이 있었다. 근거가 아예 없거나 잘못된 근거에 기댄 확신에 찬 말 한마디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고, 16기 전체를 파국으로 이끌었다.


유행어처럼 되어버린 영숙의 ‘경각심’ 발언이 파국의 신호탄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도 빌런으로서 제일 많이 회자되는 것도 영숙이다. 그녀가 최고의 활약을 보인 것은 맞지만, (심지어 현재까지 진행 중인 것도 사실이지만) 나머지 출연자들 역시 그녀 못지않다.


역대급 빌런 특집은 비단 영숙뿐 아니라, 한두 명 정도를 제외하고 거의 모두가 빌런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가능했다. 오직 자신의 그릇된 추측과 판단에 근거해 말을 하고, 그 말은 다른 사람들을 거치면서 와전되는가 하면, 상대방이 이야기 한 말의 의도를 잘못 파악해 자기식대로 해석해 더 큰 오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사랑보다 갈등이 더 폭발했던 16기는 왜 이토록 인기를 끌었던 것일까? 서로 썸을 타는 장면보다 오히려 이러한 빌런들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이 공감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소 극단적인 부분도 있었으나 시청자 입장에서도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일이었기 때문이다.


직장이나 학교 심지어 가정에서 한 번쯤은 마주했을 법한 빌런들이 화면 속에 모두 모여 있었다. 지나친 자기 확신에 차서 남에게 섣부른 충고를 하는 사람, 확인하지 않고 소문을 무수하게 만들어 내는 사람, 과한 나르시시즘이나 자기 연민에만 빠진 사람 등. 주변에 있다면 나를 힘들게 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16기 출연자들을 통해서 비치고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주변의 누군가를 떠올렸을 것이다. 성숙한 사람이라면 내 안에는 그런 모습이 없는지 돌아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은 저런 사람들은 절대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을 것이다.


나솔 16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사람을 만나야 되는지가 아닌 어떤 사람을 만나면 안 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좋은 사람을 고르는 능력만큼이나 우리에게 필요한 건 좋지 않은 사람을 걸러내는 분별력이 아닐까. 좋은 선구안을 가지고 빌런만 걸러낼 수 있어도 우리 인생의 절반은 성공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이미지 검색 "나는 솔로 16기 데프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못난 글이라도 괜찮다.